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얄팍해질 특별함이라면

벌새와 레이디버드
글 입력 2022.02.1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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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무렵, 이젤 앞에 앉아 기다란 연필을 쥐기 전, 짧고 뭉툭한 내 손가락을 한참 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아마 손가락 관절을 뚝뚝 소리 내던 습관은 이때부터 생겼는데, 그때 손을 들여다보다 여러 삼천포로 빠졌던 기억이 난다.

 

 

 

벌새


 

영화 <벌새>에서 영지 선생님도 손가락을 들여다본다고 했다.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 봐!

그리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움직여져”


이 장면을 봤을 때, 신기하게 나처럼 ‘자기 손가락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 역시 사람의 성장 과정에는 비슷한 코드가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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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영화의 전개는 뻔하지만, 개개인이 느낄 수 있는 당시의 감정을 꺼내는 일은 쉽게 뻔해지지 않는다.

 

어떤 결말인지보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 상황에 집중하게 되면서, 마치 어긋나버린 퍼즐을 서둘러 맞추고 싶다는 마음에 서사에 몰입해버린다. 영화 <벌새>와 <레이디 버드>는 아끼는 성장 영화들이다.


우선 독립영화 벌새의 주인공 은희는 조용한 학생이자, 가부장제 집안에서 차별받던 딸이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실제적 시간적 배경 속, 은희는 벌새가 날갯짓하는 수만큼 자신의 정체성 역시 흔들리는 과정을 겪게 된다.

 

영화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청소년기의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담았다.

 

 

 

레이디 버드


 

다른 한 편의 영화, 레이디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르라고 한다.

 

무당벌레를 뜻하는 이름처럼 크리스틴 역시 빨간 머리를 하고 있다. 그는 가난이 싫어,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다른 이로 포장한다. 여기서 은희와 크리스틴의 공통점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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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더불어 살지만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곤 한다. 돈이 많다면 더 돈 많은 사람과 비교를 할 테고, 외모가 뛰어나다면 더 외모가 뛰어난 사람과 비교를 한다.

 

비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독 청소년기에는 이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크리스틴도, 은희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범한 나 자신이 싫어 더 평범함을 외면하고 발버둥쳤다는 사실을.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 나오는 - “나는 역시 나일 수밖에 없다는 걸 믿고 앞으로도 살아가려 합니다.”- 라는 문구처럼, 그들은 결국에 그냥 나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크리스틴이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버드라고 정의 내리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금방 꺼져버릴 심지가 아니라 점점 커질 심지여서 서서히 각자만의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특별함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

 

관절을 꺾는 습관 때문에 내 손마디는 전보다 두꺼워졌고 지금은 이 좋지 못한 습관을 그만뒀다. 아마 나도 평범한 자신을 싫어하던 시기에,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타자를 오래 두드리다 보면 아픈 내 손가락만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이제는 얄팍해질 특별함이라면 단단해진 평범함에 더 눈이 간다. 아픈 손가락을 돌보는 마음처럼,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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