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감독이 아닌 화가로서의 팀 버튼 – 팀 버튼 특별전 [전시]

그림을 사랑한, 성실한 괴짜였던.
글 입력 2022.05.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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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하고 음울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 가위손이나 유령신부 같은 아이코닉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마이너 감성을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놀라운 영화인. 무엇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화감독 팀 버튼이 1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팀 버튼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은 팀 버튼 프로덕션이 기획한 두 번째 월드 투어다. 지난 50년 간 감독의 작업 과정을 담아냈다. 재밌는 건 그가 아직도 예순 초반 밖에 안 된 리빙 레전드라는 것이다. 50년이라 한다면 노년의 예술가,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거장을 떠올리겠지만 진즉에 예술을 시작했던 이 괴짜 천재에겐 ‘겨우’ 50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림을 위한 영상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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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시작은 그의 유년부터 대학 시절동안의 초기작이다. 삽화와 같은 투박한 드로잉작과 단편 필름들이 걸려 있다. 특히 영화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전시 후반부보다 더 많은 영상물이 게시돼 있다. [섹션 1: 인플루언스]를 크게 그림과 영상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 – 애니메이션 작화의 기초를 깨치던 시기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칼아츠(CalArts) 대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디즈니에서 일하기도 했던 경력이 드러나듯 흔히 말하는 ‘디즈니 작화’와 비슷한 그림들이다. 오동통하고 퉁실퉁실한 캐릭터들이 다채로운 표정으로 안면 근육을 움직인다. 흑백색의 명암 활용, 과장된 트랜지션 기법 등을 연습한 흔적이 보인다.


영상 – 어쩌면 전시를 통틀어 팀 버튼의 열정과 도전 정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먼저, 그는 학부 시절 생각보다 아주 많은 단편 필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영상 대부분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 영화다. 카메라 렌즈로 찍은 것이다.


그는 이 실사 필름에서 모션 픽쳐를 연습한다. 영상의 대부분은 레코드 버튼을 눌러 ‘녹화’한 것이 아니라 단발적으로 찍은 ‘사진’을 이어 붙인 것이다. 스톱 모션에 가깝다. 이를 통해 수천 개의 정지된 프레임이 한 편의 영상으로 재생될 때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 있다. 어떤 편집점과 구도, 컷이 적절한지. 각 씬이 충돌할 땐 어떤 효과가 파생되는지. 스크린에 그려질 몽환적인 세계는 어떻게 그려야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는지. 그 시도와 실험의 흔적이 역력하다.


애니메이터로서 그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지점이었다. 후기에 실사 영화를 많이 찍긴 했지만 그의 베이스는 그림, 애니메이션이었다는 것. 실사는 그림을 위한 레퍼런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팀 버튼에 대해 몰랐던 사실: 다채로운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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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림에 대한 그의 애정이 본격적으로 보여 진다. 섹션 2~5에선 다양한 테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전시됐다.


[섹션 2: 특별한 홀리데이]에선 왜 그의 작품에 그토록 많은 파티가 열리는지 짐작케 해준다.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조용한 시골 소도시에서 자랐다는 버튼은 연말에 열리는 시끌벅적한 축제가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성대하게 성탄절을 기념했던 이유, [유령수업]과 [유령신부]의 저승에서 왁자지껄 춤을 추고 술을 마셨던 이유, 비쩍 마른 해골들이 그렇게 흥이 많았던 이유는 그가 파티의 들뜬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섹션 3: 유머와 공포][섹션 4: 인물에 대한 탐구]에선 ‘크리쳐(creature, 생명체)’에 대한 그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사물과 동물의 본연 모습을 거부하고 버튼만의 시선으로 재창조한다. 원근법을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특정 부분을 과도하게 확대하거나 축소한다. 젓가락처럼 빼빼마른 신사, 툭 치면 터질 것처럼 부푼 땅딸막한 남자 캐릭터가 눈에 띈다.


또 다른 동·사물끼리의 과감한 결합을 통해 괴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청소기처럼 흡입하는 꼬리에 악어처럼 뾰족한 이빨을 가진 크리쳐는 전에 없던 공포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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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건 그의 화풍이다. 그의 그림들은 각기 다른 재료로 그려졌다. 버튼의 특기라 할 수 있는 얇고 가는 펜 그림. 흑백 컬러만을 사용했음에도 풍부한 명암과 섬세한 털 표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그가 소화한 화풍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했다.


명랑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옅은 수채화, 짙은 컬러와 거친 페인트 질감으로 위압감을 주는 유화, 망상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연기처럼 표현한 파스텔, 아이들의 서툰 손길처럼 삐죽빼죽한 크레파스, 윤택을 자랑하는 끈적한 반짝이풀, 겹겹이 색을 쌓는 형광펜, 종국엔 입체에 대한 갈망을 실현해준 조소까지. 익살스런 연필 스케치가 전부인 줄 알았던 그의 화풍은 사실 아주 다채로웠다.


새삼 그의 천재성 뒤에 숨겨졌을 노력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나 성실하게 기초를 훈련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여러 미술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연습했던 과정―아마도 예술대학을 다니며―은 상상력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 주었을 것이다. 어떤 천재든 타고나진 않는다는 것, 그의 꾸준한 열의가 느껴졌다.



 

기대하던 그 순간: 영화 속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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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전시회 관람객들이 기대했던 바로 그 순간이다.


[섹션 5: 오해받는 낙오자]에선 우울하고 외로웠던 버튼의 아웃사이더들을 조명한다. 왜 그런 암울함이 유달리 빛났던 걸까. [조개 소년]이란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전달한다. 흉측한 조개로 태어난 소년이 부모에게 천대 받다 결국 잡아먹힌다는 짧은 잔혹동화는 ‘사랑 대신 혐오 당할 때’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사회와 섞이고 싶지만 거부당하며 혼자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열혈이 애정을 갈구했지만 종국엔 그 꿈을 자포자기했던 이들. 홀로된 캐릭터들의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전시회 벽과 바닥에 늘어져 있다.


[섹션 6: 영화 속 주인공]은 버튼의 필모그래피 모음집이다. 1985년 데뷔작 [피위의 대모험]을 시작으로 대표작인 [유령수업], [가위손], [배트맨],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혹성탈출], 최근작 [덤보]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까지 간결하게 정리돼 있다.


그전까진 종이에 2D로만 그려졌던 것들이 3D 인형으로 구현되었다는 게 특징이다. 많은 캐릭터들이 모형으로 만들어졌고 일부는 실제 영화에 사용됐던 것이다. 관절이 꺾인 채(그의 대부분 캐릭터들이 그렇듯) 찢어진 레이스를 흩날리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솟아나는 구간이다.




다양한 개인 작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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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엔 이미지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준다. 영화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끊임없는 창작을 통해 쌓인 방대한 양의 작업물들이다.


[섹션 7: 폴라로이드]에선 그림을 사진으로 역구현 하려 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분리된 자신의 다리(마네킹)를 들고 있는 여성, 몸집보다 큰 사슴뿔을 달고 있는 강아지 등 여러 사물을 조합해 폴라로이드로 찍었다. 실사 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을 연습했던 과거(섹션 1)과 반대로 이번엔 그림을 통한 실사 연습이다.


[섹션 8: 세계 여행]에선 ‘그림’이 그의 삶에 얼마나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간결하게 스케치된 냅킨 수십 장이 널려 있다. 세계 각지의 카페·레스토랑 출신일 이 냅킨들을 자세히 보면 언젠가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의 초기 버전을 발견할 수 있다. 버튼에게 냅킨은 아이디어 메모장이자 일상을 담는 일기장이었다.


[섹션 9: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는 팬들이 환영할 비하인드 스토리다. 정식 착수되지 못하고 중단된 필름, 텔레비전, 도서 프로젝트가 소개된다. 특히 실사 크기의 조형물이 설치된 ‘해적 시리즈’가 압권이다. 섹션 6에서 재현된 인형은 무릎 정도 높이였지만 여기선 2미터를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버튼에게서 영감 받은 호주 아티스트들에 의해 제작됐다는 이 모형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자랑한다. 알록달록 꾸며진 화단에서 사람만큼 커다란 해적들과 눈 마주치고 있노라면 버튼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소박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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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은 소박하다. [섹션 10: 팀 버튼 스튜디오]는 그의 작업실 한 켠을 재현해놓은 것이다. 언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다양한 종류의 화구들이 놓여있고, 넓은 코르크판엔 수십 장의 그림이 붙어 있다. 작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그림만 그렸을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곳이다. 그렇게 전시는 끝이 난다.


 

 

팀 버튼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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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놀랐던 건 팀 버튼에게 영화감독보단 미술가, 페인터, 화가의 정체성이 더 깊어 보였단 것이다. 전시의 팔할은 납작한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수백 장이 넘을 방대한 분량에서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집요하게 드로잉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의 다양성을 위해 시도했던 건 카메라 기종이나 렌즈가 아닌 화구를 바꾸는 것이었고, 영상을 녹화하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데 절대적 시간을 더 투자했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영상화를 위한 콘티가 아니었고 짤막한 아이디어 스케치도 아니었다. 한 폭 한 폭 모두 심혈을 기울인 온전한 작품이었다. 영화감독의 영화 제작과정이라기 보단 한 미술가의 그림 전시회가 더 걸맞을 것 같았다.


버튼은 말보다 그림을 그리는 게 더 편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작품 구경이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에 가깝다. 고독한 유년시절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우울함, 고향에 대한 추억, 감독으로서의 고충과 예술가의 재치 있는 농담을 모두 그림으로 얘기하고 있다.


[팀 버튼 특별전]은 영화감독으로만 알고 있던 팀 버튼의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성공한 영화감독, 애니메이터, 미술가, 그리고 그림에 미친 성실한 괴짜라는 것이 팀 버튼이란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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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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