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다양한 선택을 작품 속에 최대한 담고 싶었어요" - 연극 '선택'의 한송희 배우

글 입력 2022.09.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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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연중에 '옳은 선택'이 존재한다고 믿고 선택 앞에서 심사숙고하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큰 선택의 이유를 물으면 '그냥, 우연히'라는 대답이 생각보다 많다.


연극 <선택>을 쓴 작가이자 극에서 은수 역을 맡아 연기하는 한송희 배우에게서도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연기를 한 것도, 창작을 시작한 것도, 더 나아가 연극을 하는 데에도 대단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좋아하니까, 상황이 맞아 떨어져서였다고. 시작이 어떠했든 지금 창작집단 LAS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의 모습은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선택>에는 임신과 출산을 들러싼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들이 나온다. 연극 속 인물들은 단번에 결정을 내리기도, 오랫동안 망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틀리지 않았고, 그 뒤에는 각자 몫의 삶이 있음을 연극은 보여준다. 한송희 배우는 작품을 만들며 다양한 선택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지난 9월 21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선택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 한송희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선택>의 상황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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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선택> 잘 봤습니다. <선택>은 ‘라스낭독극장’을 거쳐 이번에 처음 정식으로 무대에 올랐는데요,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낭독극장에서 진행할 때부터 본공연을 염두에 두고 했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대도 하고 걱정도 했어요. 무대에 오르며 대본에 없던 시도가 들어가면서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층위가 담긴 작품이 되어서 뿌듯합니다.

 

 

‘대본에 없던 시도’로는 어떤 게 있었나요?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이 무대 바깥으로 퇴장하지 않고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 상주하는 부분 같은 건 대본 단계에서는 생각 안 했어요. 무대디자이너와 연출님은 각 인물이 장면 속에 없어도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연속성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한 장면이 끝나도 인물이 관객의 시야에서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고민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도록 연출한 거죠. 그런 부분이 선택 이전과 이후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의미가 훨씬 풍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은 임신중단이라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요, 작품을 쓰시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작품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임신중단이 너무 사적인 경험이다 보니 창작 과정에서 제가 다른 사람에게 인터뷰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건 어려웠고, 책이나 논문을 많이 찾아봤어요. 되게 여러 가지 상황에서 각자 다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다양함을 작품 속에 최대한 담고 싶었어요. 또, 극을 쓰며 타인의 선택을 저도 모르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런 부분도 작품에 녹이려 했던 것 같아요.

 

 

<선택>을 작업하며 ‘연결감’에 중점을 두었다는 이야기를 프로그램북에서 읽었습니다. 배우님도 이 작품을 만들며 다양한 사람과 작품의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만들며 영향받은 것들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작품을 만들며 제 삶 속에서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어요.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흡수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왜 당연히 여겼을까 싶었던 말들이요. 예를 들어 월경이 시작되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데, 남자아이가 몽정했을 때 이제 아빠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은 잘 안 하잖아요. 이렇게 제가 살면서 들었던 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다들 한 번씩 들어본 말인 경우가 많아요. <선택>의 대사에도 많은 분이 크게 공감해주셨고요. 저희가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연결 지점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이런 경험을 했다는 걸 인식하는 일, 우리가 부당하게 강요받은 것들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당연하지 않은데, 너도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공감하면서요. <선택>도 그런 식으로 작품 속 상황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연결되었으면 해요.

 

 

꼭 <선택>이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창작하실 때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제 일상과 고민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은수와 비슷한 게 있다면 옛날 일을 자주 곱씹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인식 변화 자체가 아이디어가 되곤 해요. 최근에는 고전의 재해석 작업을 많이 했는데 옛날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에서부터 출발한 경우가 많아요. <선택>도 시작은 ‘장화홍련전’이었어요.

 

 

 

“두려움에 속아 내 마음을 못 보는 건 아닌지 주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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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쓴 작품 속 인물을 자신이 연기하는 건 특별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극을 쓰시며 만들었던 은수와 작가님이 배우로서 연기한 은수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요?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선택에 자신이 없고 자기 의견이 흐릿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은수라는 인물을 만들었어요. 저는 보통 친구 관계에서 직설적이고 자기 의견이 분명한 ‘수진’과 비슷한 포지션인데, 은수를 만들며 제가 평소에 답답해했던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의견을 말하고 자기를 내세우기 힘들어하는 게 개인의 기질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그런 태도를 바라는 사회적 영향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게 아예 없지는 않거든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특정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수줍어지고 불안해지는 제 모습을 살피며 은수라는 인물을 이해하려 했어요. 흐릿한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 선명한 소리를 낸다면 또 새로운 어떤 메시지를 줄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연기할 때는, 제가 눈빛이나 목소리가 강해서 은수의 이미지에 안 맞을까 봐 거듭 사양했어요. (웃음) 막상 하게 되니 저랑 결이 다르고 평소에 연기 많이 안 해본 인물이라 재미있었어요. 연기하다 보니 대본 쓸 때는 막연하게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부분을 몸으로 직접 깨닫는 순간도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은수의 마음이 작동하는구나’하고 무언가가 관통하는 느낌으로요. 쓸 때는 몰랐던 걸 몸으로 하면서 재발견한 거예요. 제가 쓴 사람을 제가 연기하면서 더 깊이 알게 되는, 저 혼자 아는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연극을 보며 현실에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배교수와 한솔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서사에서는 오히려 남성 인물을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배교수와 한솔이 어떤 인물로 보이기를 바라셨나요?


관객 분들이 굉장히 싫어하시더라고요. (웃음)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싫어하셔서 당황하기도 했어요. 대놓고 악당을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고, 옳은 게 아닐지라도 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두 사람은 평소에는 점잖고 선한 모습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평화로움이 권력임을 깨닫지 못했을 때 생기는 갈등, 당사자성이 없어서 생기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오는 폭력, 그리고 착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작업하거나 출연하셨던 여러 작품 중 <선택>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나요? 배우님께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임신중단이라는 소재를 가져온 것도 의미 있는 부분이지만 좀 더 넓게 보자면 이 연극은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이야기라고 느껴요. 삶은 그야말로 선택의 연속이니까요. 임신중단과 임신지속은 그 수많은 선택 중 하나인 거죠.


처음에는 '장화홍련전'을 21세기로 옮겨서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레이어가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서도 계속 새로워요. 앞으로 이거보다 더 잘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의미 있는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극 중 은수가 선택을 가지를 잘라내는 일에 비유하는 대사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배우님께 중요했던 선택의 순간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선택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배우님은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우선으로 고려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그만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죠. 사람들이 나를 잘 써주지 않으니까,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그게 당연히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될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서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 해결해야 하는 게 뭔지를 잘 못 봤던 것 같아요. 남들이 나를 안 써준다면 지금처럼 제가 제 작품을 쓸 수도 있고, 다른 식으로 해결할 방법들이 있는데 두려움에 휘둘려서 진짜 원하는 걸 안 보고 어떤 선택을 하려던 순간들이 있는 듯해요.


연기를 계속할지 고민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사실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게 제 진짜 마음이었어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워서 제가 먼저 그만두려 했던 것 같아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고 어떤 두려움에 속아 내 마음을 못 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려 해요.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물론 매번 잘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충동구매도 많이 하고. (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함께 만든다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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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시작하셔서 작가 일도 병행하고 계십니다.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는 건 어떤가요?


연기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어요.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살면서 안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유도 정확히 모르고 이게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그랬어요. 창작은 공연을 해야 하는데 작가가 없어서 이 대신 잇몸으로 한다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할수록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난 경우거든요. 어떤 분은 그럼 연기만 할 수 있게 되면 연기만 할 거냐고 물어보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글을 전혀 안 쓸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게 살아가는 방식에 포함이 된 것 같아서요.

 

 

꼭 <선택>이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글을 쓰실 때, 배우로서 연기를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각각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배우로서는 ‘아 나는 저 사람 알아’라는 얘기를 듣는 게 가장 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극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있음 직한 인물, 설득력 있는 인물로 보이고 싶어요. 창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허세 부리려고 모르는 얘기를 하지 않고, 제가 알고 느낀 것을 쓰고 싶어요.

 

 

영화에도 출연하시지만 현재 창작집단 LAS에 몸담고 계시고, 극작 활동을 꾸준히 하시는 만큼 연극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것 같아요. 배우님께 연극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이기쁨 연출과 학교 선후배 사이로 2005년부터 알게 되어서 13년 동안 극단에서 함께 해왔는데, 최근에 새삼 그런 얘기를 해봤어요.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드는 거야? 우리는 뭘 하는 거지? 우리는 되게 예술적이지도 않고 되게 대중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떤 걸 하는 거지?” 같은 질문을 던져본 거죠. 결론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게 대단히 세련되거나 대단히 예술적이지 않아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 방식대로 한다는 거였어요.


최근 몇 년간 재연을 주로 하다가 <선택>으로 오랜만에 초연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준비과정에서 연극 하며 느끼는 즐거움을 다시 느꼈어요. 이야기를 알아가고 구현하기 위한 고민 자체가 즐거움이었어요. 돌아보면 연극을 재밌으려고 시작한 거거든요. 여전히 연극 만들면서 오는 즐거움이 있기에 계속하는 것 같아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함께 만든다는 게 좋아요. 여기서 ‘함께’라는 게 저는 연극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연극은 혼자 할 수 없는 작업이거든요. 그게 너무 피곤하면서도 믿는 동료들과 이 작업을 한다는 게 너무 큰 기쁨으로 다가와요.

 

 

앞으로 작가로서 쓰고 싶은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또,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작가로서 쓰고 싶은 게 따로 없어요. 언젠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쓰겠지만요. 제가 매번 작품을 끝낼 때마다 더 이상은 안 쓴다, 이게 유작이다 말을 해 왔는데요, 계속 유작이 갱신이 되어서 이제 안 쓴다는 말은 안 하려고요. (웃음) 의뢰가 있으면 글을 쓰겠지만, 제 자체적인 창작은 일단 제 안에 있던 많은 것들이 <선택>에 녹아들어 있어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안 해본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은수도 안 해봤던 캐릭터였고요. 완전한 악인을 연기해보고픈 마음도 있어요.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면 그에게 공감하는 루트가 아니라 다른 루트로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 그걸 하고 싶어서 글을 써볼까 생각도 해요.

 

 

마지막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될 <선택>의 관객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가장 좋은 선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옳은 선택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선택은 결국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건데 어떤 선택이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를 주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마음 편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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