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텔 르완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날' [영화]

우린 여전히 그날을 기억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글 입력 2022.06.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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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텔 르완다>와 <4월의 어느 날>을 연달아 감상하고서 마음이 착잡했다. 전쟁의 참상이나 그 배경의 야비한 식민주의는 차치하고, 내가 여기에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연히 모르겠다고 피할 수 없는 건 '르완다 내전'이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약 100만 명이 학살당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20여 년이 지났을 뿐,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런 복잡한 심경은 일단 뒤로 하고, 영화를 공부하는 필자에게 있어 같은 주제를 두고 다른 전개를 펼치는 두 영화가 있다면, 냅다 비교해봐야 속이 풀릴 이야깃거리다. 그런고로 영화 <호텔 르완다>와 <4월의 어느 날>의 차이를 알아보려 한다.

 

 


주인공의 시간적 배경에 따른 차이



주인공의 시간적 배경에 따른 차이란, 영화 내적 요소를 따진 관점으로 극중 인물이 처한 서로 다른 입장을 전개할 때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면서 생긴 차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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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호텔 르완다>는 주인공 폴(위 사진 참고=좌-실제 폴 루세사바기나, 우-폴을 연기한 배우 돈 치들)이 ‘르완다 내전’의 발발을 현재진행형으로 체험한다. 즉, 주인공의 시선과 행동을 따라 사건이 흘러가며 관객은 자연스레 폴의 관점에 이입해 감상하게 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폴의 가족 및 호텔로 도망해 온 이들이 그들을 태운 UN군 운송 차량까지 습격한 후투족 군대에서 벗어나는 장면, 후투족 군대가 호텔 내부에 들어와 위협을 가할 때 폴이 벨기에로 넘어간 틸렌스 사장에게 도움을 구하는 기지를 펼쳐 가까스로 위기 모면하는 장면 등 사건의 발생과 해결에서 보여지는 긴장감과 긴박감을 통해 관객은 재미를 느끼고 주인공의 무탈이 가장 큰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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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4월의 어느 날>은 종전 후를 현재 시점으로 설정하고, 주인공 어거스틴(위 사진 참고=좌-어거스틴 역의 배우 이드리스 엘바, 우-그의 아내 잔느 역의 캐롤 케어메라)이 전쟁의 피해자이자,목격자로서 경험한 전쟁의 참상을 플래시백(Flashback) 기법으로 설명한다.

 

영화는 해당 기법으로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후투족이지만 투치족 아내를 둔 형 어거스틴과 조카들을 예뻐하면서도 투치족에게 극히 반(反)하는 동생 오노레의 견해 차이, 전범 재판에 부쳐진 오노레와 모든 것을 전쟁으로 잃어버린 채 동생을 지켜보는 어거스틴의 모습, 전쟁의 실질적 원인이면서도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모르는 체하던 서양 열강의 안일한 태도 및 늦장 대처를 보여준다.

 

이러한 까닭에서 관객은 본 작품을 통해 단순히 어거스틴이라는 캐릭터가 그의 상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거스틴이 대표하는 르완다인- 후투족과 투치족 가를 것 없이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됐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폴 루세비가나는 실존 인물로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어거스틴과 분명 다른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두 영화가 나아가는 방향을 살필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란 그간 전술한 주인공의 입장과 그들의 시간적 배경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각자 다른 관점을 지닌 채로 <호텔 르완다>는 휴머니즘 담긴 폴의 영웅담이자 감동 드라마 장르의 오락으로서 경제적 흥행을 노렸다면, <4월의 어느 날>은 전쟁에 의해 가족 및 친구를 잃는 고통과 그러한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까지의 역사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여전히 진행 중인 내부 갈등과 그저 묻어뒀을 뿐인 통증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다시금 전쟁의 피해를 되새기고 더 나아가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며 직접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제안한다.

 

 

 

자본의 차이


 

자본의 차이란, 영화 외적 요소를 따진 관점으로 제작에 들어간 비용과 송출하는 플랫폼은 어디인지, 또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의 수준 등에서 나타난 관점 차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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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텔 르완다>가 가진 내러티브적 특징은 할리우드 흥행 공식을 따른 실화 기반 블록버스터라는 점, 영웅담 서사를 구현한다는 점 등 다양하지만, 일일이 나열하지 않고 하나로 압축해서 설명하면- 바로 ‘돈’이다.

 

<호텔 르완다>는 주인공 폴부터 <오션스 일레븐>의 베셔인 데다, 콜로넬 올리버 역은 <뉴욕 스토리 - 인생 교습>의 닉 놀테, 적십자에서 온 팻 아처는 <어댑테이션>의 카라 세이무어, 외신기자 잭은 <글래디에이터>와 <그녀>의 와킨 피닉스, 아주 짧게 등장하는 틸레스 사장 역도 <레옹>의 장 르노까지, 웬만한 등장인물 전부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즉, 대놓고 히어로물과 휴머니즘을 적절히 섞어 잘 팔릴 만한 영화로 시작한 거다.

 

할리우드 영화를 배척하거나 면박을 주려는 건 전혀 아니지만, 폴과 그의 가족들이 르완다를 탈출하자 해피엔딩이 돼 버리는 <호텔 르완다>가 이토록 명쾌한 이유는 ‘돈’이 맞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제 같은 스케일 묘사 및 뛰어난 몰입감을 불러온 것은 물론, 무엇보다 흥미와 감동을 함께 전달하며 월드 박스 오피스 33,882,243달러라는 초대박 흥행을 세웠으므로, ‘르완다 내전’의 참황을 확실히 알렸다는 데에서 영화의 의의는 명확하다.

 

또한 외신기자 잭이 폴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내 생각엔 끔찍한 일이라며 자기네끼리 수군대곤 하던 식사를 계속할 것 같은데요”라며 씁쓸한 서구 사회에서의 모르쇠와 무관심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적지만 서양 열강의 당시 무책임한 행태를 묘사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호텔 르완다>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보편적인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으면서 ‘모든 생명은 같다’는 명제 하에 드러나는 폴의 휴머니즘 면모를 같이 담아 감동 실화 드라마의 관점으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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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4월의 어느 날>은 HBO에서 텔레비전 방영을 위해 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호텔 르완다>와 달리 극 중 흥미 요소나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 적어 상업적인 느낌이 덜하다. 한마디로 담백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작품은 전쟁 때문에 가족과 친구를 잃었으나, 전쟁에 동참해 투옥된 동생만이 죽지 않은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물을 중점으로 전개된다. 앞서 썼듯, 형과 동생 그리고 현재와 과거라는 양측을 오가면서 전쟁이 일어났던 약 100일간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을 여럿 보여주는 것이 본 영화의 중요 관점이다. 이를 통해 전쟁의 피해자는 후투족과 투치족 그 누구도 아닌 르완다 전체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자본의 차이, 다시 말해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HBO에 돈 없는 게 아니므로, 제작 비용을 떠나 그 매체가 가진 특성에 의해 더욱 진솔한 형태로 지금까지도 그 아픔이 치료되지 않은 ‘르완다 내전’을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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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여기까지 짧게나마 두 영화의 관점을 비교해봤다. 참 흥미롭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몇 가지 차이점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한편, 이와 별개로 여전히 또다시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확신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떠오르는 걸 말해보자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영화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NEVER AGAIN’을 실천하는 게 아닐까. 정치인들의 말 뿐만 아닌 'NEVER AGAIN'을 위해, 입이 아니라 발과 손과 마음으로 위로를 직접 행하는 일. 어거스틴이 재판에 증인으로 온 이를 고무하기 위해 ‘Be strong, take courage…’라며 노래 부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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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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