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영화 <인어공주>
글 입력 2022.08.26 15: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영화 <인어공주>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



'나영(전도연)'과 '도현(이선균)'은 앨범에서 뜻하지 않는 얼굴을 마주한다. 앳된 얼굴로 웃고 있는 나영의 엄마(고두심)의 어릴 적 모습. '도현'이 '나영'의 얼굴을 가리켜 네 엄마와 쏙 빼닮았다며 말하자 '나영'은 불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버럭 내지른다. '나영'은 부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목욕탕에서 세신 일을 하는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으러 떠난 고향 제주에서 '나영'은 스무 살의 엄마 '연순'을 만나게 된다.

 

 

 

My Mother, Mermaid



영화 <인어공주>는 동명의 애니메이션 작품과 제목이 같다. 영화를 서치하면 붉은 머리카락의 예쁘장한 공주 캐릭터가 한 움큼 쏟아졌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동화 같은 이야기로 아름답게 그려졌으나 나는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화 같은 제목을 이해하려면 메인 테마 곡을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My Mother, Mermaid'


아름다운 제주 풍경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곡으로 제주에서의 연순, 즉 해녀 연순을 지칭하는 제목이다.

 

 

수정1.jpg


 

제주에서 태어나 숙명처럼 물질을 했던 연순은 서울로 상경한 이후로 줄곧 대중목욕탕에서 세신 일을 하고 있다. 바다 깊숙이 자유로이 헤엄치던 연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손님과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하며 돈 앞에 체면마저 벗어던진 '엄마'의 모습일 뿐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고두심이 연기한 현 시간의 엄마 연순이 기억에 남았다. 물론 속옷 차림으로 세신사 연기를 실감 나게 펼친 배우의 기량이 크겠지만, 그녀를 보는 내내 엄마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억척스러운 연순의 모습이 나의 엄마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억척스러움에 몸부림치던 나영의 모습이, 영락없는 내 모습 같아서. 거울을 마주한다기 보다는 어쩐지 홀딱 벗고 길거리에 내쫓긴 심정이 되었다.



common-1.jpg



 

나는 연순을 줄곧 '억척스럽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절대 끊어지지 않는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진 줄기 같았다. 생명력은 생활력이 되었고 질긴 생활력은 억척스럽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젊은 시절 연순의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다정한 진국에게 온 마음을 쏟았던 연순이 시간이 흘러 돌변하게 된 것은 낯설기까지 했다.


그녀의 억척스러움은 어째서 나영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나영은 학업도 생업도 모두 엄마의 억척스러움에 채이며 뒷전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마냥 착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쌓아올린 빚보증은 이해를 바라기엔 버거운 나날들이었다. 제주로 떠나기 전, 나영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우유부단하지만 착한 아버지였다. 그러자 맹목적으로 진국을 사랑하는 연순을 바라보며 현재 나영이 처한 가족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착하죠, 그래서 더 힘들어요. 착한 게 가까운 사람한테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진국을 연기한 박해일의 미모는 눈이 부실 정도였으나 해맑은 연순을 바라보는 나영의 심정처럼 말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의 억척스러움이 타고난 것이 아닌 일련의 사건과 시간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고해성사



연순과 함께 지내게 된 제주에서 나영이 연순을 그저 사랑에 서투른 스무 살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던 것은 연순의 모습에서 엄마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영은 뭍에 두고 온 엄마 생각으로 괴롭기만 하다.


 

“…난 엄마 싫어해요.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근데 왜 이러지? 엄마가 가엾고 엄마가 불쌍하고 자꾸 엄마 생각이 나요. 이렇게 엄마를 보고 있는데도 자꾸 엄마 생각이 나요.”

 


부끄럽게도 고백하자면, 나 역시 나영처럼 엄마의 인생을 부정한 적이 있다. 분명히 말하면 상식의 범주에 들지 않는 엄마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 감정을 부끄러이 여기게 된 것은 친한 언니의 조언이 컸다.


보라는 아직 철이 안 들었구나. 온몸이 펄펄 끓는 주전자가 된 것처럼 낯 뜨거웠다. 엄마와 나의 케케묵은 감정이었고 타인이 알아서도, 알지도 못하는 감정이었는데 정곡을 찔린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어느덧 연순의 나이를 훌쩍 넘은 나는 여전히 엄마를 이해할 수 없지만, 흐린 눈으로 무시했던 엄마의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유독 날카롭게 굴었던 밤에 한탄을 늘어놓는 엄마의 삶을 감히 되짚어보았다. 나영이 연순의 세신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제 인생과 분리되었으면, 바라는 마음은 나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엄마를 사랑해서 미웠고, 엄마가 미웠지만 사랑은 여전히 지속되기에 괴로운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그림자처럼 덮쳐와 내 인생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줄곧 지켜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고 다짐했던 나는 엄마만큼도 살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SF 장르와 접목 시킨 엄마의 사랑이야기


 

C7739-56.jpg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다는 연순의 터전이자 인생 자체라고 보는 바이다. 짝사랑하는 진국이 물밑으로 전근을 간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연순은 앓아눕기 전까지 물속을 유영했다. 해녀의 숙명을 거부하면서도 물질을 통해 슬픔을 표현하는 연순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 내내 연순은 순박하고 맑은 얼굴로 종횡무진한다. 진국을 만나기 위하여 동생에게 지시한 편지 배달은 연순의 적극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자를 읽을 줄 몰라 매일 같이 젖은 손으로 진국을 맞이하고 그런 연순에게 진국은 필기도구를 선물한다.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이 장면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다정함을 누가 따라할 수 있을까. 그녀를 무시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연순의 사랑스러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얼굴. 늦은 밤, 연순을 위해 받아쓰기 연습장을 만드는 얼굴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앳된 소년의 얼굴이었다.

 

 

다운로드.jpg


 

짐작만 가능했던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SF 장르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나영은 엄마를 위해 조력자가 되어보기로 한다. 이후의 시간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젊고 순수했던 엄마의 사랑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에게 엄마는 왜 못나게 굴었는지, 더이상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 살기 위해 억척스러움을 택한 엄마에게 '왜' 라는 질문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단지 아버지를 얼마만큼 사랑했는지, 엄마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연순의 진국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은 길목마다 외치는 '오라이-' 였다. All right을 발음하지 못해 오라이로 변형된 것인데 단어가 가진 뜻 덕분에 연순의 사랑에 파란불을 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를 구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



수정2.jpg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


나영이 엄마 연순에게 던진 대사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세상 모든 딸들의 메시지다.


2000년 무렵 사랑 영화가 그러하듯 연순의 사랑은 건강하고 순수했다. 맑고 투명한 것에 반해, 나는 이 건강한 사랑의 결실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해녀로서의 삶에 회의적으로 굴었던 연순은 뭍에서도 여전히 '물질'을 한다. 이는 그녀의 인생을 스스로 부정하지 않고 그녀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와 딸을 소재로 한 숱한 소설과 영화에서 결국엔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의 입장에 단 한 번도 공감을 던진 적이 없었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제 몸에서 뚝 떨어져 나간 반쪽 취급을 하지만 딸의 입장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1인 2역을 연기한 전도연의 탄탄한 연기와 박해일의 미모가 열일 하는 이 영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가족애로 포장하기에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 그들을 이어주고 돌아온 현실에서 아버지 진국을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게 된 엄마를, 나영은 더이상 제 인생에서 배제하기 어렵다고 느꼈을 테다. 나 역시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엄마의 존재에 반감 대신 수용을 택하겠다. 딸은 끝내 엄마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런 엄마를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나의 소감이다.

 

 

 

이보라.jpg





[이보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