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프랑스 영화의 정수 [영화]

영화, <베티 블루 37.2>
글 입력 2022.08.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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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갔을 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예의상 들려줘야지 하고 갔던 기억이 난다. 관광지로 입소문이 난 곳인데 서점 자체는 작아서 입구에서 사람들의 입장 인원을 제한하면서 들여보내줬다.

 

원래는 에코백만 사고 나오려고 했는데 같이 간 친구가 프랑스 역사에 대한 책을 사길래 나도 프랑스 소설 한 권을 사야겠다 싶어 둘러보다가 익숙한 <베티 블루 37.2>라는 제목의 책을 집었다. 사실 영화로 먼저 알게 돼서 (심지어 영화도 제목만 안다.) 원작 책이 있는 줄 몰랐는데 유명하고 잘 팔렸으니까 영화로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 생각도 안 하고 덥석 샀다.


역시 그때 산 책은 딱 한 장만 읽고 바로 책장으로 직행했고 차라리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자 싶었다.

 

틀자마자 롱 테이크로 섹스신이 나오지를 않나 프랑스 영화답게 시도 때도 없이 헐벗고 나오는데 여자만 벗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남자도 똑같이 벗고 다녀서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편안함과 정말 인간이 가진 몸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에는 뭔가 이 영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볼 생각도 안 했고 의심도 안 했던 왓챠에 당연하다는 듯이 있길래 처음에는 왓챠로 봤다. 그런데 이런 야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 시도 때도 없는 노출마다 블러 처리를 해대서 오히려 집중력이 깨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넷플릭스에 찾아보니 감독판으로 올라와 있어서 바로 넷플릭스로 옮겨서 봤다.

 

유혈 낭자한 작품에는 블러 처리를 잘 안 하면서 왜 저런 것만 열심히 블러 처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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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명작으로 유명한 이 영화가 이런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렇게 남자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였다니.

 

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출판사에 원고를 돌리지는 않고 배관공 일을 하면서 일터에서 제공한 집에 혼자 사는 남자 주인공 조르그. 그런 조르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어리고 예쁜 베티. 조르그가 쓴 소설 원고를 우연히 보고 밤을 새워 읽으며 조르그의 재능을 조르그보다 먼저 알아보고 원고를 타이핑해서 파리의 모든 출판사에 보내는 베티.

 

베티와 같이 사는 걸 들키자 사장이 건 불합리한 조건에 중요한 물건 몇 개 빼고는 집을 불태우는 베티. 그렇게 도망친 곳은 또 베티의 친구네 집. 심지어 베티의 친구는 남편과 사별하여 큰 집을 혼자 쓰고 있어 계속 머물러도 된다고 한다.

 

무료했던 일상 속에 갑자기 나타나 내 재능도 알아봐 주고 새로 살 집도 구해주고 친구의 남자친구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남자친구의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어머니가 생전에 운영하셨던 피아노 가게 일까지 맡게 된다?


베티 친구의 남자친구 어머니가 사셨던 동네로 아예 집을 옮기면서 동네 약국 주인과도 친해지게 된다. 약국 주인의 아내는 섹스리스인 부부 관계로 욕구 불만을 가지고 조르그에게 욕정 한다. 여기서 하차하고 싶었지만 3시간이 넘는 이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본 시간이 아까워서 끝까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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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음성 결과를 보고 집을 나갔다가 만신창이로 돌아온 베티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앞에 있는 파스타를 얼굴에 뒤덮은 조르그. 사랑을 말 없이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가장 좋았던 장면.

 

 

베티가 조금씩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지만 병원에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말해도 고분고분하게 갈 성격이 아닌 건 알지만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도.

 

위태위태하던 베티는 임신인 줄 알았지만 음성 결과를 받고 정신을 아예 놔버린다. 머리도 산발에 유아 퇴행까지 와서 잘 때는 손가락을 빨면서 자고 조르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된다.

 

조르그가 자리를 비우고 집에 돌아오니 피를 치우고 있는 약국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묻자 베티가 눈을 파냈단다. 그리고 쇼크가 와서 죽은 거나 다름없는 베티를 보여주는데 이제는 어떻게 결말을 낼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조르그는 한 출판사로부터 출판 계약 연락을 받는다. 연락을 받은 조르그는 베티가 있는 병원으로 가 베개로 베티를 질식사 시켜 죽인다. 그래 여기까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베티가 쇼크로 혼자 몸도 가누지 못하는 걸 옆에서 바라볼 바에야 베티대로 살 수 있게끔, 사랑해서 베티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냄비를 올린 채 가스불을 켜고 부엌 바닥에 드러누워 있길래 당연히 조르그도 베티를 따라갈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바로 다음 장면에서 식탁 의자에 앉아 아무런 소음 없이 식사를 하고 다시 소설을 쓰는 것으로 끝나는 걸 보고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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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와 조르그가 예쁘고 잘 생겨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여성과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흥미롭게 봤지만 36년 전 영화라 남성의 판타지 요소와 임신이 여자의 모든 것이라고 치부하는 관점은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찌 보면 가장 프랑스 영화의 정수 다운 영화를 봤지만 제목 베티 블루 뒤에 붙은 숫자 37.2도가 사랑을 나눌 때의 체온이면서 임신하기 가장 좋은 체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내가 이 책을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싶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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