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연이 멈춘 시간 - 최인 기타 리사이틀 ‘MUSICSCAPE’

글 입력 2022.06.2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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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계산을 잘못해 공연 시간에 늦을 뻔했다.

 

내가 내리는 버스정류장에서 공연이 열리는 문화 비축기지 T1 건물까지 네이버 지도는 12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 시간이면 이미 공연이 시작되고도 10분이 지난 터였다. 처음 가보는 음악공연의 시작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버스가 멈추고 문을 열어주는 그 순간부터 미친 듯이 뛰었다. 언뜻 언뜻 비추는 주변 풍경은 흔히 볼 수 없는 녹색의 향연이었으나 그 정취를 느낄 새도 없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와 급박한 뜀박질로 인한 조급한 들숨 사이에서도 청명한 풀 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문화 비축기지는 초록잎들이 마음 편히 자신을 뽐낼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제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숨을 한참 고르고 나니 급히 들어온 공간이 그제서야 보였다. 문화 비축기지는 오래된 석유 비축기지가 다시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된 공간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공연이 열린 파빌리온은 원형의 공간은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매봉산 암반과 그 위의 하늘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다. 자연의 냄새와 소리가 천장의 뚫린 공간으로 들어와 기타의 연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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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푸른빛의 공간 가운데로 검은 옷차림의 주인공, 최인 기타리스트가 들어섰다.

 

갈색 기타를 들고 수줍은 얼굴의 그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잔잔한 목소리로 연주할 곡에 대해 설명했다. 아쉽게도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그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 듣기는 어려웠지만, 언뜻 들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심한 관찰과 다양한 관점을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書 서>


 

‘글을 쓴다는 것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 정신을 가다듬는 것과 같다.’는 서예의 정신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첫 곡은 선비들이 붓질 한 번에 쏟는 정성을 담아내듯 섬세한 선율을 느낄 수 있었다. 기타라는 서양 악기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심의 싹을 단번에 잘라냈다.


연주 중 기타를 북처럼 치는 순간들이 인상에 남는다. 유려하게 연주하는 가운데 들리는 둔탁한 소리들이 잠깐의 숨을 고르게 했다. 기타의 아름다운 음률이 귀를 간지럽히는 가운데, 여러 외적인 소리들도 함께 들어왔다.

 

연주자의 움직임에 따라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 천장으로 들어오는 얇은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고요한 숨소리가 한 데 어우러졌다. 그 소리들이 마냥 거슬리지 않았던 까닭은 기타리스트의 뒤로 펼쳐진 정돈되지 않은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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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앞바다에서>, 그리고 <가던 길>


 

두 곡은 최인 기타리스트의 오랜 벗인 피리 연주자 유현수와 함께한 곡이다. 피리와 기타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했다. 이 기묘한 이중주는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묘한 조합을 이뤄내며, 동서양의 깊은 합주를 보여주었다.


<김포 앞바다에서>는 기타의 부드럽고 잔잔한 선율에 성량 좋고 강렬한 피리가 얹어졌다. 최인 기타리스트의 이전 무대들에서 연주자는 대개 눈을 감고 연주하다가 이따금 허공을 바라보곤 했다. 그 시선의 끝에 걸려있는 장면들이 궁금하곤 했는데, 이번 이중주에서는 피리 연주자와 함께 눈을 맞추며 서로의 템포와 연주를 맞춰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던 길>에서는 멜로디가 반복되는 메나리 조 선율로 이어지는데, 이전 곡과 달리 서로 대화하듯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기타는 꾸준히 침착한 음들을 유려하게 이어가는 한 편, 피리는 음을 토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한의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 악기 같다고 느꼈다.

 

먹먹한 정서를 다룰 때, 기타는 묵묵하게 옆을 지키며 잔잔한 위로를 건네주는가 하면, 피리는 내 고통을 덜어가 자신이 더욱 아파해주는 느낌이었다.

 

 

 

<섬>, 그리고 <숲>


 

최인 기타리스트는 낯선 섬에 갔었던 기억 속에서 낯섦이 마냥 싫은 것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감상으로 <섬>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이 콘서트를 보러 와서 느낀 것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처음 가본 내게 파빌리온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연주는 낯섦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공간과 연주가 합쳐지며 피어나는 생기에 나는 푹 빠지고 말았다.


<숲>은 연주자의 숲에 대한 사랑, 그리고 멋진 사람들이 모여 이룰 숲을 소망하며 만든 곡이다. 제목처럼 이 곡은 숲을 꼭 닮았다. 연주를 들으며 나는 울창한 숲을 걸으며 올려다 본 풍경을 상상했다. 아무렇게나 뻗은 가지에서 아무렇게나 틔운 잎들이 만든 울퉁불퉁한 선들을 따라 음표들이 움직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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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 기타리스트의 잔잔함이 요동치는 심박수를 진정하게 하고, 자연과 자연스러운 기타의 연주는 그날의 내 심박수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최근의 내 일상에 안정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늦을 뻔한 것은 지난 나의 일상을 대변하기 위함이었나 싶기도 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오니 어둑어둑했다. 그제서야 내가 빠르게 지나친 풍경들을 구경한다. 문화 비축기지, 그리고 기타 연주가 내 일상에 삑사리를 냈다. 내 오선지에 남겨진 튀는 음이 어수선했던 연주를 멈추고 잠시 눈을 감게 했다.

 

눈을 감은 동안 나를 자연으로 이끈 기타의 선율 덕에 나의 연주는 한층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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