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펼치다 - 그림들 [도서]

책으로 만난 MoMA
글 입력 2022.08.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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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미술 작품을 만난다. 대개는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부터 전시관과 공원, 방송, 심지어 빌딩 앞에서도 많은 작품을 만나지만 여전히 작품 감상에 어려움을 느끼는 관람객들이 많다. 최고의 감동을 기대하며 큰맘 먹고 찾은 미술관에서도 그 부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내가 아는 작품’, 저건 ‘내가 모르는 작품’ 정도로만 구분하고,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전시장을 급하게 통과하기 바쁘다. 유명한 작품이라는데 왜 유명한지 모른 채 패스, 눈길 끄는 작품이 있어도 뭘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서 패스. ‘직접 눈으로 봤으니 됐다.’, ‘사진으로 남겼으니 됐다.’ 이렇게 스스로 위안해 보기도 하지만 그림을 보고도 뭔가 더 채워진 게 아니라 여전히 아쉽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pp.7~8)


 

여는 글의 문장 하나하나가 요즘 미술을 대해 왔던 내 태도의 핵심을 찔렀다. 어쨌거나 나는 미술을 전공한 입장으로서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미술사의 주요 몇 작품들에 대해서는 기본 소양을 갖추어야 했고, 그것은 교과서나 누군가 물어볼 때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내용과 해석, 사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학습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동안은 그것이 미술학도로서 나의 요상한 자존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반대로 말한다면, ‘모르면 수치스러운 것’이 된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오랜 꿈이었던 미술이란 것은 줄곧 내게 어떤 거창한 사명감을 부여해왔는데, 막상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짐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급기야 ‘그래, 난 원래 미술 같은 거 잘 몰랐어’라며 삐딱한 태도가 되어버렸는데, 희한하게도 조금은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 명화의 위상이 ‘이제는 너무 많이 본 흔한 그림’ 정도로 몰락하던 와중에 문득, ‘그냥 한번 다시 들여다보기나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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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림들은 바로 MoMA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MoMA(The Museum of Modern Art)는 살면서 언제 방문하게 될지도 알 수 없는 머나먼 타지, 뉴욕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이다. MoMA에는 널리 알려진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2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저자는 미술관 도슨트답게 이 책을 마치 직접 MoMA에 방문해 도슨트에게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현장감 있게 구성하고자 했다고 한다. 책에는 그가 추린 16인의 작가를 중심으로 MoMA에서 소장하고 있는 대표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작품들도 함께 실려 있다. 또 먼 훗날 MoMA를 직접 방문했을 때 참고하면 좋을 팁과 미술관 구조 등은 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시선을 안내하는 방식이었다. 각 편에서는 소개하는 그림에 따라 빠르지 않은 전개의 질문들을 담고 있어 풍부한 생각의 여지를 준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는 과학자, 의사, 목사 등 다양한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본 인터뷰를 싣기도 했고,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는 감정에 다다르기 위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 얻은 답변들을 싣기도 했다.

 

언젠가 문학을 해석하는 수업에서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교육받아 왔던 문학의 해석은 이를 편찬했던 연구자들 사이에서 채택된 것이 널리 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미술품 역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고, 책에서 다루는 MoMA의 작품은 특히나 작가 사후의 것이 대부분이라 작품의 의도나 해석의 진위를 따지는 일이 불분명할 것이다.

 

도슨트북인만큼 기본적으로 작품 탄생의 배경과 미술 사조, 기법 등 물론 교양을 위한 어느정도의 전문적인 정보들이 알차게 담겨 있지만, 미술을 대할 때 나를 더욱 자유로운 기분과 맞닿게 해준 것은 저자의 ‘~라고 짐작한다’, ‘~가 아닐까?’와 같은 추측성 어미였다. 전문가인 그가 선뜻 이런 가벼운 방식으로 물꼬를 틔워 준 덕분에, 그간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발화되곤 했던 미술에 대한 기존 지식의 잔여물들은 잠시 뒤로 한 채, 그림들을 새삼스럽고 새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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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ko, 「No. 5」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할 때 45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봐 달라고 제안한다. 45센티미터면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다. 로스코의 제안대로 작품을 감상하려면 보통 작품을 볼 때보다도 더 가까이, 작품 앞으로 쑥 다가서야 한다.

 

로스코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미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신은 미술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약 6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놀랍게도 그중 70퍼센트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로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가졌던 신성한 종교적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pp.250~251)


 

그중 가장 새삼스러웠던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었다. 평소에 나는 다양한 색채와 화려하고 섬세한 요소가 많이 들어간 인상주의풍의 그림들을 좋아하고, 또 그런 화풍의 그림을 즐겨 그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실물로 보고 싶은 그림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라는 점이 매우 의외였다.

 

작품에서 그가 추구한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은 내 취향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로스코의 작품이 왜 유명한 거지?”, “나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했었다.

 

그런데,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무조건 실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책이나 인터넷 등의 자료로 볼 때는 그의 그림이 그저 한낱 컬러 팔레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는 그의 그림들은 매우 압도적인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작품이 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마크 로스코 작품을 자세히 보면, 색이 캔버스를 꽉 채운 게 아니라 끝자락이 조금씩 비어 있어서 캔버스 위에 색 덩어리들이 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색채의 잔상 효과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 그림을 눈앞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노란색 아래에서는 초록색, 빨간색, 흰색 등이 제 존재를 숨기고 있는데, 이로부터 몇 가지 색을 계속 덧칠하면서 색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그는, 작품을 만든다는 게 곧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로스코는 그림을 그릴 때 누구도 보지 못하게 비공개로 작업을 했다. 그래서 그가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색 작업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의미 없는 작품명과 무엇을 표현하는지도 모를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면 눈앞에 색 덩어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느낌이라고 하는데, 보다 보면 어느새 감정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이 그림을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직접 보게 된다면 내 감정은 어떤 색에 휩쓸려 가게 될지, 나는 과연 무엇으로 채워질지 매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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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ko Chapel

  

 

사진은 로스코의 작품과 함께 소개된 로스코 예배당(Rothko Chapel)이라는 공간이다. 1954년 마크 로스코는 “여행자나 방랑자가 한 시간 동안 작은 방에 매달린 그림 하나 앞에서 명상할 수 있는, 작은 예배당과 같은 공간을 전국에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소.”라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따라 로스코의 작품 14점이 사방을 에워싼 전시장이자 명상 공간이 탄생했다. 이곳은 어느 한 종교, 종파가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를 아울러 누구나 각자의 예배와 기도,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치유의 공간이라고 한다. 작품을 눈앞에서 실제로 감상한다는 것 못지않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시공간 또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감상의 여정을 온전히 틔워 줄 장소에서 그림과 함께 하는 감정의 울렁임이란 과연 어떤 느낌을 지니고 있을지, 더욱 궁금해진 대목이었다.


*

 

사실 사람이 너무나 많은 곳은 체력 때문에라도 피하게 되는지라, 일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도 루브르 박물관은 차마 들를 생각조차 못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MoMA 역시 비슷한 인상이었는데, 이번 독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또한 결국 간접적일 뿐이라, 페이지를 지나오며 미술이 주는 경험에 몰입할수록 실제로 이 모든 일화들이 출발했던 그 시선에 머물러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여운이 꽤 많이 남았다.

 

한편, 대중과 취향, 시대, 그리고 이야기를 타고 살아남아 후대에 전해지는 ‘그림들’의 조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를 가능케 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역할이란 무엇일지,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는 과연 어떤 ‘그림들’이 남게 될지를 떠올려 보는 일은 나를 채워 줄 무언가를 찾는 발견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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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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