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루이스 웨인’의 그림 속 고양이처럼 – 루이스 웨인 展 [전시]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인간들도, 모두 행복할 수 있길
글 입력 2022.06.1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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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답이 없지

어쩔 수 없어 태생인걸

가까이 삭막한 네 하루에 마법을 걸게

 

선우정아, '고양이' 가사 中

 

 

시선을 사로잡는 구슬같이 맑고 반짝이는 큰 눈과 부드러운 털, 솜 뭉치 같은 발의 말랑말랑한 젤리, 도도한 태도와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곁을 허락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친근한 표현들까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은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출구 없는’ 고양이의 매력을 담아낸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가공된 캐릭터로서 고양이를 그린 콘텐츠뿐만 아니라 실제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보여주는 1인 미디어 콘텐츠까지, ‘고양이’는 수많은 미디어에서 그 매력을 높이는 중요한 소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이렇게 인간들에게 깊은 애정을 받는 만큼이나, 또 다른 인간들에 의해서는 학대, 유기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터무니없는 오해와 미움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가 그려내는 문화 예술 속의 고양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쩌면 영국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루이스 웨인(Louis Wain, 1860-1939)’의 그림들이 이러한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보는 데 참고가 될지 모른다. 그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 강하게 존재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영국에서 애정 어린 시선과 반짝이는 재능으로 고양이들을 그려냈다. 그리고 고양이들이 루이스 웨인에게 그랬듯,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서 즐거움과 따뜻함을 더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루이스 웨인의 첫 특별 기획 전시인 <루이스 웨인 展 : 고양이를 그린 사랑의 화가>에서는 이렇게 고양이에 대한 루이스 웨인의 마음이 듬뿍 담긴 그의 원화(原畵)와 오리지널 판화 등을 볼 수 있었다.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루이스 웨인 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고양이와 함께 해 온 루이스 웨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모두 담아낸다. 이를 통해 ‘고양이’라는 모델을 그려내는 ‘화가’ 루이스 웨인의 방식과, 평생 고양이를 돌보고 관찰하며 그들과 함께 해온 ‘집사’ 루이스 웨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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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 展 : 고양이를 그린 사랑의 화가> 섹션(Section) 구성

1. 어서오세요, 루이스 웨인의 세계로(WELCOME TO LOUIS WAIN'S WORLD)

2. 우리 모두 다 고양이인 것은 아닐까?(ACTUALLY, AREN'T WE ALL CATS?)

3. 고양이들의 은밀한 사생활(THE SECRET PRIVATE LIVES OF CATS)

4. 일상 속의 고양이들(LOUIS WAIN'S CATS IN DAILY LIFE)

5. 마음의 병(DISEASE OF THE MIND)

6. 치유의 고양이(ANIMAL-ASSISTED THERAPY)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 ‘고양이’ : 애정 어린 관찰이 만들어 낸 섬세한 묘사


 

루이스 웨인의 작품을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그가 그린 고양이들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쫑긋할 것 같은 뾰족한 귀와 표정이 담겨 있는 초롱초롱한 눈, 부드러운 결이 살아 있는 고양이 털에 대한 묘사까지, 굉장히 섬세하게 고양이들을 그려냈다.

 

비록 의인화되어 표현된 고양이들도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고양이들이 짓고 있는 각기 다른 표정과 행동들이 ‘고양이’의 특성과 습관을 그대로 연상시켰다. 심지어 석판, 잉크, 수채 물감, 크레용, 과슈 물감, 파스텔, 색연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는데도, 각각의 재료가 가지는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섬세한 묘사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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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고양이들을 관찰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루이스 웨인이 그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고양이, ‘피터’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를 관찰하고 그렸던 것은, 그가 평생에 걸쳐 고양이를 그리게 된 시작점이었다.

 

비 오는 날, 유방암 투병을 하던 아내 ‘에밀리’와 집 앞을 산책하다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에게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내와 함께 피터를 돌본다. 당시 영국에서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둘은 피터를 사랑으로 대하며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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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이스 웨인은 이러한 피터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에밀리, 그리고 피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했고, 에밀리의 권유에 따라 이 스케치들을 출판 관련 편집자들에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점점 고양이를 그리는 삽화를 맡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무려 150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작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스타 고양이 화가’ 루이스 웨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피터를 포함해 모든 고양이들에게 향했던 루이스 웨인의 애정만큼,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모두 ‘사랑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어쩌면 그의 눈에 비친 고양이들의 모습을 함께 보는 듯한 느낌을 느끼며, 그의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고양이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그림들은 고양이에 대한 영국인들의 편견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그림이 큰 인기를 끈 이후, ‘소수의 결혼하지 않은 나이 든 여성들만 고양이를 키운다’는 여성과 고양이 모두에 대한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나 런던의 남성 고양이 집사들의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루이스 웨인은 당연히 이 모임에 참여하였으며, 1891년부터 5년간 ‘국제 고양이 클럽’ 회장으로 재직했고, 이후에도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고양이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이렇듯 그의 그림들을 보며 ‘무엇을’ 그리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려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루이스 웨인은 애정을 담아 자세하게 관찰한 고양이의 외모와 행동들을 그림 안에 녹여냈고, 그동안 오해받아 온 특성이나 행동들을 포함한 고양이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려낸다.

 

물론 고양이는 루이스 웨인에게 ‘모델’ 그 이상의 의미였겠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모델’을 대했다는 점에서 ‘화가’ 루이스 웨인 역시 뛰어난 예술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여전히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웃음거리로 소비하거나 그들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문화 예술 작품들이나 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의 작품들이 전하는 온기가 더 와닿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고양이’ 처럼 살 수 있다면 : ‘의인화’된 고양이들


 

루이스 웨인의 초창기 작품들은 자연스러운 고양이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동작과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점차 인간처럼 차려 입고 두 발로 걸으며, 예술 활동이나 스포츠, 파티 등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특히 세 번째 섹션 ‘고양이들의 은밀한 사생활(THE SECRET PRIVATE LIVES OF CATS)’을 보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노래를 배우며, 크리켓이나 골프, 테니스를 즐기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등장하고, 여섯 번째 섹션 ‘치유의 고양이(ANIMAL-ASSISTED THERAPY)’에서 볼 수 있는 그의 후기 작품 중에도 정원에서 티파티를 갖는 고양이들이나 두 팔로 아이들을 안고 있는 엄마 고양이를 그린 그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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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은 이러한 의인화를 통해서 인간들의 모습을 고양이들의 모습에 비춰보며 풍자하려 했다고 한다. 특히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상한 척을 하지만 항상 표정과 감정을 숨기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당당한 고양이의 모습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듯한 작품들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인간처럼 꾸미고 행동하고는 있지만, 고양이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표정과 태도만큼은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된 표정과 태도들은 모두 고양이들에게서 포착해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또 ‘인간다운’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아도, 인간의 시선에서 ‘해석’된 고양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특히 <모두가 나를 사랑해서 나는 행복해요(I AM Happy Because Every One Loves Me, 1928)>와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어요(I fell in Love with a lovely kitten)> 같은 작품을 보면 사랑스러운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림들을 통해 루이스 웨인이 그림의 ‘모델’로서만 고양이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나 생활의 ‘모델’로서도 고양이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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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루이스 웨인이 가진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고양이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공감하기에 충분하며, 이를 통해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문화 예술의 생산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비인간동물들을 인간의 시선에서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지나치게 의인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태도임은 분명하다.

 

비인간동물들은 오랫동안 체화해온 고유의 습성과 각기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지각력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점들은 때로 인간의 시선이나 기준에서만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없거나 인간들에게는 왜곡되어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따라서 비인간동물을 지나치게 인간의 시선에서만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간중심적인 태도가 문화 예술에 그대로 담겼을 때, 비인간동물을 지나치게 대상화하고 이에 대한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비인간동물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이들을 희화화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경우 이들에 대한 혐오와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의인화 역시 비인간동물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기보다는, 너무나도 쉽게 인간의 시선에서만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도구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물론 비인간동물을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모든 방식과 작품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인간동물을 다루는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 예술에서 그 당사자성을 반영할 수 없기에, 더 섬세하고 치열한 고민과 공부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2020년 배포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동물을 감정이 있고 지각력이 있는 존재로 드러내고 있는지’, ‘인간중심적이고 종차별적인 관점에서 동물을 도구화, 희화하하지 않는지’, ‘특정 동물을 혐오 대상으로 삼는 언어를 사용하거나 동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동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지’ 등 문화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다양한 측면에서 비인간동물을 다루는 방식과 표현을 살피고 고민해봐야 한다.

 

루이스 웨인의 그림 속 고양이들은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특히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림들을 보면 저절로 함께 행복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 속에 고양이들도 진짜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양한 문화 예술 작품 속에서 또 미디어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림 속 세상만큼 아름답지는 않다. 하지만, 루이스 웨인의 그림 속 고양이들처럼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과 비인간 동물들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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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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