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꾸자, 뒤집힌 삶 [공연]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사의 찬미
글 입력 2022.08.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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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대사로, 관객의 심적 참여를 유도하는 예술인 뮤지컬은 때로는 의심을, 때로는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얻은 위로와 공감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닌, 그 공연장에 있던 같은 결의 감정을 느끼고 떠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매번 다르게 해석되는 극과 캐릭터.

그것을 보고 얻을 수 있는, 때마다 다른 위로와 공감.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이들과의 (무언의) 소통.


이렇게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비밀스럽지만 비밀스럽지 않은 미묘한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 볼 수 있는 뮤지컬 이야기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사의 찬미



사의찬미xs.jpg

 


대학로의 레전드 극이라 불리는 뮤지컬 <사의 찬미>가 10주년을 맞이하여 3년 만에 돌아왔다. 2013년, <글루미 데이>라는 이름으로 극을 올리면서부터 탄탄한 스토리와 서정적인 넘버 그리고 섬세한 배우들의 감정의 합으로 끊임없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극이다.


 
관부연락선이 오전 4시경 쓰시마섬 옆을 지날 즈음 김우진과 윤심덕이 현해탄에 몸을 내던졌다. 두 사람의 죽음은 목격자도 없었고, 시체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을 둘러싼 억측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갖가지로 비화되었다.
 

  

6연으로 돌아오는 뮤지컬 <사의 찬미>는 올 뉴 캐스트와 기존 캐스트로 총 2연에 걸쳐 진행되는데, 덕분에 관객들은 극과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명불허전의 <사의 찬미> 모두 볼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10주년을 맞이한 만큼 해당 작품에 대한 탄탄한 마니아 층과 레전드 극을 영접해 보기 위한 최초 관극러들의 피 튀기는 '피켓팅'으로 내 좌석 한자리 잡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뮤지컬 <사의 찬미>. 사람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치열한 티켓팅으로 극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내일이 올까? 내일은 올 거야



극작가 김우진 / 조선 최초 여성 소프라노 윤심덕 / 관념적 존재인 사내

 

이 세 사람 사이에서 계속해서 펼쳐지는 심리전을 바탕으로 한 극으로 우진의 유약함, 심덕의 당돌함 그리고 사내의 지배력 덕에 극은 한층 저 처절하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중략)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고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희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 윤심덕, '사의 찬미' 중

 

 

더불어 축음기로 간간이 들려오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찰나에 사는 사람'이었던 그 들 셋이 '찰나에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 돼가는 와중의 처연함을 노래하는 듯 들려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시인을 꿈꾸는 남자, 김우진과 가수를 꿈꾸는 여자, 윤심덕.


빼앗긴 조국을 위해 헌신하지 못하는 부르주아임을 부끄러워하는 남자 김우진과 부자들을 동경한 재능 있는 가난한 여자, 윤심덕.


각자의 결핍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결핍을 서로 채워 줄 수 있는 능력이 각자에게 있었기에, 이 둘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되었고 그렇기에 각자의 찰나의 순간에 서로를 배제하지 않기 위한 의지는 처절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거짓과 유혹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다 무시하고 이어나간 사랑은 최후의 선택이었던 죽음을 각오한 투신까지도 함께 한 것에 개연성을 불어넣어 주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오직 서로만을 본 그들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칙쇼..!



'젠장'이라는 뜻의 일본어 '칙쇼'. 극 중 김우진과 윤심덕의 행보가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자 사내가 홀연히 읊조리고 간 단어이다.


사내는 그의 대체로 김우진과 윤심덕을 죽음으로 이끈 '악'의 존재로 느껴질 수 있지만, 김우진과 윤심덕의 유약함에서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창의적인 사고 창조적인 삶'을 이끌어 내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사라져라 비밀이 되어라

찬미하라 비극의 결말을

진실은 바닷 속에 감춰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죽음의 비밀

 

- 뮤지컬 <사의 찬미> 넘버 중 죽음의 비밀

 

 

많은 사람들에게 '빌런'으로 여겨지는 '사내'이지만, 나에게는 또 그렇게만은 다가오지 않았기에 수미상관의 구조로 들려오는 사내의 <죽음의 비밀>은 그들의 비밀스러운 정사에 대한 사내의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라 느껴진다.


당시의 다소 경직되고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그들은 조선에서 신선한 대상이기 동시에 갖은 추문의 대상이기도 했기에, 자신들의 의지로 이루어진 투신 이후의 삶과 죽음만큼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그전의 삶과 같지 않은 분위기를 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라져라 비밀이 되어라 찬미하라 비극의 결말을'의 대목을 부르며 김우진의 책상 밑에 떨어져 있던, 어쩌면 투신 이후의 그들의 행방에 대한 사실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그 종이를 사내는 항상 지니고 다니던 라이터로 활활 태워버린 그의 행동은 약간의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에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그들의 의지가 담긴 마지막 선택과 결과를 '사내'가 책상 밑에 떨어진 종이를 태우며 아무도 영영 볼 수 없게 한 것은 김우진과 윤심덕을 만나게 하고 그들을 인형놀이하듯 만들어 간 사내가 그들의 자유의지를 찬미한 것으로 느껴졌으며 종이를 태워 그들의 삶이 다른 곳에서 다시 타오를 수 있게 한 것도 같았다.

 

(개인적으로 윤심덕의 평생소원대로 이태리에서의 새로운 삶이면 좋겠다.)


 

 

저 바다에 쓴다, 완벽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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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과 윤심덕

 

 

자신이 원하던 죽음이든 원치 않던 죽음이든 끝이 '죽음'인 극은 우리에게 해피엔딩으로 다가오기 힘들다. 이유가 어떻든 죽음이라는 것을 항상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두려움의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이 아닌 본인이 만들어 단호하고도 충만한 그들의 '사'는 본인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러 넣어준 또 다른 '생'의 시작으로 다가온다.


'사'이지만 완전한 '사'로 마쳐지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이기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극이며 이것이 뮤지컬 <사의 찬미>가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잊히지 않을 수 있었던 점이라 생각한다.


운 좋게 표를 잡았다면, 이 아름다운 극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이오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i)의 관현악 왈츠곡인 '도나우강의 잔 물결(다뉴브강의 잔 물결)'을 멜로디로 삼고 거기에 윤심덕이 직접 쓴 한국어 가사가 새로 붙여진 곡이라고 한다. 극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니 뮤지컬 <사의 찬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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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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