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우아한 옐로우 다이아몬드, 샤넬 넘버5

샤넬 넘버5에 관하여
글 입력 2022.07.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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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합성향료인 알데하이드(Aldehyde)에 대해 알아보았다. 알데하이드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여 정확히 어떤 향이라고 콕 집어 정의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향수 애호가들이 생각하는 알데하이드의 향은 꽤나 일관적이고 특징적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알데하이드로 마케팅을 한 샤넬 No.5의 세계적인 히트 덕분이다.

 

어떤 분야마다 소위 ‘덕후’라고 일컫는 엄청난 광팬이자 매니아층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인정이 유명함과 마케팅 성공의 척도는 아니다. 그들은 이미 그 분야에 너무 깊게 들어가있어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진정한 척도는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는, 즉 일반인들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지점에서 No.5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일 것이다.

 

제아무리 향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No.5만큼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 향은 몰라도 이름만은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유명한 것으로 더 유명한 샤넬과 그의 향수 No.5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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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를 런칭한 가브리엘 샤넬은 브랜드 이미지 때문인지 유년시절부터 아주 유복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수녀원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을 철저한 금욕 생활 속에서 보내야 했다.

 

또한 수녀원에서는 청결을 아주 강조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비누 냄새는 늘 그녀에게 어린시절의 잔상을 남겼다. ‘The secret of Chanel No.5’의 저자 Tilar Mazzeo는 이 어린시절의 기억이 샤넬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No.5에 쓰인 알데하이드는 aldehyde C-10, aldehyde C-11 등이 있는데, 이 향들의 특징은 희석하지 않으면 굉장히 강한(어쩌면 불쾌할 수 있는)취를 지녔으며 느끼하고(Fatty) 톡 쏘는 향이 난다. 누군가는 고수 같은 향이 난다고 하는데, 실제로 고수에 비누나 로션 향이 느껴지는 알데하이드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No.5의 조향사 어네스트 보가 당시로써 상당히 과감하게 알데하이드를 사용하여 만든 향수 중에서 특히 다섯 번째 샘플이 샤넬에게 선택된 건 알데하이드의 비누취가 유년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 아닐까. 실제로 수녀원의 기억은 향뿐만 아니라 샤넬의 간결한 모노톤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향수를 런칭할 때도 그녀는 평범한 방식을 쓰지 않았다. 곧바로 매장에서 향수를 진열해서 판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이용한다. 출시 전부터 파리의 모든 샤넬 매장에 No.5 향을 뿌리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부유층 고객들에게 라벨도 붙이지 않은 향수를 선물하였다.

 

사람들이 향에 관해 물어보아도 대답하지 않으며 신비주의를 고수하자 많은 이들이 이미 출시도 전에 이 독특하고 알 수 없는 새로운 향에 매료되어버렸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 효과가 No.5의 성공에 한 몫 한 것은 맞지만, 샤넬 자체의 이미지 또한 성공에 큰 역할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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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출신의 샤넬은 당시 기준으로 별 볼일 없는 출신의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그녀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지만 후원해주던 애인들의 역할도 컸다. 당시에는 부자나 귀족들의 정부로 들어가 후원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샤넬도 그 중 하나였다.

 

초기 사업의 시작은 애인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어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인맥까지 모든 것이 샤넬에게 도움이 되었다. 정부로 지내던 시절에도 샤넬은 일반적인 정부들과는 달랐다. 당시는 여자들이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던 시기인 만큼,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육감적이고 성적인 매력이 풍기는 정부들과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부인들. 샤넬은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이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화려한 외모와 몸매를 가지진 않았지만 누군가의 애인으로서 사랑받는 매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자로는 드물게 자신만의 일을 하는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반되는 이미지는 모든 그룹의 사람들에게 환영 받았으며 이는 No.5의 향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샤넬은 No.5의 향을 의뢰할 때 ‘장미가 아닌, 여인의 향이 나는 향’을 요구했다. 또한 ‘개념 속에 존재하는 꽃으로 만든 꽃다발’같은 향이라고 설명했다는 점을 보면 샤넬은 특정 자연의 향을 모방한 향이 아닌 진짜 사람에게서 날 것 같은, 여인의 체취를 원했던 것 같다. No.5는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꽃 향기에 비누처럼 톡 쏘는 알데하이드 향이 섞여 샤넬의 인생 전반기 수녀원의 소박한 기억과 중반기의 정부와 사업가로서의 화려한 기억 모두 아우르는 정체성을 띈 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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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No.5의 향은 늘 ‘수십 개의 컷으로 반짝이는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킨다. 향수의 수색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꽃 향기는 깊은 황금색이 떠오르게 만든다. 그에 더해 No.5의 핵심인 알데하이드는 반짝임을 담당한다.

 

조명 아래의 화려한 옐로우 다이아몬드를 상상해보자. 세밀하게 커팅된 표면은 은하수처럼 유려하게 흐르듯 반짝이고 그 안으로는 녹은 황금같은 색이 가득 차 있다. 유색 다이아몬드는 자칫하면 촌스럽거나 올드해보일 수 있는데, 정말 좋은 질의 유색 보석은 차마 촌스럽다 말할 수 없게 아름답다.

 

No.5도 마찬가지이다. 1920년대에 처음 출시되어 세대를 거슬러 할머니의 장롱에서 어머니의 화장대로 이어지며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상징적이며 아름답다. 고전으로써 향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향수들은 참 많다. 그 중 아직도 생산되는 것, 또 그 중에서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샤넬의 No.5는 거의 유일무이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No.5는 백화점 1층 같은 진한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지만(물론 그런 뉘앙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실제로 시향을 해보면 상상했던 뻔한 돈 많은 여사님 향이 아니라며 놀라는 사람들도 많다. 막 씻고 나온 여자가 떠오른다는 상반된 반응도 있으니, No.5가 얼마나 흥미로운 향인지는 꼭 한번 직접 느껴보길 추천한다.

 

100년 전의 향이 나에게 꼭 맞는다는 건 너무나 낭만적인 경험일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향수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듯한 샤넬의 패션철학을 남기며 마무리해본다.

 

 

“패션은 단순한 옷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은 바람에 깃들어 공기 중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또 들이마신다. 그것은 하늘에도, 길거리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생각, 격식, 사건에서 비롯된다.”

 

- 가브리엘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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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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