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념비적인 개념미술의 시작,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글 입력 2022.04.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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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2022년 4월, 신선한 전시가 예술의전당에서 그 막을 열었다. 바로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이다. 4월 8일부터 시작해 8월 28일까지 이어지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은 1970년대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예술인생을 총망라한 전시라 매우 뜻깊다. 더군다나 전 세계 최초로, 최대 규모의 원화 작품전인 점도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이 전시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 <참나무(An Oak Tree, 1973)>가 아시아 최초로 전시되기 때문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어떤 작가인지, 그의 작품생활이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궁금하다면 이번 전시를 놓쳐선 안될 것이다.


이번 전시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도슨트를 미리 유료로 예약해야 하며 평일 중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화~금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및 오후 4시에 도슨트 해설이 진행되며 화, 목은 김찬용 도슨트가, 수, 금은 이남일 도슨트가 해설을 진행한다. 도슨트를 예약하지 못한 경우, 오디오 가이드로 전시를 좀 더 풍성하게 즐길 수도 있다. '큐피커'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이번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의 오디오 가이드를 3,000원에 유료구매하면 곧바로 들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는 차은우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 전시 소개 >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b. 1941)의 전시가 오는 4월 8일부터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전시는 전세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개념미술의 1세대 작가로 1970년대 부터 80년대까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사라 루카스,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들을 양성한 스승이자 현대 미술의 대부로 칭송받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총 150여 점의 작품들로 채워지며 개념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인 ‘참나무(An Oak Tree, 1973)’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어 관심을 모을 예정이다. 특별히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되는 디지털 포트레이트, 스페셜 판화 및 로비를 가득 채울 월 페인팅 작품 역시 이번 전시의 스페셜 한 볼거리다.


전시는 6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Exploration(탐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Language(언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Ordinariness(보통 :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Play(놀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Fragment(경계: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Combination(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이며 이를 통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펼치는 개념미술의 세계를 좀 더 가깝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개념미술의 시작과도 같은 존재다. 그의 '참나무(An Oak Tree)'는 어떻게 보아도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분명 물잔인데, 그는 물잔의 물리적 본질을 참나무로 바꾸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외형을 변화시키지 않았으나 본질을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그는, 이것이 단순히 물잔을 참나무라고 정의한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선 궤변 그 자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것이 개념미술의 본질이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물체의 이름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그리고 교육으로 약속된 언어일 뿐이며 물체 그 자체는 보는 이의 기억, 경험 그리고 창의력을 통해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개념미술이다. 한마디로 관습화된 사고 그 자체를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며 작품과 마주하라는 뜻인 셈이다. 이렇듯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예술관이 굉장히 철학적이고 심오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그는 작품 속에서는 어렵고 복잡한 것을 다루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쉽고 친숙한 것들을 주로 객체로 삼았다.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아주 재미있게도, 언어를 활용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을 탐구했다. 본인이 영국인이면서, 영어 알파벳을 활용해 작품 속에 녹였다. 그런데 알파벳을 겹쳐 아크릴 채색을 한 것과는 또 다르게, 그는 채색된 알파벳 바탕 위에 산업용 테이프를 활용해 물체들의 선을 따 덧붙였다. 즉 한 프레임 안에 겹쳐진 알파벳 단어와 함께 다양한 사물의 테두리가 동시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전반적으로 다 보고 나니, 전시의 초반부에 있었던 이 언어와 관련된 작품들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을 꾸준히 단련시키고자 만든 작품들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그 자체가 분명 서사다. 그런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그 언어의 서사성을 제거하기 위해, 분명한 뜻을 갖는 영단어 그리고 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물들을 결합하여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가 언어를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했다면, 그는 말이 되는 단어를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의미를 가지지 않을 알파벳 조합을 무작위적으로 나열하고 그 위에 사물의 선을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모든 작품 속에,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단어를 명백하게 넣었고 사물들은 이와 전혀 무관한 것들로 골랐다. 서사성을 없애기 위한 의도인 동시에, 이 일련의 작품 시리즈들이 관람객들이 작품 속에서 의도와 의미를 유추해내려는 관습적인 시도를 탈피하는 훈련의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여기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강렬한 색채를 더하여 작품을 아주 감각적으로 구현해냈다. 언어와 사물을 결합해 그 무엇도 의도되지 않도록 한 그의 무제 작품 시리즈들을 쭉 보다보면, 어느 순간 알파벳들이 혹은 선만 따여있는 사물들이 나에게로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채도 높은 색채의 활용으로 아주 현란한 시각적 효과가 발휘되기 때문이다. 과감한 색상과 강조된 선, 일상적인 사물의 활용으로 인해 팝아트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오히려 2차원의 작품을 3차원으로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작가다. 높은 채도의 색을 활용하여 관람자의 시각을 파고드는 그의 작품은, 어느 순간 2차원을 뚫고 나와 내 눈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색채의 효과로 인해 어느 순간 3차원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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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chips), 2019_Michael Craig-Martin

 


언어뿐만이 아니라,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법한 보통의 사물들을 피사체로 많이 다루었다. 감자칩처럼, 예술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음식도 그에게는 작품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물에서도 절대로 서사적인 의미를 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평범하고 흔한 것도,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도 그에게는 단순히 객체가 되어 작품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관람객들이 그가 그린 대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사물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그렸다.


서사를 전복시키고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작가가 가진 예술관의 가장 큰 본질인 것인데, 이 점은 너무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의 초반부 작품을 보면서 계속 생각이 들었던 것이, 내가 작가의 의도와 서사를 파악하고자 하는 데에 마음이 쏠려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 초반부의 작품들이 나에게는 훈련처럼 와닿았던 것 같았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의도 없이, 서사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느끼길 바랐으니 나와 같이 느끼는 관람객들에게 서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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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light, 2002_Michael Craig-Martin



그렇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전시를 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작품 속에서 더 이상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기보다는 보이는 것에서부터 나만의 생각을 시작해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사물과 다르게 선과 색이 변형된 작품을 보면서 내 기억과 내 추억에 빗대어 작품 속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Flashlight는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손전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그린 2002년의 손전등은 마치 요즘 손전등마냥 세로로 길고 늘씬한 형태인데,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손전등은 매우 크고 뚱뚱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감싸쥐는 형태가 아니라 손잡이를 잡아야 손전등을 들 수 있는 형태였는데, 어린 나에게는 한 손으로 들기 무거워 양손으로 받쳐들어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때 야영을 가면 항상 그런 손전등을 의지하곤 했는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Flashlight가 그런 Flashback을 일으켜준 셈이다.



ⓒUntitled (x-box control), 2014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x-box control), 2014_Michael Craig-Martin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을 불러일으키며 자신만의 감상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그가 다루는 작품 속 사물들이 대중적이고 친숙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나이는 벌써 82세가 되었다. 그가 긴 세월을 살아온 만큼, 그의 작품 속 사물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성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성을 갖게 되기도 했다.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지는 사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그린 엑스박스 컨트롤은, 일면 대중적이지만 대중적이지 않기도 하다. 콘솔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저 컨트롤러가 무엇인지 잘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서 콘솔게임 시장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과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그린 엑스박스 컨트롤을 보고 저게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마치 옛날 플로피 디스켓을 현재의 10대들이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대중들이 작품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감상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했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안배는, 그가 작품성과 보편성 그리고 시대성을 모두 갖추도록 자연스럽게 이끈 셈이다. 이번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을 관람하고자 한다면, 그가 그린 사물들 중에서 시대성을 띠고 있는 작품들이 또 무엇이 있는지를 눈여겨 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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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down Painting, 2020_Michael Craig-Martin.



시대적인 의미를 갖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과거의 작품들 중에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최신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2020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역사적인 사건을 지금까지도 쭉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락다운 기간 동안 그가 완성한 작품인지, Lockdown Painting(2020)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그야말로 코로나 시국의 시대상을 아주 절절히 담아내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겐 보편적이면서 시대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지 못한 후세대에게는 그저 시대적인 작품으로만 와닿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을 겪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그린 사물이 컴퓨터(아마도 아이패드겠지만, 기능적으로는 컴퓨터가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아서 컴퓨터로 표기한다), 마스크 그리고 손 소독제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것이다. 물론 코로나를 전혀 겪지 않고 살 후세대 사람들도, 최소한 마스크와 컴퓨터 정도는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후세대의 사람들이, 아무런 상표나 마크가 그려져 있지 않은 펌핑용기를 보고 저게 손 소독제라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한 가치가 부여된 사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검은색을 배경에 활용함으로써 사물들을 더욱 대비시켜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채도가 높은 색을 배경으로 활용할 때에는 눈의 피로감으로 인해 작품 속 사물들이 입체화되는 느낌이었다면, 이처럼 배경을 검은색으로 무채색화해버리면 반대로 사물 자체가 가진 색 때문에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2차원의 작품을 3차원화할 수 있는 회화적인 조각가라는 점이다.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조각, 영상에 이르기까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다양한 미술 영역에서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구현해왔다. 작가의 일대기나 다름없는 이번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에서 느낀 것은, 그가 자신만의 예술철학이 확고했으며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는 점이었다. 예술인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초기와 후기의 작품들이 상이한 작가들도 많은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정말 확고했던 것 같다. 자신의 철학을 일관되게, 꾸준하게, 하지만 변화무쌍한 방법으로 구현해냈던 그는 더 이상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트레이시 에민과 같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yBa, Young British Artists)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스승에 그치지 않고 그 스스로가 개념미술의 대가임을 확고히 보여주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예술을 산문이 아니라 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마치 김춘수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부르는' 행위를 통해 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산문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로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적으로 어렵지만 시각적으로 쉽고, 2차원의 단순함과 3차원의 맥락을 동시에 지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세계.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낯선 상상의 세계로 인도할 이 놀라운 전시,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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