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리운 그 이름 세 글자 - 아무튼, 장국영 [도서]

글 입력 2022.02.0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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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거’는 장국영의 애칭이다(‘오빠’라는 뜻의 ‘哥哥’는 외래어표기법대로 쓴다면 ‘거거’가 맞지만, ‘오빠’를 나타내는 일반명사라기보다 이미 ‘장국영’을 지칭하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니 여기서도 습관대로 ‘꺼거’로 쓰기로 한다). 영화 <천녀유혼> 촬영 당시 왕조현이 처음 ‘꺼거’라고 부르기 시작한 뒤로 꺼거는 장국영의 공식 애칭이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그를 ‘꺼거 장국영’이라 부른다.


- 「아무튼, 장국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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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꺼거’를 처음 마주한 것은 영화 <아비정전>에서였다. ‘오늘 밤 꿈에서 날 보게 될 거예요’라는, 다소 파격적인 대사를 던지고 튀어버리는 아비(장국영)의 모습에서 나는 오프닝부터 짐짓 설렘과 혼란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까지 홍콩 영화를 많이 접해오지 않은 터라 <아비정전>은 분명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그 농도는 더없이 짙었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이기적이고 회피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비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서는 '대체 왜 저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 같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오프닝과 맘보 춤, 그리고 ‘발 없는 새’에 대한 아비의 비유는 분명 인상적이었으나 영화가 진행되며 내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점차 아비에서 경찰관(유덕화)으로 옮겨갔다. 당시에는 왕가위 감독에 대한 명성도 잘 모르던 때였고, 영화 속 아비의 철없는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 ‘꺼거’에 대한 좋은 인상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시간이 흘러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차츰 빠지기 시작하면서 <중경삼림> <화양연화>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타락천사> <2046>과 같은 작품들에도 모조리 빠져버릴 줄은. 또 무엇보다 꺼거에 흠뻑 빠지게 될 줄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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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튼, 장국영」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끝까지 책을 읽어 내려간 것은, 이제는 비로소 꺼거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데 대한 반증일 것이다. 세 출판사가 협업하여 내놓았다고 하는 ‘아무튼 시리즈’ 중에서도 「아무튼, 장국영」은 제목부터 곧바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소개란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저자 오유정은 어린 시절 <천녀유혼> 그리고 <영웅본색2>를 보고 꺼거(哥哥), 즉 장국영의 팬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어 그가 내한했을 때 스케줄을 쫓아다니다가 그의 모든 일정을 바로 옆에서 함께하는 통역사를 보고서 그의 통역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약속을 지킬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지금은 대학에서 중국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희망과 포부가 전공으로 이어지고, 현재의 직업으로까지 계속되고 있다니. 책을 읽기 전부터 저자의 무한한 꺼거 사랑을 감히 어림짐작하며 꺼거를 좋아하는 또 한 명의 팬으로서 즐겁게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저자가 꺼거의 내한 당시 사인회를 찾은 경험담부터 꺼거에 관련한 정식 논문을 쓰기에 이르기까지. 꺼거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즐겁게 읽을 법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이전까지 잘 몰랐던 꺼거에 관한 정보들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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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과 <영웅본색2>를 계기로 꺼거에 빠지게 되었다는 저자와 달리, (작품이 아직 개봉되지 않은 시기상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내가 꺼거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패왕별희>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패왕별희>는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 영화이자 꺼거의 출연작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극장에서 <패왕별희>를 마주했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과 전율에 휩싸였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내내 말 그대로 압도당하면서. <패왕별희>를 본 그날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비단 영화의 작품성과 장국영의 완벽한 연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유인즉슨 영화 일정에 대한 시간 계산을 미처 잘못해버린 탓에 아르바이트가 시작되기 약 4분 전에 영화가 끝나버린 것이다. 나는 엔딩 크레딧을 1분도 채 보지 못하고 곧바로 극장을 뛰쳐나와야 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 장소 근방에서 영화를 관람한 덕에 그 근방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전력 질주하여 시간이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미처 내보내지 못했던 엄청난 양의 여운을 뒤늦게 감당해내느라 아르바이트 내내 완전히 진이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바쁘게 눈을 굴리고 손을 놀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패왕별희> 속 두지의 모습과 청데이를 연기한 꺼거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의 눈빛이 그토록 처절할 수도 있구나. 보는 사람도 같이 사무칠 정도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러이 맴돌았다. 결국, 해당 날짜를 포함한 그 주 전체에 <패왕별희> 열병을 지겹도록 앓다가 그다음 주 친구를 이끌고 영화를 재관람하러 극장가로 향했다. 여전히 영화의 강렬한 잔상과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패왕별희>라는 영화를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장국영’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꽤 놀란 부분이 있다. <패왕별희> 속 꺼거의 목소리가 실은 그의 실제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


 

그래도 꺼거의 푸퉁화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역시 영화 <패왕별희>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홍콩 영화에만 출연했던 꺼거에게 <패왕별희>는 중국 대륙에서 찍은 첫 작품이었다. 청데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꺼거는 경극을 배우는 것은 물론, 푸퉁화 공부도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왕별희> 속 청데이의 목소리는 사실 꺼거의 목소리가 아니다. 푸퉁화를 아무리 잘했어도 베이징 지역의 권설음화5까지 제대로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 「아무튼, 장국영」 중에서

 

 

그동안 <패왕별희>의 미공개 사진과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기만 했지, 이런 엄청난(?) 비하인드가 숨어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영화 속 경극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꺼거의 모습을 보며 장국영은 경극도 잘하네. 그 단시간만에 겁나 어려워 보이는 저 경극을 다 깨우친 건가. 아니면 혹시 경극 소리만 따로 편집해서 넣은 건가. 라는 생각까지는 해봤어도 청데이의 대사 전체가 꺼거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본 나도 전혀 눈치 못 챌 정도였으니 그만큼 청데이를 연기한 꺼거의 연기실력과 노력이 엄청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꺼거에게 반하게 된 계기 자체가 <패왕별희>이다 보니 그의 실제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기도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그가 영화에서 청데이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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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패왕별희> 속 그의 얼굴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 그게 청데이의 진심이자 곧 꺼거의 마음과도 같은 눈빛 같아서, 나는 한동안 그의 영화를 찾지 않았다. 꺼거를 스크린으로 다시 마주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이었다. 가족과 캠핑장을 찾았을 때, 나는 야외에서 함께 영화를 보면 어떠냐는 의견을 냈고, 우리는 야외에 세워놓을 스크린과 빔프로젝터를 챙겨 그곳에서 <영웅본색>을 감상했다. (사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보려다가 파일에 문제가 생겼는지 영 재생이 되지 않아 급하게 찾아본 영화가 <영웅본색>이었다) 혹여나 영화 소리로 주변에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빔프로젝터를 챙기면서부터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머무르던 구역에는 우리 가족만이 유일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햇볕이 쨍쨍했던 화창한 여름날이었음에도 밤이 되니 계곡 옆에서 찬 바람이 쌩쌩 불어와 나는 담요를 2개나 뒤집어쓰고서 영화를 보았고, 불판에서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 먹고 있던 감자 칩을 주기적으로 불판에 밀어 넣었으며 주윤발의 전설적인 이쑤시개와 쌍권총 장면을 보았고, 저 멀리서 형을 보고는 천진난만하게 뛰어오는 화면 속 꺼거를 보았고, 그 해맑음과 설렘에 못 이겨 영화를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오래전 <영웅본색>을 관람한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열심히 영화를 시청하고 계셨다. 정작 봐야 할 – 심지어는 영화를 보자고 먼저 제안했던 – 사람은 잠이 들어버리고···.


어쨌거나 <영웅본색>에서 해맑게 등장하는 아걸(장국영)을 보고서는 작품 속 꺼거의 다소 무거운 이미지와 <패왕별희>의 기억이 조금은 녹아내린 듯했다. 그러나 희망은 불시에 산산조각이 나게 되는데, 다음 학기 수강했던 ‘한문과문화’라는 수업에서 교수님이 첫 시간부터 <영웅본색>을 언급하며 (이때까지는 반가웠다) <영웅본색2>의 공중전화 부스 장면을 덜컥 언급해버리신 것이다. (대사와 인물까지 아주 세세하게 말이다) 결국 여름날 캠핑장에서 <영웅본색>을 보다가 잠들어버린 누군가는 지금까지 <영웅본색2> 재생 버튼에 손을 못 대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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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2021년 초, 극장가에서 진행한 [왕가위 특별전]으로 다시금 꺼거를 큰 스크린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던 만큼 그가 출연한 영화도 여러 개 재개봉되었기 때문에, 나는 동네에서 동네를 옮겨 다니며 수많은 극장과 예술영화관을 쏘다녔다. 당시에는 이 특별전을 놓치면 다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마주하지 못할 것 같은 모종의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러나 2월에 시작한 특별전은 다양한 예술극장을 통해 4월까지 이어졌고, 나는 그의 영화가 꾸준히 극장가에서 상영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재개봉한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해치울 생각으로 상영관을 백방 찾아다녔고, 꺼거의 출연작을 포함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대부분을 21세기 극장에서 고화질로 마주하는 행운을 누렸다.


특별전을 다니면서 <해피 투게더>를 보던 와중에는 극장 영사기에 문제가 생겨 급작스레 영화 상영이 종료되었던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날 관람했던 상영시간이 <해피 투게더>의 마지막 회차였기 때문에 나는 환불받은 영화표를 챙겨 며칠 뒤 다시 극장을 찾았다. 처음 영사기 사고가 났을 즈음에는 영화의 마지막 20분 정도를 남겨두었던 터라 본의 아니게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본 셈이 되었는데, <해피 투게더>는 다시 봐도 참으로 애처롭고, 이과수 폭포를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해피 투게더>의 다큐멘터리 격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를 보기 위해서는 상영관이 일절 없던 동네 극장에서 벗어나 강남까지 향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꺼거에는 더 깊이 빠지게 되고, 양조위에도 빠지게 되고, 금성무와 장첸, 장만옥과 공리, 장쯔이에도 빠지게 되었으니···. 왕가위 감독 특유의 세기말 감성과 허세(?), 감각적인 미장센과 시적인 대사에 빠지게 된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의 세계 속에 완벽히 녹아든 꺼거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가 명실상부한 독보적인 배우라는 사실을 이따금 실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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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꺼거의 모든 작품을 관람한 것은 아니기에 나의 ‘장국영 앓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책 「아무튼, 장국영」에서는 나같이 뒤늦게 꺼거에 빠지게 된 팬을 따로 부르는 이름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저자는 꺼거의 활동 시기에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그를 알지 못하다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비로소 팬이 된 3세대 팬들을 ‘후영미(后英迷)’라 부른다고 전했다. 꺼거의 활동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운 좋게 한두 번이나마 꺼거를 직접 만나 사인도 받을 수 있었던 1세대, 2세대 팬들은 '영미(英迷)' 또는 '노영미(老荣迷)'라고 한다. 주변에 그리도 장국영을 미주알고주알 예찬하며 <패왕별희>를 추천하고 다녔으면서 정작 팬덤 이름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니. 이제부터 ‘후영미’라는 이름을 마음 한구석에 새겨 장국영 정신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

 

저자의 말처럼 장국영을 담아내기에 영화배우, 가수, 스타는 너무 작은 단어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장국영이 아님에도 그를 사진으로, 영상으로 마주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이는 것은, 그가 비단 훌륭한 배우였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무언의 특별한 존재라는 뜻일 테다. 생각해보면, 그의 영화 속 모습이 대부분 쓸쓸한 모양이었기에 그에게 더욱 무한한 애틋함과 그리움, 애처로움을 느끼게 되는 듯도 하다. <아비정전> <패왕별희>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그는 언제나 남겨진, 혹은 떠난 사람이었지만 그가 어디에서나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짊어진 인물이었다는 점에선 대부분 비슷하다. 몇 년 또는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꺼거의 영화를 다시 보는 날이 오게 되면, 그의 애달픈 눈빛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꺼거를 향한 애정이 20대를 지나 30대, 40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앞으로도 많은 ‘후영미’를 만나길 바라며, 언젠가 <영웅본색2>를 관람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리운 그 이름 세 글자를 외쳐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앞으로 다시 10년, 20년이 흘러도 우리의 보물찾기는 계속될 거라고. 누군가는 꺼거를 잊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롭게 꺼거를 기억하리라. 꺼거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 「아무튼, 장국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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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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