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반복되는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문화 전반]

수많은 범죄와 그를 모방하는 또다른 범죄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9.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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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폭력 장면이 없었기에 더욱 아빠와 대훈이 단순한 가해자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김보라: 반복되는 폭력의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조차 재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폭력이란 건 보여주지 않고 상상하게 할 때 더 아플 때도 있다. 폭력이나 강간 장면이 많이 묘사되는 영화도 있긴 하지만, 그런 재생산되는 이미지는 굉장히 게으른, 성찰 없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이 본 앵글과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은가. 적어도 내 영화에서만큼은 최대한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더 아픈 감정들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머니투데이, '벌새' 김보라 감독 "영화 밖 은희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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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영화 《벌새》에는 가정 폭력의 장면이 존재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시각적으로가 아닌 영화의 흐름 내에 등장한다. 김보라 감독은 폭력의 이미지를 재생산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아픈 감정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했듯, 많은 영화에서는 폭력이나 강간 장면을 삽입하며 이는 최대한 자극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관객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술을 마시며 정치 혹은 법과 관련된 대사를 할 때, 그들의 옆에 한 명씩 앉아 있는 여성을 당신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단장하고 진한 화장을 하고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채 자신의 옆에 앉은 남성들에게 친절을 판매하는 모습과 그런 여성을 물건 다루듯 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옆에 앉아 웃으며 몸을 내어준 경험도 없고, 내 옆에 거의 헐벗은 채 앉아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다룬 적도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았기에 그 상황이 결코 낯설지 않다.

과연 미디어에서 이러한 장면을 시청자에게 전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들의 묘사를 작품의 전개를 위해, 감독의 의도를 구현해내기 위해 삽입한 장면일 뿐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다. 영화 내에서 그 상황은 아무런 문제 제기도 받지 않고 흘러가는 일상 속의 한 부분으로 묘사될 뿐이다. 관객들은 사실상 영화 내용의 이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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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영화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을 다룬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책이 쓰이고 영화가 만들어졌다기에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비장애인 가해자에 의해 목소리를 묵살당해야 했던 피해자의 입장에 공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영화를 틀었지만 나는 내 손으로 중간에 영화 재생을 정지하고 검은 화면 속 잔뜩 일그러진 나의 표정을 마주해야만 했다. 성폭행 장면이 긴 시간 동안 지나치게 길게 묘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 다루는 영화임은 사전에 정보를 조금이라도 찾아 본 사람이라면 아는 것이 당연하고, 모르는 상태였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는 가해자의 범죄 행동을 배우로 하여금 모방하도록 했고 그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결국 관객들은 어쩌면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의 가해자를 그 순간에는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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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다.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에 그의 감정에 전이되어 부푼 기대감을 안고 무대를 보게 되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 배우는 이 뮤지컬 무대를 위해 연습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저 이 작품의 좋은 면만을 바라본 것일까. 조금은 우습지만 고백하자면 실망이었다. 그 배우가 올바른 비판을 할 것이라고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릇된 상황에 대해서는 본래 누구든 비판을 하는 게 옳은 것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맨오브라만차〉에 등장하는 알돈자는 작품 내내 남자들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한다. 그리고 이 뮤지컬은 대사와 행동을 통해 무대 위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의 사건이라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 뒤에는 한 존재가 더 있다. 바로 방관자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따돌림 문제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다른 방관자들 역시 가해자를 제지하거나 피해자의 편에 서주지 않고 방관함으로써 가해에 가담한 것이다.
 
이 뮤지컬 무대는 관객들을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범죄의 방관자, 즉 제2의 가해자로 끌어들였다. 무대 아래서 지켜 보고만 있자니 무력감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피해자가 눈 앞에 있는데도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괴감과 알돈자의 절망감을 그대로 느낀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도 아니고, 당신이 무대 위 인물도 아닌데 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느냐고 한다면 원래 작품은 관객을 그 상황 속으로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 아닌가, 하고 답하고 싶다. 결국 어쩌면 관객은 방관자로서 가해자로 존재했지만, 동시에 알돈자에 공감함으로써 또다른 피해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이에 영화 《벌새》를 비교하고 싶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은희는 오빠에게서 가정 폭력을 당한다. 주인공 은희뿐인가, 그의 친구 지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벌새》는 관객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였는가? 위의 두 작품처럼 시각적으로 해당 폭력을 묘사하였는가? 감독이 의도한 대로 영화는 성숙하고도 조심스럽게 관객들에게 범죄 사실을 알려왔다. 은희의 오빠가 폭력을 가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런 폭력 행위를 보여주지 않고 짧은 시간을 사용해 소리만으로 표현했고, 은희와 지숙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공통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전달했다. 관객은 그 어떠한 불쾌함도 느끼지 않고 영화에서 필요한 가정 '폭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드라마 《로스쿨》에서는 예슬이 불법 촬영물 공유 협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를 그 어떠한 자극적인 장면이나 대사 없이 표현했다. 그저 남자가 예슬에게 동영상을 보냈고 '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예슬이 이에 놀라는 장면을 연출했을 뿐이다. 굳이 그들이 동영상 속에서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묘사하지 않고도 해당 범죄 사실을 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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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김보라 감독의 말에 기대어 나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영화에 흔하게 나오는 폭력적인 장면 혹은 범죄 장면은 그 표현 방식에 따라 오히려 작품에 더욱 깊게 몰입하도록 할 수도 있다. 배우의 연기나 대사를 통해, 혹은 짧은 효과음을 통해 충분히 전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더더욱 가능할 것이다. 〈맨오브라만차〉에서 알돈자는 성폭력을 당한 뒤 옷이 헤진 채로 무대에 재등장한다. 그의 헤진 옷을 보고, 옷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그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그런 장면을 연출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최근 제 2의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보도되었다. 'N번방 사건'은 텔레그램 등에서 '박사' 조주빈, '갓갓' 문형욱 등이 미성년자를 범죄 대상으로 하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이를 대화방에 유포한 사건이다. 3년 전 추적단 불꽃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이후 가해자들은 검거 후 처벌을 받았지만 완벽하게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위에 서술했듯,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도 '방관자'라는 제 2의 가해자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가해자로 있던 조주빈과 문형욱이 죗값을 받게 된 이후 남아 있던 또다른 가해자인 영상 구매자, 시청자들 중 '엘'은 어쩌면 수동적인 범죄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N번방 사건이 가해자가 했던 수법처럼 텔레그램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제조한 후 유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소지하고 있는 불법촬영물의 유포를 빌미로 피해자들을 협박해 더욱 높은 강도의 범죄를 저지른다. 제작자와 유포자, 시청자는 피해자들을 통해 우월감 등을 느끼며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음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결국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범죄를 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이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범죄와 작품에서 굳이 폭력 장면을 자세하고도 자극적이게 묘사하는 행위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객을 배제한 채 스토리가 전개된다. 영화 속 인물들이 그들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관객은 전지적 시점에서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특히 성범죄나 선정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면, 관객은 영화를 보며 우선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것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이는 저개발 국가의 국민을 보며 자신이 그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공감이 아닌 동정을 하며 무조건적으로 '불쌍하다'고 바라보고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영화 밖에 있는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 다행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드라마 《로스쿨》의 예슬이 겪는 일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성범죄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드물지 않게 들려왔다. 사실 성범죄에는 성적인 불쾌감을 느끼는 행위도 포함되니 한 다리를 건너지 않고 당장 나 자신부터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놀다가도 집에 잘 들어갔는지 꼭 확인을 해야 하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여러 번 겪었다. 폭력을 반복하는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는 친구를 다같이 걱정하며 제발 헤어지라며 조언을 하기도 했다. 예슬이의 마음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주변에 예슬이는 너무 많고, 나도 언제 예슬이가 될지 모른다.
 
사실 그저 몇 글자 적어보려 노트북을 열었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위에 적어놓은 예시 작품들도 수 편이 떠올랐지만 그 중 몇 개만 겨우 골라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씁쓸한 감정이 든다. 아무런 걱정 없이 밤하늘을 구경하고 친구와 남자친구의 관계를 오롯이 둘만의 것으로 남겨둘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도 쓸 말이 없어서 다른 주제로 바꾸기 위해 또다시 고민의 늪에 빠지면 좋겠다. 그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연합뉴스 "작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4천973명, 2.4배로 증가…여성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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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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