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분홍을 좋아하지 않아 [사람]

글 입력 2022.06.1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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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빠는 먼 출장길에 자주 오르셨다. 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지금에야 그 나라들이 어디에 있고,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알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 이름들을 목이 끄덕이는 지구본을 돌려가며 찾을 뿐이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사라진 줄만 알았던 당시의 감정들이 다시 피어난다. 잊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묵혀두고 있었던 거다. 당장 눈앞의 사람이 멀어진다는 아쉬움과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빠를 만날 수 없다는 슬픔이 지배적이었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상상되어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살짝은,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아빠가 사오시는 초콜릿을 기다렸으며 어떤 ‘선물’과 함께 돌아오실까 기대했었다.


아빠의 선물은 보통 세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 것과 남동생의 것.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하는 건 색이었다. 식탁에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선물 중 하나가 내게로 전해지기 전에 나는 이미 알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빠가 굳이 내 손에 쥐여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분홍색을 담고 있는 무언가를 먼저 집었다. 언젠가 다 같이 떠날 해외여행을 위한, 분홍색 나비가 그려진 여권 케이스라던가. 방울과 리본이 달린 머리 끈을 보관했던, 이름 모를 공주님이 붙어있던 분홍색 3단 서랍장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


물론 ‘선물’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뻤지만, 동생의 것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걸 막을 도리는 없었다. 분홍색 나비보다는 하늘색 로봇이 좋았으며, 공주님보다는 짙은 파란색 자동차가 갖고 싶었다. 동생이 자기 물건에 그다지 욕심이 없었던 순한 아이였기에, 그의 무선 조종 자동차는 나와의 공공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분홍뿐이었다.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사랑에서 비롯된 선물들에 답답함을 느낀 게 언제부터였더라. 나는 파랑과 초록을 좋아했다. 그것들이 자연의 색이어서 좋아하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난 항상 번잡한 도시보다는 여유로운 자연 속에 머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분홍색 꽃잎이 흩날리는 계절을 이제 막 지나왔는데…


아,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가 떠오른다. 내가 파랑과 초록을 좋아했던 건 분홍에 대한 반항 정신에서 자라난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보여지는건 분홍색 세상이었으니, 청개구리처럼 모든 여자아이에게 강요되는 분홍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는 괜찮은 가설이다.


그렇다면 파랑과 초록을 좋아한 게 먼저인가, 분홍을 싫어한 게 먼저인가. 내 취향에 정확한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아 순서를 고민해보지만, 곧 의미 없는 일임을 깨닫고 그만둔다.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난 지금까지 분홍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톰보이(Tomboy, 2011)’를 고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달이 공전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왜 이제서야 봤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영화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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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보이: 남자의 성역할을 하는 여자 또는 중성적인 매력을 띠는 여자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익숙해진 것들을 뒤로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나’로 출발할 기회다. 이차 성징이 오지 않은 어린 몸과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가진 ‘로레’가 ‘미카엘’로서 낯선 이들 앞에 선다. 미카엘은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땅에 침도 뱉어가며 남자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축구를 한다.


처음 친해진 ‘리사’와 감정을 발전시키고, 망설임 없이 바닷속에 뛰어들어 차디찬 자유를 온몸으로 느낀다. 동생 ‘잔’에게 로레는 어느새 듬직한 오빠가 되어 있다.

 

그는 미카엘로서 또래 친구들 앞에 당당히 섰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완벽히 만족했다. 또 그 모습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여성으로 낳은 이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딸이 ‘남성의 머리’를 하고, ‘남성의 옷’을 입는 것을. 그리고 미카엘로 살아가는 것을 말이다.

 

부모님에게 모든 거짓말을 들킨 미카엘의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은 ‘파란색 원피스’다. 분홍이 아님에 안도해야 하는 걸까, 바지가 아님에 절망해야 하는 걸까. 억지로 원피스에 몸을 구겨 넣고, 그동안 미카엘이 만났던 친구들에게 로레와 그의 엄마는 사과한다. 품이 넉넉한 원피스지만, 원피스를 입은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그 무엇보다 옥죄는 옷으로 느껴졌을 테다.


영화는 로레가 만족할만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미카엘로 다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톰보이’를 희망적이라 여기는 까닭은 ‘미카엘’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모습을 숨기지 않고서도 ‘로레’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의 시작점이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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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가 다시 한번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로레’라고 대답했기에. 짧은 머리를 가졌든, 긴 머리를 가졌든. 그가 입는 옷에 구속받지 않고 자기 의지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첫걸음을 디딘 것이다. 지금의 어린 로레가 어떤 청소년이 되어, 어떤 어른이 될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

 

어릴 적, 분홍을 싫어했고, 그 대신 파랑과 초록을 좋아했던 아이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여전히 분홍을 싫어하고, 파랑과 초록을 좋아한다. 그리고 베이킹과 뜨개질을 즐겨한다.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되는 분홍을 거부했던 아이치고는, 통상적으로 ‘여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취미에 아주 푹 빠져있다.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애정하는 행위들은 고스란히 나의 의지와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있는데, 사실은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받은 사회적 교육의 산물인가? 내가 나의 취향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사실은 만들어진 취향이었던 것인가?


‘나’라는 사람을 떠올려보자면, 분홍을 싫어하지만, 겨울에 입는 분홍색 니트의 감촉을 좋아한다. 치마와 원피스 대신 바지를 입지만, 여름이면 리본이나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를 종종 입는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고, 단정하고 간결한 것들을 동경하는 만큼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사 모은다.


동생과 로봇을 가지고 놀던 때에는 인형이 옆에 있었고, 분홍색 나비에 실망했던 기억과 진한 붉은색 핸드백에 기뻐했던 기억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고민거리였지만 이제는 어떻게 모순을 대해야 할지 알 것만도 같다. 어느 한 쪽의 취향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취향의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간단하고도 간단한 태도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고민에 소요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게 해준 동력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의 수많은 어린 로레들이 파란색 원피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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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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