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주는 감동 -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City Lights'

글 입력 2022.06.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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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트프로젝트) 찰리 채플린 라이브 콘서트 포스터.jpg

 

 

찰리 채프린 라이브 콘서트는 ‘City Lights’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 각본, 작곡, 출연을 한 대표적인 걸작 중 하나인 무성 영화 의 영상을 4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는 공연이다.


<시티 라이트>는 미국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가난한 방랑자(The Tramp)와 꽃 파는 시각장애인 여인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이다.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이면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씁쓸한 냉소와 조롱의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


이 작품은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슬랩스틱과 직접 작곡한 영화음악을 사용하여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찰리 채플린은 영화 내의 모든 사운드를 배제하고 오직 음악만으로 인물의 움직임을 강조함으로써 캐릭터의 생동감을 극대화하였다. 그는 긴박하거나 역동적인 장면에서 타악기를 활용하여 서스펜스를 유발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표현할 때는 현악기를 활용한다.


 

떠돌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늘상 도시를 배회한다. 주머니 속 쥐어지는 돈은 단 돈 몇 푼. 화장한 오후, 길가를 배회하던 떠돌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여인이 꽃을 파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가진 전 재산으로 꽃 한 송이를 사고자 한다. 때마침 백만장자가 차 문을 ‘쾅’하고 닫자 여인은 꽃을 산 떠돌이를 인정 많은 신사로 오인한다. 여인에게 애정을 느낀 떠돌이. 낮에는 여인에게 신문을 읽어주며 소식을 전하고 밤에는 여인의 치료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술에 취한 백만장자와 친구가 된 떠돌이는 그로부터 여인의 치료비를 얻게 된다. 여인에게 떠돌이는 마음 따뜻한 모습이지만, 현실의 떠돌이는 비루한 행색으로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 일쑤. 화려한 도시 속 떠돌이와 여인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까?

 

- 시놉시스

 


유성영화 시대에 태어난 필자는 무성영화를 보는 것이 처음이다. ‘무성영화’라는 단어는 텍스트로만 역사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성영화로 어떤 감동을 받을 수 있을지, 컴퓨터 그래픽이 고도로 발전된 현시대에 무성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또한, 찰리 채플린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기에 그 이름은 알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영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점이 그를 ‘천재’로 불리기 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영화와 오케스트라가 합쳐진 특이한 공연이었던 만큼,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무대 위에 입장했다. 안두현 지휘자는 찰리 채플린처럼 모자를 쓰고, 그와 비슷한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등장 후 무대 위는 암전 되었고, 오로지 스크린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럽지만 과하지 않은 몸짓에 매료되었다. 대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고 이에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음악 외에 아무런 효과음이나 배경음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극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많은 컴퓨터 그래픽과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보다 스크린 안이 꽉 차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인물이 정확하게 부각되었고, 사건도 단순한 것으로서 그것을 위해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떠돌이와 한 맹인 소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떠돌이와 백만장자의 이야기가 들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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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ity Lights 장면 中

 

 

술에 취해 죽으려고 하는 백만장자를 우연히 발견한 떠돌이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서까지 구해준다. 이에 백만장자를 그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와 함께 집으로 귀가한다.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하지만, 백만장자 집에 있는 집사는 떠돌이가 못마땅하고 계속해서 그를 쫓아내려고 한다.

 

백만장자는 떠돌이를 누구보다 소중한 이를 대하지만, 다음날 아침 술에서 깨자마자 떠돌이를 집에서 쫓아낸다. 떠돌이는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아무런 반항 없이 나간다. 하지만, 떠돌이가 백만장자를 마주할 때마다 백만장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그런 그는 계속해서 떠돌이한테 “친구”라고 말하며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또다시 술에서 깨자마자 그를 내쫓는다.

 

맹인 소녀가 22달러가 없어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떠돌이는 일도 하고, 복서로도 참여하여 돈을 벌고자 한다. 술에 취한 백만장자를 마주하는 순간 백만장자는 떠돌이에게 1000달러를 아무렇지 않게 건넨다. 하지만, 술에서 깨자마자 그를 강도라고 생각하고 경찰에게 신고하게 된다.

 

이런 반복적인 구조를 통해 부자와 거지 사이에 존재하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술’이라는 매개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모두 떠돌이는 같은 사람인데, 도대체 무엇이 백만장자에게 떠돌이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여준다.

 

 

스크린샷 2022-06-04 오전 12.11.29.png

(c) City Lights 장면 中

 

 

하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맹인 소녀는 떠돌이가 가져다 준으로 눈을 수술해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와 함께 꽃 가게를 차려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출소한 떠돌이는 우연히 그 앞을 지나게 되고, 신문팔이 소년들한테 놀림을 당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 떠돌이임을 알리 없는 소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던 와중에 신사가 소녀에게 와 꽃을 주문하고, (자동차 소리와 함께 항상 그녀를 찾아오던 떠돌이였기에) 소녀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순간 그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한다. 이때 과연 소녀가 떠돌이를 보게 되면 어떤 얼굴을 할까 괜스레 불안해졌다.

 

떠돌이는 우연히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그녀에게 밝히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떠돌이에게 소녀는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친절을 받았던 것처럼 떠돌이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넨다. 그리고 떠돌이가 꽃을 받는 순간 두 사람은 소녀는 떠돌이의 손을 잡게 되고, 그 순간 떠돌이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임을 안다. 그녀는 말한다. “당신이에요(You)?” 떠돌이는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볼 수 있어요(you can see now)?” 소녀는 이제 볼 수 있다고 대답하고 떠돌이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다.

 

아무런 대사가 없는 장면이지만, 단순히 눈빛만으로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전해져 눈물을 자아낸다.  동시에 소녀가 떠돌이의 본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않고 그 자체를 봐준 그녀의 태도를 통해 현시대에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해준다.

 


IMG_6366.JPG

 

 

그렇다면, 마지막 의문이 존재한다. 이미 음악이 존재하는 이 영화를 굳이 왜 오케스트라와 ‘함께’ 봐야 하냐는 것이다. 기존의 영화 안에 존재하는 음악은 ‘녹음’이라는 한 단계를 거친 것으로서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극장의 무대 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간접성과 직접성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직접적인 음악을 통해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동시에 음악이 주는 힘을 강하게 느낀다.

 

또한, 지금까지 극장에서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로 혹은 성악가를 위해서, 작품(오페라, 뮤지컬 등)을 위해서 존재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는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오케스트라와 결합할 수 있는 것이 기존의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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