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국을 건너 남극을 지나 - 시추

연극 <시추> 리뷰
글 입력 2022.03.2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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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다시 찾아온 남극의 겨울. 한국이 설립한 남극기지에는 월동연구대원 7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의료 대원 김지혜는 극야 현상으로 인한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계절성 정서장애를 확인하기 위해 월동연구대원 전원 일주일간 상담한다.

 

- 연극 <시추> 시놉시스

 

 

극단 ‘문지방’의 연극 <시추>는 독특하게도 남극을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 또한 기성 연극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연구대원이다. 제목이 ‘시추’이니 당연히 남극대륙에 축적된 빙하를 시추하여 기후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연구대원들에게 주어진 임무일 테다.

 

비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데다, 이공계열 전문직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연극이니만큼 꽤 기대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벗어나 남극으로 왔습니다’라는 문구 또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들이 왜 한국에서 벗어났을지, 남극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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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채 20석도 되지 않는 좌석을 삼면에 배치하여 폐쇄적인 무대를 구성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혜화동 1번지라는 블랙박스형 소극장을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구나 싶었고, 삼각 구조를 기본으로 하여 차가운 질감의 남극기지를 표현한 것이 돋보였다.

   

그중에서도 무대 바닥 가운데에 작은 삼각형(시추 구멍)을 만들어서, 극의 모티브를 하나의 오브제로 형상화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조명, 소품, 의상 등의 감각적인 연출이 전체적인 장소에 통일감을 부여하여 큰 자본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남극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기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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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는 극단의 연출과 배우들이 공동창작한 희곡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같은 창작 희곡의 불모지에서도,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작품 개발 및 트라이아웃을 통해 대본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한 것이 느껴졌다. 공동창작임에도 서사의 흐름이 엇나가지 않고 대사의 말맛이 살아있었다. 대사를 발화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탁월하여 그들의 표현만으로도 상황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돋보였던 이유는, 이 극에서 대화 위주의 연기 말고는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연출적 장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과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힘을 풀고 의도를 덜어내야 매력을 얻는 연출법이 있다.

 

특히 <시추>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남극’이라는 폐쇄적 환경에 놓인 단절된 집단의 파멸이기에, 시청각적 효과보다는 각 인물 간의 대화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었을 테다. 그래서 이 극에서는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음향이나 조명 효과도 최소한으로 썼다. 그러니 시간의 흐름이나 사건의 경과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배우들의 말과 움직임뿐이었고, 그들은 맡은 몫을 충분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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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캐릭터의 매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다. 바로 스토리텔링의 매력이다.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를 전달하더라도 이를 무대 위에서 서술하는 방식이 단선적이라면, 작품은 전체적으로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시추>에서 기대했던 것은 범국가적인 사회비극이었다. 처음 포스터를 보고, 그들이 남극에 온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벗어난 연구대원들을 고립된 환경에 처하게 만든 원인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장치가 되리라고 내심 예상했지만, 그들이 남극에 온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극은 성격비극이기 때문이었다.

 

핵심은 그들이 남극에 왔다는 것이고, 그 이후로 남극에 갇힌 이들의 사소한 갈등이 의심과 불화를 먹고 자라 파멸로 이어지는 것이 극의 요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인물들이 남극으로 온 이유는 단순했고, 각자 맡은 임무, 내지는 행동 동기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의 공간적인 배경을 남극으로 설정한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보여서 아쉬웠다.

 

‘남극’은 인물들이 고립된 환경에서 극한의 상황에 부닥치도록 만들어 놓은 서사적 장치였고,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했다. 등장인물들의 직업이나, 극야 현상, 시추 작업 등의 세부적인 설정도 얕게 다루고 넘어갔기에, 그저 공간적 배경과 어울리도록 끼워 맞춘 요소들로 느껴질 뿐이었다. 즉, 이 극의 배경을 굳이 남극으로 설정하지 않았어도 될 터였다. ‘고립’이라는 주제의식이 너무 거대하여 세밀한 플롯들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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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추>는 한국판 오셀로다. 여기에서 ‘한국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공간적 배경이 남극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낡은 냄새를 지울 수 없는 설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의심에서 피어난 과도한 질투심이 관계의 종말로 향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오셀로의 핵심이고, 이는 <시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를 2022년에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려면 동시대적 이슈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셀로의 데스데모나는 흠결이 없고 자상한 아내, 중세국가에서 원했던 참한 여성상의 표본이다. <시추>에서의 강선오는 이 설정을 그대로 부여받는다. 오해의 제물이 되어,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마녀심판을 당한다. 이러한 희생양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면, 인물의 약점을 시대에 맞게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을 텐데, 이 극에서는 강선오를 20세 여성으로 설정했다. 게다가 월동대장 강범배의 늦둥이 동생으로서 보호받는 인물이다.

 

나이브하고 어린 여성은 그간 너무도 많은 이야기에서 그려졌고, 그만큼 숱한 비판을 받아왔던 소재다. ‘어린’ 사람만이 나약하고 순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만을 남성 주인공의 약점이자 비극에 추동력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무엇보다 ‘어린 여성’이라는 특성을 인물 관계에서의 약점으로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작법이다.

 

나이와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도 개인의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은 많다. 예컨대 강선오는 지질학자이기도 하지 않은가? 물론 20세의 지질학자가 남극기지의 월동연구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핍진성이 전혀 없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러한 설정이 묻힐 정도로 진부한 서사를 더해놓은 것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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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확실한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은 인상적이었으나, 그들이 반목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소 거칠었다. 이 극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동자는 모두 남성이다. 두 명의 여성은 혼란스러운 사건에 소모되거나, 전지적인 시점에서 관찰하며 한 마디씩 말을 보탤 뿐이다. 그러니 희로애락의 감정을 소화하는 몫은 네 명의 남성에게 주어졌다.

 

마음에 응어리가 지고 화가 났을 때 소리를 지르고 욕을 내뱉으며 난장을 만드는 것 말고도,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할 것이다. 물론 감당할 수 없는 격한 감정으로 인해 극한에 다다르면 누구나 악을 쓰며 화를 내겠지만, <시추>에서는 이러한 연출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관객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남성 배우들만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니 오히려 그들의 연기가 납작해 보였고, 안 그래도 좁은 소극장에서 필요 이상의 고성을 계속 듣는 것이 힘들었다.

   

희곡의 이음새 및 적재적소에 사용된 풍부한 어휘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희곡에 표현된 감정을 훌륭히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했지만, 관객으로서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셀로를 21세기의 남극을 배경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면, 기존보다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와닿았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오셀로를 거칠게 축소한 연극을 보고 나온 것 같아 아쉬웠다. 작품의 의도가 명확하면, 정작 관객이 갖는 의문의 묵직함은 흐려진다. 결국, 모든 연극인의 몫은 그 의문의 토양을 시추하는 작업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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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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