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90분의 설전 - 연극 '라스트 세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의 설전
글 입력 2022.01.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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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라스트세션_티저포스터(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무의식’은 의식과 단절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무의식을 인식하지 못하며,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전반적인 생활 중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표현할 수 없는 욕구는 억압되어 우리의 머리통 저편에 잠재됐고, 이것이 어떻게 발현될지 모른다. 내가 이해한 무의식은 이렇다.

 

무의식 이론은 1901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출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많은 이에게 알려진 개념이다. 덕분에 일반인도 ‘프로이트’와 ‘무의식’이란 키워드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지난날의 나는 숱한 심리 테스트를 시작으로 ‘심리’의 세계에 과몰입한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로이트를 잘 알지는 못해도 익숙했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익숙하기만 한 그는 나에게 줄곧 흥미로운 소재였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보고 조건에 반사하듯 옆 사람에게 보러 가자는 말을 꺼냈다. 연극의 캐스팅도 나중에야 알았다. 넷플릭스에서 오일남 역할로 유명한 오영수 배우와 연극계에서 유명한 전박찬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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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연극 <라스트 세션> 메인포스터 | 제공=㈜파크컴퍼니 ::

 

 

 

90분의 설전


 

연극은 단 2명이 진행한다. 90분 동안 대사는 쉴 새가 없었다. 한 줄의 대사도 가볍지 않았고, 유머는 묵직한 홈런을 날리듯 시원했다. 프로이트의 등장과 함께 무대는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그가 반려동물 ‘요피(Jo-Fi)’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연극은 빈틈없는 대사와 음향으로 90분을 채운다.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라스트 세션>은 버릴 것이 없는 연극이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두 사람의 토론이며,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쟁이었다. 누구도 증명하지 못한 주제를 다룬 연극 <라스트 세션>의 배경은 1939년, 바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이다.

 

 

당시 영국이 독일군의 철수를 촉구한 최후통첩에 대해 답을 기다리는 중으로, 영국의 수상 ‘네빌 체임벌린’의 대국민 담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루이스가 프로이트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연극 <라스트 세션> 포토북 중 41쪽

 

 

루이스와 프로이트는 시대가 아주 혼란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화는 프로이트의 초대로 성사됐고, 박사는 루이스에게 어찌하여 무신론자가 유신론자가 되어 신을 믿기 시작했는지 이유를 알고자 당신을 초대하였다고 밝힌다. 폭격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라디오를 항상 주시하는 상황인데도, 그들의 대화는 끝나지 않고 90분간 이어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1939년 9월 3일 오전, 런던. 프로이트의 서재. 옥스퍼드 대학의 젊은 교수 겸 작가 루이스가 저명한 정신분석 박사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고 그를 찾아온다. 루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그를 비판한 탓에 불려왔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뜻밖에 신의 존재에 대한 그의 변증을 궁금해한다. 시시각각 전쟁과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오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종교와 인간, 고통과 삶의 의미를 넘어 유머와 사랑에까지 지칠 줄 모르는 논쟁을 이어가는데...

 

연극 <라스트 세션> 시놉시스

 

 

토론의 쟁점은 '신의 존재'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견을 제시하며 공유했으나, 그것은 마치 관객에게도 의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토론은 대화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하나 여러 키워드를 내세워 관람객에게 무신론과 유신론의 타당성을 전달했다. 무신론자 프로이트는 노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에게 반증하는 논리는 확실했고 매서웠다. 갈색 정장을 입은 노신사의 말은 뾰족했으나, 논리가 명쾌하니 빠르게 상황을 콕 짚어 관객이 이해할법한 비유로 논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니 날카로운 말에 베여도 우리는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극의 웃음을 책임지는 역할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소음 없는 관람 환경을 위해 옷자락이 부대끼는 것조차 최소화하는 관객들은 프로이트가 지적인 유머를 말할 때마다 웃음소리를 냈다. 톡 쏘는 그의 유머는 어릴 적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볼멘소리와 결이 비슷했다.

 

루이스도 만만치 않다. 정중하고 매너 있는 그의 화법은 토론자로서 완벽하나, 담긴 말은 프로이트의 이성을 흔든다. 그는 무신론자의 공간에서 유신론의 새로운 관점을 전달하고 프로이트에게서 질문과 대답을 끌어냈다. 그 질문과 대답은 ‘양심’, ‘고통’, ‘고통의 경험’, ‘행복’, ‘성욕’, ‘사랑’, ‘죽음’으로 총 7가지의 소재로 이뤄졌다. 대척점에 서 있는 그들은 자신과 상대의 경험을 말하고 들으며,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반박한다. 어찌 보면 대화는 공격적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관객이 아니었다면 그 대화를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분위기도 분위기다만, 확실히 종교와 극 중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였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티키타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22라스트세션_캐포(클린본)_이상윤(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루이스 역 '이상윤'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거야말로, 오히려 신의 존재에 대한 더욱 강력한 증거죠.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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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역 '신구'

 

 

난 유니콘의 존재를 부인하는데 그럼 유니콘이 존재하는 건가?

 

프로이트

 

 

그들의 설전 중 내게 와닿았던 키워드는 ‘양심’이었다. ‘양심’은 곧 도덕률이며, 이는 모두가 의무교육 시절에 배웠던 ‘성악설’과 ‘성선설’을 시작으로 일반인이 공감하기 쉬운 포인트가 있다. 이것은 종교의 범위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말하는 주제다. 본인은 대체로 성악설을 주장한다. 내가 경험한 인간은 보통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함을 가장하고 뒤에서 남모르게 이익을 챙기는 이가 많았다. 즉, 우리의 도덕은 이기주의를 지양한다. 그렇기에 본디 악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척’을 한다. 모두의 도덕의 지향점은 같아도 수준은 다르며, 간혹 본인에게 기회가 온다면 ‘척’을 포기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만다. 내가 경험한 세상은 이랬다. ‘척’은 우리가 어려서 배운 ‘절제’이며 ‘도덕’이고 이를 통해 자신을 통제할 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프로이트에게 더 집중하게 됐다.

 

프로이트 박사도 말하길 인간은 본래 악하지만 부모로부터 배운 처벌과 보상을 통해 도덕규범을 습득해나가는 것이며, 도덕규범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 했다. 반대로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양심에 대한 분별력을 남겨주셨다고 한다. 그에 대한 증거로 여태 모든 역사 중에서 악법을 규범으로 삼은 시간은 없었다고 말하며 인간이 그렇지 않다면 최초의 죄책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프로이트 박사에게 되물었다. 그럼 그는 신이 있다면, 선한 자들의 고통과 불행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고통’에 대해 신이 왜 책임을 지지 않는지에 대해 루이스에게 다시 묻는다. 이렇게 상대가 반증을 위한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주제는 다른 키워드로 넘어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대화는 프로이트의 소파 위에 누워 자신들이 겪은 고통까지 토로하게 만들었다. 5살밖에 안 된 손자를 잃은 고통, 구강 암으로 10년이 넘도록 고통받는 자신, 유년 시절 기숙학교에서 당한 폭력, 1차 세계대전 참전의 트라우마 등, 고통의 경험 또한 신이 존재에 대한 근거로 그들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겪은 종교적 압박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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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역 '오영수'

 

 

나는 진실을 발견했지! 삶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진실!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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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역 '전박찬'

 

 

어떤 것에서든 기쁨을 발견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C.S.루이스

 


사실 무교인 나는 그들의 설전을 마치 ‘남’의 일처럼 간주했다. 덕분에 나는 제삼자의 입장으로 공평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종교가 없으니 굳이 고민할 이유가 없었고 그런 나에게 정확한 답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극 중 나오는 무신론과 유신론의 모든 의견이 흥미로웠다. 그만큼 종교는 내 삶에 애착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 아직도 나는 신을 믿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배척할 이유도 없다. 양측 의견은 모두 타당해 보였지만 솔직히 나의 마음은 무신론에 마음이 기울었다. 앞서 '양심' 키워드에서 프로이트 박사의 말에 집중하게 된 것처럼, 나는 종교와 가깝지도 않고, 믿음의 힘을 경험한 적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무신론으로 마음이 쏠린 나는 프로이트 박사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였는지,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는 신을 부정하고 부정하며, 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부정을 멈추지 않는다. 어떨 땐 루이스의 질문에 답변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프로이트 박사의 모습에서 나는 그 또한 아직 종교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신의 존재를 말하는 토론 자체를 참여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무신론과 무교를 같다고 보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단지 프로이트 박사도 종교에 영향을 받았고, 종교사회 속에서 성장했으니, 하나님의 존재를 불을 끄듯 단숨에 그의 속에서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끝없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가 사무실에서 나가고, 홀로 라디오 음악을 크게 틀어 감상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구강암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탓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유니콘’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에게 그는 그렇게 보였다.


이렇듯 연극 <라스트 세션>은 종교라는 복잡한 주제를 다뤘다. 누군가에게 지루할법하고, 생각하기 싫은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연기력을 뽑고 싶은데, 두 사람의 균형 잡힌 연기가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해 종교에 관계없이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가 형성하지 않았나 싶다.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을 대사로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인물로 더욱 대비해 대립을 부각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와 ‘C.S.루이스’ 교수의 톤앤매너 또한 매우 달라 선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차이덕분에 관객이 극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고, 인물이 피력하는 의견은 어느 쪽이든 당위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



극은 오로지 단 두 명의 연기와 무대의 음향, 조명으로만 이뤄진다. 런던의 프로이트 박물관(Freud Museum London)처럼 그의 방을 그대로 고증하기 위해 섬세하게 세팅한 무대 소품과 당시 영국 신사의 차림새를 담은 의상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음향은 전쟁 발발의 시점을 담기 위해 공습경보, 음질이 좋지 않은 라디오, 그리고 불안에 떨고 있을 국민을 안정시키는 클래식을 담았고, 무겁고 매서운 토론을 때마다 휴정시키며 관객에게도 쉼을 가져다주었다. 조명은 인물들의 심리와 전쟁의 위기를 관객이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시점에 조명을 낮추거나 은은하게 올리는 등, 대사의 높낮이에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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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필 오영수 | 제공=㈜파크컴퍼니 ::

 


오영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프로이트 박사는 구강암으로 인해 입천장을 드러내는 대수술을 했고, 조악한 보철물로 입천장의 기능을 대신하여 살아가고 있다. 입을 움직일 때마다 보철물이 입안에 상처를 내며 고통을 안겨준다. 말하는 직업인 프로이트는 말을 사랑하기에 수술의 후유증에도 말을 멈추지 않았고 더불어 애연가였던 그는 시가도 끊지 않는다. 그는 이런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병으로 잃는 정신적인 고통도 갖고 있다. 그는 상당히 염세적이고 냉철하다. 덤으로 노쇠한 육신은 마르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그의 심신을 대변한다.

 

이런 프로이트 박사를 그대로 연기한 배우 오영수는 자연스럽게 노년의 고집과 박사의 총명함, 그리고 고통과 싸우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을 정확히 잡아 관객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누구보다 당차고 빠르며, 날카롭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프로이트를 연기한 오영수 배우는 섬세하면서 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그가 내뱉는 말은 종이가 베이듯 날카로웠지만 움직임은 부드러웠으며 차분했다. 루이스가 사무실을 떠나고 음악을 틀어 감상하는 그의 느릿한 움직임은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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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필 전박찬 | 제공=㈜파크컴퍼니 ::

 

 

전박찬,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고통으로 점칠 된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는 프로이트의 눈빛과 달리, 그의 눈빛은 총명했고, 유신론을 주장하는 그처럼 희망찼다. 무대 뒤편까지 또렷이 들리는 딕션은 프로이트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루이스 교수는 밝은 에너지를 돋보이게 한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종교인들이 신을 왜 믿게 되었는지 이유 없이 믿게 된다. 그의 움직임은 날렵했고, 참전 용사답게 공습경보에도 노련하게 대처했다. 교수이니만큼 누구보다 박사에게 깍듯한 예의범절을 보여줬으며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 자신과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프로이트에게 루이스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나, 설득하기 벅찬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토론 상대임은 분명하다. 그는 반박에 대해 깔끔히 인정할 줄 알았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던져 프로이트가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들었다. 대화를 농도 짙게 이끌어가는 루이스의 능력은 교수로서 완벽했고, 프로이트를 대하는 바른 모습은 성선설을 증명하는 존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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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필 (왼쪽부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 제공=㈜파크컴퍼니 ::

 


배우의 연기력과 유명세덕인지, 극장 밖은 사람으로 매우 붐비었고 소란스러웠다. 허나 입장과 동시에 극장 안은 진지했고, 현장 관리원분들에 의해 철저히 관리된 환경에서 카메라 셔터 하나 없이 시작했다. 커튼콜도 촬영이 불가했다. 작은 공간이니 그만큼 극의 흐름과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함도 있고 현장 그대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게 아닐까 싶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의 커튼콜은 짧았다, 그래서 강렬했다. 연기를 끝내고 아무 말 없이 관객을 바라보며 서 있는 배우 오영수는 고개를 관중을 향하여 정중히 숙였고, 전박찬 배우 또한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로 마무리했다. 그래서였나? 연극이 끝나고 절반 이상의 관람객이 인사하는 배우에게 기립박수를 쳤다. 극장을 메우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와 일어선 그림자는 배우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연극 <라스트 세션>



연극 <라스트 세션>은 훌륭한 연출과 연기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시점을 담고 다양한 지식을 함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총리인 네빌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1940) 수상의 담화와 영화 <킹스 스피치(2010)>의 명연설의 모티브인 조지 6세의 연설 등 지지직거리는 라디오를 통해 인물과 관객에게 급박한 상황을 알려준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대화 속에는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의 <천로역정>,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의 자전적 소설 <순례자의 귀향>,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장편 서사시인 <실낙원>, G.K. 체스터튼(G.K. Chesterton, 1874~1936)의 <영원한 사람>,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모세와 일신교>,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등 여러 서적에 대한 언급도 잦다. 이외 심리학 용어도 등장한다.

 

연극뿐만 아니라 연극 속에 등장한 이런 역사와 지식을 이해하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제작된 포토북도 알차게 구성됐다.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까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자세히 적혀 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해서나 인물의 연혁 등, 배우의 인터뷰까지 수록됐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작품과 관객이 하나로 동화되기 위해 많은 연출진과 배우의 노력이 보이는 연극이었다. 실제로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2년간 총 775회의 장기흥행을 기록했으며,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얼라이언스 최우수 신작 연극상을 받았다. 현재 작품은 호평 속에서 진행 중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 역에 배우 ‘신구’와 ‘오영수’가, C.S. 루이스 교수 역에 ‘이상윤’과’전박찬’이 캐스팅됐으며, 22년 1월 7일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막을 올렸다. 작품은 3월 6일(일)까지 공연하며, 여러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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