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

글 입력 2022.07.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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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사랑 얘기지만 잔인한 여름이라는 제목이 어울려서.

 


원래도 움직이기도 싫게 만드는 습기 가득한 날씨라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해가 바뀌면서 학기가 끝나고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이 붕 떠버리는 시기인 여름이 더더욱 싫어졌다.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촘촘히 짜둔 사람이라면 이 시기가 두렵지 않겠지만 난 정말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는 성격이라 이 시기가 다가오면 점점 불안해진다. 이번에도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면 해야지 하고 미뤘다가 놓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다 내 잘못인 걸 알고는 있어 탓할 사람도 없다. 여름은 탓할 사람이 없는 나에게 잘못 걸린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귀국 후 한동안 계속 친구들을 만났다. 예전 같았으면 연예인, 연애 얘기 같은 시답잖은 얘기를 했을 텐데 이제 하나둘 졸업을 할 시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업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난 아직까지 정확히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공부를 더 하겠다고 대학원에 간 친구들이 반,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한다고 자격증을 따고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는 친구들이 반이었다.

 

친구들이 대단하면서도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난 여태껏 뭘 한 걸까. 관심 있는 건 많지만 쉽게 질려 해서 이것저것 깔짝 대다 손을 뗀 것만 해도 아마 셀 수 없지 않을까.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맨날 하는 일이라고는 유튜브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게 다면서 노력 없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던 내가 한심해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대외활동도 찾아봤다.


요즘은 대외활동용 SNS 계정을 따로 만들어 본 계정과 분리시켜 운영하기도 해서인지 아예 대외활동용 SNS로는 지원조차 안 되는 활동도 보였다. SNS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지만 지원도 못하게 한다는 것에 무력감이 들었다. 또 이런 유형 말고도 3개월 단기 대외활동인데 채용처럼 심층 면접을 보는 곳도 있었다. 까라면 까야 되는 세상인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AI 면접도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면접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AI가 뭔데 나를 평가해라는 마음 반과 쉴 틈을 주지 않는 질문에 기가 쏙 빨려서 나중에는 카메라에 내가 찍히든 말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표정관리도 안 했던 것 같다. 당연히 면접 결과는 처참했다. 화상면접이라 위에는 포멀한 옷을 걸치고 밑에는 수면바지를 입고 면접을 본 건 처음이라 혼자 집에 있는데도 뻘쭘했지만,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알게 된 한 가지는 내가 카메라 공포증이 있거나 혹은 비스름한 공포증이 있다는 것이다. 렌즈만 들이대면 로봇처럼, 아니 로봇이 더 움직임이 부드러울 정도로 뚝딱거리게 된다.


그리고 요즘은 영화도 드라마도 잘 보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현실을 잠깐 잊을 수 있어서, 도피 수단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만 과몰입했다가 남겨지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이제 다시 잠깐 잊었던 현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상담했던 학과 교수님께 잘 다녀왔다는 인사로 시작해 사실은 취업 관련 상담을 목적으로 다시 연락을 드렸다. 휴학도 1년을 했고, 같이 지냈던 친구들은 다 대학원에 갔는데 나만 취업도, 대학원도 다 늦은 것 같다고 말하니 원래 그러시는 분이 아닌데 중간에 내 말을 끊고 그런 게 어딨냐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살짝 운 걸 생각해 보면 난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누가 그랬다. 지금 나이에 늦은 건 키즈모델밖에 없다고. 인터넷에서 보고 그냥 웃기네 하고 넘겼던 말인데, 왠지 모르게 자신감을 주는 말이 됐다. 언젠가는 여름을 좋아하게 되길.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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