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만 엔 걸 스즈코 [영화]

새옹지마
글 입력 2022.02.0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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塞翁之馬

 

 

지난달 친구와 함께 대전을 다녀왔다. 대전으로 향하기 전 우린 꽤 야심찬 계획을 하나 세웠는데, 그건 바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로 잡지 만들기였다. 이러한 계획 덕에 나는 한 롤에 만 원을 호가하는 필름을 두 개나 구매하고, 카메라에 필름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다 사용한 필름은 카메라에서 빼내어 사진관에 현상(스캔)을 맡긴다. 사진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마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렌다. 하지만 사진을 받아보는 순간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건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인생사 새옹지마. 인생 역시 그러하듯 모든 게 완벽할 거라 믿는 건 무의미하다. 결과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일 수 있고, 어쩌면 생각한 대로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생각 이상으로 처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해버린 사진 조각들 사이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

 

여기 빛에 불타버린 몇 장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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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는다. 비록 내가 기록하고자 했던 순간은 담아내지 못했지만, 결코 의도해서 나올 수 없는 묘한 사진들을 얻어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치 하나의 미술 작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 조각들이 나는 마음에 든다. 망한 사진전이 있다면 한 번쯤 내놓아 보고 싶을 정도이다.


I SCREW UP AGAIN!


나는 망했다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요리를 할 때도, 계획했던 것보다 늦게 일어났을 때도, 글을 쓸 때나 그림에 채색을 잘못했을 때도 종종 내뱉는다. 물론 이런 것들은 그저 사소한 문제라는 걸 나도 안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에 나오는 스즈코처럼 한순간에 전과자가 되어버린다면 어떤 말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될지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백만 엔 걸 스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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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스즈코, 21세.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직을 하지 못하고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부모님 댁에서 초등학생인 남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지만 엉겁결에 같이 일하는 친구인 리코와 자취를 하기로 결정한다. 집을 구한 뒤 리코는 갑작스레 스즈코에게 그녀의 남자친구도 함께 살게 될 거라는 얘기를 전하고, 스즈코는 당황스럽지만 그냥 넘어가게 된다.

 

이삿날이 되자 리코의 남자친구인 타케시는 리코와 결별했다며 그녀가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결국 스즈코는 타케시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비가 오는 날 스즈코는 밖에 버려져 있던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고양이의 밥을 사러 간 사이 룸메이트인 타케시가 고양이를 다시 밖으로 버리고 이에 화가 난 스즈코는 타케시의 짐을 전부 밖으로 버려버린다. 여기서 문제는 스즈코가 버린 타케시의 가방 안엔 백만 엔이 들어있었고 결국 스즈코는 소지품을 무단으로 폐기한 죄로 벌금 20만 엔을 선고받게 된다.

 

조용하고 소심하던 스즈코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참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주변 시선에 스즈코는 백만 엔을 모아 집을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백만 엔이 모일 때마다 다른 곳으로 이사가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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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해변에서 빙수를 만들고, 그다음엔 녹음이 우거진 곳으로 가 복숭아 수확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스즈코는 복숭아 아가씨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지만 늘 그렇듯 단호히 거절하지 못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복숭아 아가씨 사퇴 자리가 열리고, 마을 주민들의 강요가 계속되자 스즈코는 전과가 있음을 밝힌다.


도쿄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이사한 스즈코는 남동생인 타쿠야에게 편지를 쓴다. 타쿠야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도망치지도 맞서 싸우지도 않는다.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스즈코는 같이 일하는 동갑 남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다. 이번엔 나름 잘 지내는 것 같던 스즈코였지만 남자친구와 돈 문제가 생기면서 그들의 관계도 틀어지게 된다.

 

스즈코는 타쿠야에게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자신에게 장난을 치던 아이를 다치게 한 일로 ‘아동 상담소’에 가게 되었다는 타쿠야는 스즈코에게 자신이 정말 잘못한 건지 묻는다. 그리곤 말한다. 지난날, 전과자가 된 그녀를 괴롭히던 동창들에게 맞서 싸우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자신은 결코 도망치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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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스즈코가 또다시 떠나면서 끝이 난다.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 다니던 스즈코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는다. 그 누구도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음에도 스스로를 숨기고 가려 왔지만, 사실 그녀의 주변엔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과 그녀를 보며 용기 내 싸우는 동생 타쿠야가 있었다.

 

도망쳐 간 곳에 낙원은 없다. 그녀는 아마도 다시금 맞서 싸울 것이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이없는 이유로 전과가 생겨버렸지만, 이 일로 그녀가 다시 주저앉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녀를 쉽게 좌절 시킬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조용하던 스즈코가 아닌, 싫은 일은 단호히 거절하고 큰 보폭으로 정면을 향해 나아갈 스즈코가 눈에 그려진다.

 

*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휘둘렸던 그리고 너무 많이 망쳐버렸던 옛 나날들이 머릿속에 두둥실 떠오른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실수와 바보 같았던 실수들. 수없이 도망치고 싶었고 도망 다니는 스즈코가 부러웠다.

 

다시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일들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음을 안다. 적어도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부끄러워하며 반성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그 경험들조차 그럭저럭 봐줄 만한 기억의 조각임을 안다.

 

다 망쳐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 순간에 너무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아름다움이 그대를 기다린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바람이 창을 흔들 정도로 세차게 불어 밖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그 덕에 아파트 15층 높이까지 올라온 비눗방울을 만났다.

 

인생사 새옹지마 아니겠는가. 행복은 늘 바지 뒷주머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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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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