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주도자 [문화 전반]

테넷으로 비춰본 우리의 일상
글 입력 2022.02.2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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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일은 일어난다.

 

상영시간 내내 귓가에 맴돌던 한마디. "What's happened, happened."

 

2020년 화제작 <테넷>의 명대사로, 극 중에선 그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을 상징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정의한다. 시간대를 오가는 사투 속에서 결국 벌어질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돌려 시간을 역행하더라도, 다양한 시간대를 오갈 수 있어도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 주도자 또한 사건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마치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데, 우리는 노력을 기울인 만큼 애착이 더해지고 선택에 고민하고 보상에 대해 걱정한다. 지나간 일임에도 후회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미리 불안에 떤다. 그리고 결국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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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나지 않더라도 SNS, 사진, 등등을 통해 서로의 생활을 들추어보게 된다. 더욱이 코로나가 우리의 연결성을 더 강화한 듯하다. 각종 비대면적인 일상에서 인터넷 상의 사회적 연결은 더욱 견고해진다. 말은 언택트지만, 실상은 슈퍼 컨텍트이다. 시간이 많아진 만큼 남들의 일상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내 선택들과 비교한다. 시간이 늘어난 만큼 선택과 고민은 많아지고 후회 또한 늘어난다. 우리는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연결이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비교하고 어필하며 선택의 당위성을 추구한다. 더 다양한 선택들과 마주하게 되며 점점 더 고민과 불안들이 늘어난다.

 

그 기저에는 내 일상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기 위해 더욱더 타인을 향해 일상을 표출한다. 박탈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려는 갈망, 너보다 즐겁고 잘 산다는 우월성의 표출. 즉 내 선택에 대한 합리화의 가시적 표현이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것들이 내 시야 들어올수록 내 선택은 불투명해지고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라 강박이 생겨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하며 하루하루가 더 뜻깊어야 한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더 밀어 넣고 더 무언가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선택의 순간에는 이러한 불안에 대한 해소를 기대하며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고 결국 후회로 이어진다. 확장된 연결로 인한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정보가 선택과 불안에 몰아넣는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그 꽃


꽃이다. 화자는 꽃을 보았다. 정확히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꽃을 나중에서야 본다. 올라갈 때 꽃이 보이지 않는 이유, 내려갈 때 그제야 모습을 보여주는 꽃.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때는 보이지 않는 그것이, 다 마치고 나서야, 다 내려놓고 나서야 얼굴을 비춘다.


우리는 쉼 없이 올라간다. 그래야만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잘난 이력을 만들기 위해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일에 대한 목적, 열망, 성취 등 그러한 것들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올라갈 때는 꽃을 보지 못한다. 그 과정 속에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 부담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의 비교, 상대적 박탈감이 내 선택에 깊게 파고들고 스며든다. 또한 반복적인 일상,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선택과 시간의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집착도 미련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벗어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은 걱정과 불안, 선택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내려오는 길에는,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꽃을 발견한다고 한다. 누구나 나중에서야 그땐 그랬지, 그게 좋았지 하며 올라갈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을 내려와서야 알게 된다. 올라가는 법은 배운 적이 있어도 내려가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졸업을 하고 나서야, 전역을 하고 나서야, 학기가 끝나고 나서야, 이별하고 나서야, 프로젝트가 마쳐지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다. 이렇듯 모두에겐 각자가 느끼는 작은 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꽃은 행복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다.


설령 일어난 일은 일어나고 오르는 과정에서 선택, 집중, 고민, 후회를 끊임없이 반복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내려오는 길에서 작은 꽃을 발견한다.


불안이 다 거기서 거기고, 미래의 우리는 다시금 오늘을 후회하게 된다면 주도자의 마음으로 눈앞에나 집중해보자.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과거에 휘둘리지 않는 오늘을 주도할 힘일 수도 있으니까.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니까, 우리가 걸어간 길 위에 피어날 꽃을 위해 건배를.

 

 

[장영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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