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우리는 글을 쓴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글 입력 2022.10.0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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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19세기의 문학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으로, 그 제목은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가 로체스터에 의해 다락방에 감금된 것에서 착안했다.

 

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등 다양한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탐색하는 이 책은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한다. 그러나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글자들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새로운 관점과 깊은 통찰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다. 1979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온 것은 2009년, 즉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따지고 보면 43년 전에 쓰인 책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힘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 문제가 문학과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밝혀내기에 충분하다.


 

은유와 원인론이 뒤섞인 이런 고정관념은 그야말로 서구 사회의 지독한 가부장적 구조를, 그리고 가혹한 가부장제가 딛고 서 있는 여성 혐오를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런 ‘권위’의 뿌리가 말해주는 것은,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면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이 여성을 만들어냈다면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고 단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은 남성의 ‘펜’에 의한 창조물로서 ‘감금되었다.’ 여성은 남성이 내뱉은 ‘문장’으로 (사형이든 징역형이든) 형을 ‘선고받았다.’ 남성은 여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을 ‘기소했다.’ 여성은 남성이 ‘만들어놓은’ 사고에 따라 남성의 텍스트, 그림, 그래픽 속에 ‘갇혀’ 있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우주론 속에서 (죄 많은 결함투성이로) ‘날조되었다.’ 88~89p

 


길버트와 구바는 남성 문학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공통점과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또한 공통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거대한 비유에 대해 논의하며 19세기 문학 작품에 드러난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둘은 이 시기 남성 문학 작품 내의 여성 캐릭터가 모두 천사 또는 괴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기 글을 읽고 쓴다는 것, 특히 문학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은 남성적 권력이었다. 오로지 남성의 시선에서 해체되고 재조합된 여성상은 길버트와 구바가 말하듯, ‘여성은 그저 남성들의 요구와 생각대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창조자로서의 남성 권력은 한편으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완전하지 않은 무언가로 치부하여 작가로서 그들의 삶을 지워버렸고, 다른 한편으로 보편적인 사회적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그들의 창작 활동을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 작가들은 끊임없이 거부당하는 경험을 축적하고, 그 결과 이 시기 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길버트와 구바가 설명하듯 여성-괴물의 공통적인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여성 혐오적인 사회와 문학 세계에 절망했고, 그러면서도 남성 중심적인 문학계에 편입되고자 노력했다. 애초에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에서 모순적이게도 그들의 인정을 받고자 했던 노력이 얼마나 큰 절망으로 되돌아왔을지는 그들의 작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길버트와 구바가 설명하는 여성-괴물의 이미지는 바로 이 절망에서 비롯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여성-괴물의 상반되는 이미지가 결국 현대 사회에도 그 영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두 가지의 여성상은 마치 현대 사회가 여성을 성녀와 창녀, 마돈나와 걸레(Madonna-Whore Complex)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어쨌든 제인은 가난하고 못생기고 작고 창백하고 단정하고 조용하다. 반면 버사는 부유하고 크고 화려하고 관능적이며 낭비벽이 심하다. 버사는 한때 ‘블란치 잉그램 양처럼’ 정말 아름다웠다고 로체스터는 말한다. 그렇다면 버사는 여러 비평가들이 시사하듯 제인의 분신이라기보다 경고의 이미지가 아닐까? 리처드 체이스가 언급한 대로 ‘버사는 [남성적] 열정의 육체적 그릇이 되어버린 [되려고 애쓰는] 여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실례가 아닐까? 제인은 이렇게 자문하는 것 같다.’ 647p
 


그러나 ‘버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여성성 추구가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성녀와 창녀의 경계선은 아주 희미하다. 게다가 성녀의 타락은 다시 한번 포장되어 남성의 포르노로 쓰인다. ‘버사’가 남편에 의해 다락방에 갇힌 것처럼 말이다.


책의 1장에서 두 작가가 수많은 인용과 연구 결과에 빗대 말하듯, 글쓰기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남성 작가들은 그들 자신을 창조자에, 또 그들의 행위를 창조에 비유했으며 절대 신이 될 수 없는 여성은 역시나 그 창조의 권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성들이 그토록 멸시해왔던 출산과 양육의 과정이, 그 무엇보다 ‘새로운 생명과 세계’의 창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모든 부분을 읽으며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남성은 모든 방면에서 여성이 지닌 힘(심지어는 출산과 창조라는 여성 고유의 힘까지)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취했으며, 그렇지 못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깎아내리기 위해 지난 수 세기를 소비해왔다는 것이다.


‘여류 작가’로서 존재하고, 기억되어 왔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무력감과 질병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고, 저항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다락방’에 갇힌 자매들이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직접 보고 들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자기혐오와 무력함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스틴은 자신의 모든 소설에서 재정 압박 때문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무력함, 불공평한 상속법,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들의 무지, 상속녀나 과부의 심리적인 취약성, 이용당하는 독신녀의 의존 상태, 몰두할 일이 없는 여성의 권태를 탐색한다. 280p
 
 
여자란 무엇인가? 브론테가 의식적으로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지는 않긴 해도, 크림즈워스라는 도구를 통해 그녀는 여자란 자주성이 없고 ‘정신적으로 타락한’ 피조물로, 천사이기보다 노예이고 꽃보다 동물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크림즈워스/브론테는 암시하지 않을지라도) 이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여자가 그렇게 되는 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때 정중하게 말하기’, 소문 퍼뜨리기, 뒤에서 험담하기, 새롱거리기, 추파 던지기. 이 모든 것은 결국 노예의 특성, 즉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복종하지 않는 방식, 남성의 권력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또한 도덕적으로 ‘괴물적인’ 특성이며, 따라서 다시 한번 천사 같은 여자의 외관 뒤에 괴물-여자가 나타난다. 575p
 
 
엘리엇은 사실상 ‘반은 여성적이고 반은 유령 같은’ 레티머의 무력감, 침묵, 이인자 자리, 약한 몸, 상처받은 영혼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예술과 젠더에 대한 태도를 의미심장하게 드러낸다. 사랑받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따라 움직이며 강압적인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 없이 살아가는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 수동성과 병약함에 의존해야 하는 전형적인 둘째 아이다. 래티머와 조지 엘리엇은 자신들이 무심한 남자들의 편협하고 강압적인 통제가 감추어진 거짓된 상황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 이는 동시에 여자들이 전통적으로 ‘무대 뒤의’ 역할을 맡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신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공적 영역에 살고 있는 남자들과 가정생활을 하면서 공적인 주장과 사적인 현실 사이의 괴리를 독특하고 풍자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776p
 


이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무려 40년도 더 전에 쓰인 책에서 작가들이 지적했던 가부장적 사회의 강요와 억압이 지금까지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회의 근간이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쟁이의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순종과 온순함을 학습하는 백설 공주, (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정적 압박에 결혼으로 떠밀리는 여성들, ‘무대 뒤의’ 역할 만을 맡아야 했던 모든 여성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분석한 2장이 가장 좋았다. 그건 내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스틴 특유의 문체와 표현을, 그의 세계를 노골적으로 비난해왔던 수많은 비평가가 결국 오스틴이 느꼈던 절망과 그 은유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강요된 제한된 세계와 그 안의 ‘사소한’ 일들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오스틴은 그 세계를 비판했다. 그것이 한참 지난 후에야 여성 학자들에 의해 드러났다는 사실은 절망적이고, 또한 고무적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남성적 시선에서 비판받았던 (재능, 반짝이는 독창성과 번뜩이는 영감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이라는 비판받았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금 조명하고, 그 의미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상세하게 풀어낸다. 일찌감치 글을 읽고 쓰며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글쓰기의 힘이 창조의 권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닮아있든, 아니면 모든 물리법칙이 뒤바뀐 새로운 세계이든, 모든 글은 저마다 다른 세상을 품고 있다.

 

노골적인 냉소와 비난에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그 수많은 여성 작가들, 나아가 여성 예술가들이 한 일이 단순히 사회 전복적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는 후대의 여성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나아가 그들의 세계를 확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의 여성 창작자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을 줄 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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