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은 특별하고도, 이상한 이차원 [음악]

글 입력 2022.05.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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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 노래 중에는 유독 가사를 곱씹어 보게 하는 곡이 많다. 이번 글에서는 정규 2집 《R U Ready?》의 타이틀곡인 'WoW!'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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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는 데뷔 때부터 러블리즈를 맡아온 윤상 중심의 프로듀싱 팀 '1Piece(이하 원피스)'가 작업한 곡으로, 발랄하고 통통 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중독적이다. 또한 원피스의 작사가 전간디 외에도 김이나가 작사에 참여했다. 전간디가 비유적인 표현을 활용한 가사를 잘 쓴다면 김이나는 캐릭터성과 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타일이 서로 다른 두 작사가의 협업 덕분인지 'WoW!'는 러블리즈 노래 중에서도 가사의 깊이가 남다르다.


원피스가 작업한 러블리즈 노래의 특징이라면, '사랑에 빠진 소녀(숙녀)'를 화자로 삼는다는 점이다. 케이팝에서 사랑은 흔하디 흔한 소재로, 이를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각 그룹의 페르소나가 된다.


그리고 러블리즈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대개 짝사랑이다. 화자는 자신의 말이 청자에게 가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너만 보면 해주고픈 얘기가 참 많'다며(Ah-Choo) 계속해서 노래한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사랑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 짝사랑의 성질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다 바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도리어 자신에게 몰두하게 된다. 자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일방적 관계에서 소녀들은 사랑 자체나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나에 초점을 맞춰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령 'Candy Jelly Love'의 가사를 보자. 이 노래의 화자는 너와의 사랑을 마치 사탕이나 젤리처럼 여기며, '그대 사랑 한 방울 떨어뜨리면 행복이 번'진다고 노래한다. 제목처럼 달콤하기 그지없는 가사다. 하지만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던 소녀는 2절에서 '우리 둘이 한 얘기는 사실 '나만 아는 그 얘기'였으며, '못 다한 얘기'를 '언젠가는 그대와 다 나눌 거라' 믿는다고 말한다.


이 곡이 짝사랑 노래인지, 이별에 관한 노래인지는 제쳐놓고 무언가 기묘하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그대의 사랑'이 '첫눈처럼 깨끗'하다고 주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노래 안에는 '나'에게 사랑을 주거나 받을 상대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대 없는 겨울'에도 그대를 품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봄처럼 따뜻'하다고 노래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되고,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라던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처럼 러블리즈는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하는 일에 도가 튼 소녀들이다.


러블리즈 노래의 화자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내가 지금 할 말이 있'다며 '너'를 사랑하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계속해서 말한다. 소녀들은 자신의 마음에 무척 솔직하며 거기서 오는 기쁨과 설렘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자신을 애틋하게 보고, 사랑스럽게 묘사하며 사랑이 주는 황홀과 설렘을 충분히 만끽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연습하고, 감춰놓은 애교가 있고, 그를 다정하게 깨우고 싶어한다고 해서 러블리즈가 그리는 여성상이 수동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이유다. 혹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소녀상을 답습한 것뿐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걸 해주거나 그 사람이 웃는 걸 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이 모든 언행은 기꺼운 일이다. 오히려 그 어떤 공리도 따지지 않으며, 짝사랑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바라고 있을 '사랑받기'를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랍기까지 하다. 사랑 앞에서 소녀들은 매우 능동적이며, 헌신적이고, 마음(욕망)에 충실하다.

 

 


 

그리고 'WoW!'는 러블리즈의 페르소나인 사랑에 빠진 소녀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곡이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 뿐야 윙크라고 착각하면 안 돼

그 순간 너와 나의 거리감이 사라져버려

 


다소 비범하게 시작하는 이 가사는 'WoW!'의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한쪽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윙크로 착각해선 안 된다며 스스로 읊조리는 데서 마치 함부로 꿈꿔선 안 되는 학교의 인기인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장면이 연상된다. 혹은 이미 짝사랑 중인 상대에게 괜한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을 달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쪽이든 화자가 청자로부터 '거리감'이 느껴질 만큼 멀리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은 특별한 이차원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

그려왔던 모든 게 다 될 것 같은데

사랑은 이상한 이차원

눈물에 번져갈 스토리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은데

 

 

처음에는 크게 의미가 없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라는 건 워낙 그 성질이 다면적이라 어디에 빗대든 말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를 직전의 가사와 연결 지으면 그저 1차원적인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화자는 분명 한쪽 눈을 감으면(윙크) '너와 나의 거리감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 사람은 왼쪽 눈으로 본 상과 오른쪽 눈으로 본 상을 결합하거나 재구성해 하나의 입체시를 만들어낸다. 한쪽 눈을 감을 경우 원근감이 떨어져 두 눈으로 볼 때보다 사물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즉, 윙크는 '너'가 너와 나의 심적인 거리를 좁히는 행동인 동시에, 나로 하여금 너와의 제대로 된 거리를 잴 수 없게 만드는 행위다. 조금이라도 착각하고 싶지 않다니, 정말로 조심스럽고 애틋한 사랑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끝내기에는 어쩐지 찜찜하다.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는 분명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수줍다는 이유로 물러난다니. 러블리즈가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소녀상은 닿을 수 없다는 것 알면서도 계속해서 닿으려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사랑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려왔던 모든 게 다 될 것 같'다는 가사는 이렇듯 간절한 소망이 현실에서는 실현불가능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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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뮤직비디오 내용을 살펴보자. 러블리즈 멤버들은 영상 속에서 '2차원'으로 묘사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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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러블리즈는 2차원의 인물이다.

 

뮤직비디오에는 멤버들 얼굴을 합성한 종이 인형이 나와 움직이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멤버들은 컴백 전 라이브 방송에서 'WoW!'가 2차원에 있는 화자가 3차원의 인물을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만화 속 인물이 만화를 읽고 있는 현실의 독자를 보는 시점이라고 생각하면, 이어지는 가사들이 충분히 이해간다. 차원이 다르니 손을 잡고 싶어도,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만화 안에서 아무리 '그려왔던 모든 게 다 될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자 현실에서는 바람 한 번 불면 '넘어갈 페이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화의 스토리는 '눈물에 번져'가게 된다.

 

 

들리지 않아도 닿지는 않아도

내 맘을 이 풍선에 저 풍선에 담아

여기 Pop! 저기 Pop! Pop! Pop! Pop!

내 맘을 곱게 접어서 세우면

이 차원을 넘어 한 칸씩 한 칸씩

네 세상으로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사랑에 빠진 소녀는 매우 능동적이다. 다른 이들이 사랑 앞에서 성별, 국적, 나이 등을 고사할 때 러블리즈는 차원마저 넘어버린다. 자기 마음을 (말)풍선에 담아 만화 바깥의 너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이를 곱게 접어서(평면) 세움으로써(입체) 이(여기/2) 차원을 넘어 한 칸씩 한 칸씩 네 세상(현실)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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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인형에서 인간으로 변한 멤버들이 벽 뒤에서 손짓하는 의미심장한 장면 역시 3차원의 존재를 2차원으로 끌어들이는 부름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녀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여전히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은데'(그럴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손짓을 따라 간 곳에 있는 건 실제 러블리즈가 아니라, 러블리즈를 쏙 빼닮은 여덟 개의 등신대다. 러블리즈의 오랜 짝사랑 서사를 볼 때 이들의 사랑은 그리 순탄한 결말을 맺지 못할 것 같다. 만화 캐릭터를 덕질하며, 대체 왜 현실 인물이 아니냐고 한탄한 적 있는 나로서는 이 만화 속 소녀들에게 공감하다 못해 연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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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러블리즈는 2차원의 인물로 보인다.

 

1과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다. 러블리즈는 뮤직 비디오에서 이전에 활동했던 곡과 관련된 굿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만화 속 인물이 아니라 3차원에 존재하는 아이돌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눈에 비치는 러블리즈는 여전히 2차원의 존재다. 아이돌 러블리즈의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가 슬로건, 사진엽서, 포스터 등 3차원적이지 않은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팬이 아이돌을 접하는 매체는 대개 TV, 전광판, 휴대폰 등 평면적인 화면으로 그 속에 있는 사람이 3차원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2차원의 캐릭터와 다름없게 보인다. 소위 말하는 안방수니*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안방수니 : 오프라인 행사 등을 잘 가지 않고, 안방(집)에서만 덕질을 하는 사람.


아이돌은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이미지(캐릭터)를 팔고 있다. 작가가 만화 속 인물을 두고 어떤 부분은 보여주고, 어떤 부분은 보여주지 않기를 택하는 것처럼 아이돌은 사람 그 자체라기보다 회사나 본인에 의해 보기 좋게 꾸며낸 가상의 인물과 흡사하다. 다시 말해 팬에게 아이돌이란 2차원과 3차원 사이에 있는 존재다.


보통이라면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조연 혹은 단역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러블리즈의 페르소나는 정반대 위치에서 팬을 대변한다. 팬이란 대상에게 연애적인 감정을 갖지 않더라도 짝사랑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입장에 놓이므로.


'WoW!'가 아이돌 팬의 사랑을 그린 노래라고 생각하면, 앞에서 살펴봤던 가사들이 또 달리 들린다.

 

 

윙크라고 착각하면 안 돼

그 순간 너와 나의 거리감이 사라져버려

 


예를 들어, 여기서 '윙크'는 오히려 착각해도 좋을 만한 것이다. 진실을 알 수 없는 팬에게 주어진 가장 큰 힘은 마음껏 오해할 자유니까. 콘서트장에서 같은 구역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가수가 본인을 봤다고 주장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눈이 마주쳤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그다지 '확인하고 싶은'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다. 팬이란 원래 맹목을 자처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화 얘기가 아님에도 팬의 사랑은 '그려왔던 모든 게 다 될 것 같은' 성질을 지닌다.

 

혹은 이 가사를 TV 속 연예인에 불과했던 너의 윙크를 보고 사랑에 빠진 내가 단숨에 너와의 심적인 거리감을 좁히는 '입덕'의 순간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이돌을 단지 아무개 연예인이 아니라 최애, 즉 덕질하는 대상으로서 좋아하게 되면 현실에서 아는 사람이 아님에도 심정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편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나이 불문하고 활동명이나 본명을 친근하게 부르고, '우리'라는 테두리에 들이며,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거나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이 그 예다.


당사자 입장에서 감히 말해 보건대 이 사람들은 정말로 밥 잘 먹으라는 말이 가닿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버블이나 유니버스와 같이 쌍방향 소통 매체를 활용하는 경우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읽고, 답장해 줄 것을 내심 바라겠지만 대부분은 자기만족이다. 팬들에게 '그래봤자 한낱 새우젓에 불과하다'라는 조롱이 별 타격 없는 이유다. 사실 팬의 입장에서 아이돌과의 관계는 쌍방향의 가능성과 기대를 품고 있는 일방향에 가깝다. 쌍방향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일 대 다수 관계의 특징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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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아리 멘고, 만화 《최애의 아이》 1권


 

아이돌은 진짜가 아니지만, 가짜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진짜일 수 없으나 가짜여서는 안 되는 존재다. 이 모순으로 인해 팬에게 아이돌이 말하는 사랑은 영영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남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깊이가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림자'(어두운 면)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나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인데, 아이돌의 '진짜'는 팬들이 모르는 일상이 아니라 준비된 무대 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포장된 모습만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논란이나 범죄는 또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건 출퇴근이 없다시피한 채 일상조차 상품으로 소비되는 프리랜서를 동정하거나 아이돌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대단한 윤리적 의식이 있어서가 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나름의 법칙이다.


아이돌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 대부분은 아이돌이 상품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많은 부분이 가공된 채 시장에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가공'과 '가짜'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가상'과 '가짜' 또한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가공'과 '가상'을 가짜로 인식하는 것은 가공되지 않은 실제나 실재의 부재가 아니라 향유자 본인의 체험과 경험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똑같이 가공된, 가상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내가 직접 찍은 사진과 남이 찍은 사진에는 큰 차별점이 생긴다.


아이돌 또한 마찬가지다. 설령 그들이 본질적으로는 가짜고, 컨셉에 의거해 행동하고 있을 뿐이며, 캐릭터를 팔아먹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이 '가짜'라고 생각한 채 소비하지 않는다. 아이돌이 단지 상품에 불과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어디까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나 역시 팬이자 인격과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서 저들과 나 사이에 진심이 통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믿고 싶어한다.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은 팬을 믿게 만들며, 동시에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오독(誤讀)은 그래서 달콤하다.


러블리즈 노래에 전면으로 드러나있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 맺지 못함은 '아이돌 - 팬' 관계에서 아이돌인 러블리즈가 팬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을 설득시킨다. 짝사랑에 빠진 소녀와 팬은 둘 다 실제(사실) 없이도 실재(존재)를 사랑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므로.


 

팬이란 믿는 자라기보다 사랑하는 자이며 사랑하는 자는 끊임없이 번민하고, 의심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던가?

 

이희주, 《환상통》

 

 

소녀에게 이루어진 사랑이 마치 거짓말 같아서 '꿈일까? 아닐까?'(지금, 우리) 의문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팬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일 때만 성립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때 사랑은 중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사랑할까, 아닐까?'나 '의심할까, 믿을까?'가 아닌 '사랑할까, 믿을까?'라는 아이러니한 논리가 성립된다.


하지만 러블리즈의 여타 곡과 다르게 'WoW!'에는 '너'가 암묵적으로나마 존재한다. 팬 입장에서 팬과 아이돌의 관계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가사 내용은 아이돌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팬에게 사랑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인 것처럼, 아이돌에게도 팬의 마음은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쟤 쟤 쟤 쟤 이뻐 쟤 이뻐

얘 이뻐 얘 이뻐

 

몰라 몰라 몰라 두 볼만 빨개지잖아

 

 

그래서 아이돌로 바뀐 화자는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한다. '쟤가 이뻐, 얘가 이뻐, 아니면...' 물론 팬이 직접 어떤 아이돌을 '쟤'나 '얘'라는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 예쁘다고 직접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가사의 '쟤'가 멤버 '유지애'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두 볼이 빨개지'는 사람은 팬보다 아이돌에 가깝다. 그리고 팬은 이 곡을 들음으로써 가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언제나 '너'가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러블리즈 노래에서 화자와 청자의 화답이 이루어진 셈이다. 팬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 러블리즈는, 혹은 러블리즈가 말하는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한 팬은 '이 차원(온라인)을 넘어 한 칸씩 한 칸씩 네 세상(오프라인)으로' 가고자 한다. 코로나 이전에 활동한 곡으로 음악방송에서 가수와 팬과 실제로 만나 교감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WoW!'는 무척 메타적인 노래인 셈이다.


앞에서 인용한 소설 <환상통>에는 아이돌 N그룹 멤버 M을 사랑하는 인물 m이 등장한다. 휴학생 신분으로 사인회, 공개방송, 행사 등을 열심히 쫓아다니는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그리하여 M을 향한 사랑을 소유하고자 한다. 물론 어떤 기록도 실재가 될 수는 없으며, 순간의 모방에 불과하다. m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만일 내가 어떤 순간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매우 정확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가 나의 사랑이 떠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만 읽어서는 M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가 소설 속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M이 m에 의해 아무리 기록되고 묘사되어도 m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된 M이지, 진짜 M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는 m이 어떤 사람인지는 안다. 그게 설령 M을 향한 찬사로 가득 이루어져있을 지라도, m이 어떤 사랑을 어떻게 하고, 어떤 글을 어떻게 쓴 사람인지 우리는 말할 수 있다. 한 발 떨어진 대상에 대한 기록은 대상의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러블리즈가 보여주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 'WoW!'라는 곡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기만 하는 러블리즈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애처로운 '을의 입장'이나 수동적인 여성성이 아니라, 그들이 제시하는 소녀상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느낀다. 나는 WoW! 속에서 짝사랑과 닮은 팬질의 미학을 느꼈다.


요즘 세상에 무엇인가를 이렇게나 마음껏 그려보게 하고, '그려왔던 모든 게 다 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일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팬질을 터부시하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나는 아이돌이야말로 마음껏 착각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며, 급기야 창조할 수 있게 만드는 자들의 문화라고 외치고 싶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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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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