[Opinion] 우리는 어쩌다 살고 있는 겁니다 - 드라마 '언내추럴'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10.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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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언내추럴'의 한국판 제작이 확정되면서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리메이크 소식은 언제나 기대 보다 우려가 따르는 것이 당연하건만 이토록 반발하게 되는 원작의 매력은 무엇일까. 2018년도에 방영되어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꾸준히 명작 반열에 오르며 많은 이들에게 인생 드라마로 손꼽히고 있다.


언내추럴은 10부작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다. 일본의 유명 배우 '이시하라 사토미'가 미스미 미코토(이하 미스미) 역할로 분하여 극을 탄탄히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오랫동안 드라마를 사랑해온 팬들에게 단 10회로 만족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최근에서야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모두 보았다. 꾸준했던 인기에 비하면 남들 보다 늦게 시청한 셈이었다. 특히 매회 다른 사건을 다루는 짧은 회차 덕에 하루 날 잡고 정주행하기에 부담이 없었다.

 

 

 

언내추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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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법의학자인 미스미를 중심으로 그의 동료들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소는 'UDI 라보‘로 불리는 연구소다. UDI라보는 'Unnatural Death Investigation'의 약자이며, 이들은 부자연스러운 사인으로 죽음에 이른 시체들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나간다.


법의학자의 개념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국내에서 방영된 메디컬 수사 드라마 '싸인'을 통해서였다. 환자를 살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던 메디컬 드라마와 달리 부검이라는 낯선 소재를 중심으로 범죄를 수사하는 내용은 다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발에 챌 만큼 흔한 소재였지만 범죄를 다루는 숱한 작품 중 어떤 작품은 가해자의 자취를 따라가며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한다. 물론 피해자의 자취를 따라 가해자를 검거하는 방식이지만 그것이 피해자 중심의 이야기라고 볼 순 없었다.


언내추럴은 가해자에게 어떠한 서사도 주지 않는다. 오롯이 부조리한 죽음을 파헤치는 데 몰두했다. UDI라보를 찾는 이들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제 곁을 떠나야 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그들을 기리는 일이라고 믿었다. 미스미와 동료들은 상심에 빠진 주변 인물들을 어루만졌고 슬픔을 감내한 뒤에는 내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


 

법의학은 죽은 사람을 위한 학문이잖아요.

법의학은 미래를 위한 일이야.

 

- 1화 '이름 없는 독'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체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죽은 자들의 몸에 남겨진 '싸인'을 읽어내어 죽음의 진상을 가리는 것, 그것이 법의학자의 존재 이유이자 소명이었다.

 

 


일드 '언내추럴'의 매력 5가지


 

 

죽는 것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목숨을 잃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살고 있는 겁니다.

 

- 8화 '머나먼 우리집'

 

 

1) 절망 속에 내버려 두지 않는 일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에는 큰 슬픔과 절망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UDI라보 크루는 남겨진 이들을 절망 속에 내버려 두지 않는다.


1화 '이름 없는 독' 에피소드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남성이 등장한다. 평소 건강했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수사하게 되는데, 부검 조사 결과 출장 중에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다.


단지 그를 잘 보내주기 위하여 의뢰했던 일이 독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미스미는 안타까운 죽음과 국민적으로 돌아올 규탄을 뒤로하고 더 많은 사상자를 막기 위해 유족들을 설득했다. 남겨진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는 또 다른 고통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에피소드 후반에는 의료 사고임이 밝혀져 바이러스를 퍼뜨린 최초의 감염자라는 누명을 벗게 되는데, 사인을 번복한 미스미에게 유족들은 고인 모독이라며 분개했다. 미스미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간청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소명을 엿볼 수 있었다. 진상 규명 끝에는 절망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화장터로 운구되는 길목을 막아서는 한이 있더라도 미스미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했다.


1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UDI라보의 가치관과 끈질긴 수사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고 떠들 수 있냐는 쿠베의 의문처럼 좀처럼 감정적으로 대하는 법이 없는 미스미는 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기 위해서.


첫 번째는 어두웠던 과거를 지나온 미스미 스스로의 삶의 다짐일 수 있겠고, 사건을 의뢰해오는 이들을 절망 속에서 끌어내 내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2) 신파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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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라 아라타가 연기한 나카도 케이(이하 나카도)는 UDI라보의 또 다른 법의학자다. 뛰어난 실력과 달리 독단적인 태도와 거친 언행 등으로 동료들에게 기피 1순위로 꼽히는 캐릭터가 되겠다.


까칠한 성격과 달리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순애적인 면모가 드러나는데, 바로 오랜 연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10년의 행보 때문이었다. 나카도는 시체로 돌아온 연인을 부검하여 용의자로 지목받게 된다.


슬픈 과거를 품고 살아가는 캐릭터는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의 신파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미스미 역시 어두운 과거를 지녔지만 그로 인해 거부감이 들 정도의 슬픔을 끌어내진 않는다. 오히려 덤덤할 정도였다.


사람은 어떤 놈이든 껍질을 벗기면 고깃덩이에 불과해.


3화 '예정에 없던 증인'에서 미스미의 부탁으로 증인석에 서게 된 나카도의 고깃덩이 발언은 그의 법의학자로서의 신념이 느껴지는 대사였다. 그것이 하루에도 몇 구씩 수사하는 사망자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차갑게 식어버린 육체는 그저 의뭉스러운 죽음을 파헤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이들만의 애도의 방식이었다.


나카도의 죄책감이 드러나는 장면은 7화 '살인 유희'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극단적인 죽음을 택하려는 학생에게 나카도는 이 같은 충고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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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관통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카도 자신에게 끝없이 걸어온 주문 같기도 했다. 흉터처럼 남아버린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인정하며 나아간다는 것, 언내추럴이 전하는 메시지는 슬프지만 무겁지 않게 우리에게 와닿았다.


 

3) 히스테리 여성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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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3화는 언내추럴의 여러 사건 중에서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기 그지없는 에피소드였다.


사건의 증인으로 서게 된 미스미에게 '여성' 법의학자라는 프레임이 씌었다. 검찰 측 증인을 요청해온 검사는 미스미를 보자마자 대뜸 조수가 아니었냐는 무례한 말을 건넸다. 후에 사건을 바로잡고자 피고인 측 증인석에 서게 된 미스미는 사건과 무관한 성차별적 발언에 반박하게 되고 '히스테리 여성 법의학자'가 돼버린다. 안방에서 즐겁게 시청하던 나 역시 미스미의 승리를 응원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피고인마저 미스미를 거부하고 결국 나카도가 대리 증인으로 참석하는 것은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지위와 고정관념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반드시 미스미가 통쾌한 승리를 안겨주길 고대했었다. 편견과 부조리에 애쓰는 이들과 달리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에 변하기 어려운 현실을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카도는 건수보다 눈앞에 있는 감정 결과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스미가 말한 감정적인 대응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감정적인 대응이 곧 실력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스미는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증거를 모은다. 이것은 히스테리 여성 법의학자의 대응이 아닌 진실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었다. 

 

후에 나카도는 도리어 검찰을 자극하여 감정적인 모습들을 끌어내는데, 검찰 측 발언에 조건반사처럼 분개하기 바빴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었다. 많은 이들이 언내추럴의 주역들을 롤모델로 꼽는 이유가 아닐까.

 


4) 러브라인


리메이크 소식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억지로 만들어 낼 러브라인이었다. 특히 주요 인물인 미스미와 나카도, 쿠베를 삼각관계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동료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를 이끄는 동료로써 의지하고 협력했다. 드라마 초반에 미스미의 3년 넘게 만난 연애 상대가 등장하지만 이마저도 이별을 맞게 된다.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지게 되지만 미스미는 이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슬픔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법이 없었고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뿐이다.

 

 

5) 죽음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유독 미스미의 먹방 장면이 많다는 것을 캐치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침부터 라커룸에 앉아 텐동을 맛있게 해치우고 심지어 부검 중에도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1화에서 의료 사고임이 밝혀진 뒤에 남겨진 그의 약혼자에게 단팥빵을 건네는 장면 역시 그렇다. 슬픔에 빠진 이에게 맛있으니 먹어보라는 미스미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과거 일가족 동반자살을 겪은 미스미는 부조리한 죽음을 밝히는 법의학자의 길을 선택한다. 과거의 일을 논문으로 작성할 만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에게 조차 잠든 얼굴을 보여주기는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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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을 기획한 PD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겨진 이들이 미래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미스미의 먹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에 있다. 미스미 본인조차 아픈 과거를 안은 채 살아가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2화에서 냉동 탑차에 갇힌 미스미는 목 끝까지 물이 차오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내일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두려움에 떠는 대신에 먹고 싶은 음식을 늘어놓는 미스미의 모습은 함께 갇힌 쿠베의 심정이 되어 꽤나 위로가 된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 고기 타령이라니.

 

미스미씨는 절망 같은 건 안 할까요?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사람에게 죽음 보다 무서운 것은 살아간다는 것,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그런 의미로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라는 미스미의 신념에 크게 감동 받았다. 절망에 허우적거리던 나를 단숨에 일으켜 주는 것 같다.

 

*

 

여담이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미스미의 웃음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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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OST가 선사하는 감동 - 요네즈 켄시 '레몬(Lemon)'



드라마 못지않게 대히트를 친 것은 OST였다. 사건의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레몬'은 감정을 극대화해주기까지 했는데 과연 누가, 어떤 음악이, 이를 대신할 것인가 우려가 앞서기까지 했다.


레몬은 일본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의 8집 싱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나 역시 드라마 보다 노래를 먼저 접한 케이스였다. 드라마를 통해 삽입곡을 좋아하게 되는 것과 반대로 레몬을 듣고 있노라면 '이토록 매력적인 노래가 흘러나오는 드라마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끌어냈다.

 

드라마를 보지 않고 레몬을 듣는 것은 백 배로 돌려받을 감동을 절반 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10부작의 드라마를 모두 정주행 한 뒤 레몬을 다시 들었다. 익숙한 도입부가 흘러나오자 언내추럴에 등장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연인과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는 나카도의 얼굴과 미스미의 버석한 얼굴이 스쳤고 누워서 올려다보던 불꽃과 백야를 보러 가자던 약속도 함께였다.

 

 


 

 

리메이크를 기다리며



개인적으로 일드 '중쇄를 찍자'를 애정 하는 팬으로서 한국에서 제작되는 리메이크 소식에 반감을 보였었다. 원작이 주는 매력을 훼손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작품은 현지화가 될 수밖에 없을 테고 당연하게도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냈다.


원작의 매력 그 자체를 즐기되, 새롭게 만들어지는 드라마는 별개로 두면 됐다. 반발 섞인 우려가 많은 것은 팬들의 깊은 애정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드라마가 국내에도 알려진다는 것이 중요했다. 리메이크 작품을 사랑하게 된 팬은 그저 다른 드라마의 팬으로 생각하면 편했다.


이에 대해 분개하는 대신에 나는 지인들에게 넌지시 언내추럴을 추천했다. 

 

가슴 아프지만 이상하게 힐링이 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같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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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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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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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
    • 마코토가 아니라 미코토인데 오타있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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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나
    • 다른건 모르겠고 진짜 원작에 없는 러브라인 좀 안 넣길....ㅠ 제바아알!!!!!!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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