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의미한 것도 의미가 있다 - 연극 언더스터디

무의미, 의미 그리고 존재
글 입력 2022.01.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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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더스터디]-캐릭터-포스터_공유.jpg

 

 

연극 <언더스터디>는 20세기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는 프란츠 카프카의 가상의 미공개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 브루스의 언더스터디가 된 제이크와 그런 제이크의 언더스터디를 맡게 된 해리, 작품의 무대감독 록산느가 공연을 준비해 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쇼 비즈니스계의 냉혹한 현실을 리얼하면서도 재미있게 담아낸 블랙 코미디이다. 각자의 권한과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의 의견만 내세우며, 서로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들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사건과 이슈들을 미국 극작가 테레사 레벡(Theresa Rebeck)만의 위트 있고 스타일리시한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언더스터디(understudy)는 ‘배역을 공부하는 중’이라는 의미로 주로 주연배우와 함께 같은 역할로 캐스팅되지만 ‘더블 캐스팅’과는 다른 개념이다. 무대 뒤에서 기다리다가 제작사가 기회를 주거나 주연배우가 사정이 생겨 무대에 설 수 없을 경우에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를 말한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모든 연습을 하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극은 해리가 “엎드려! 엎드려 트럭에 타, 엎드려 트럭에 타”라고 반복해서 크게 말하면서 등장하며 시작한다. 이 순간이 언더스터디인 해리가 유일하게 혼자서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다. 그는 이렇게 별로인 대사(이지만 흥행에 큰 요인으로 작용함)를 한 제이크의 연기를 폄하하고, 흥행에 성공한 그의 영화 또한 비하한다. 그는 이 대사가 전혀 의미가 없다고 강력하게 반복해서 말한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에게 이 영화와 대사는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적인 것은 무엇일까? 의미가 있는 것이 예술적인 것인가? 의미가 없는 것이 예술인가?

 

그 후 그가 언더스터디를 맡은 역할을 하고 있는 제이크가 등장한다. 제이크 또한 주연 배우인 브루스의 언더스터디(이하 언더)를 맡고 있지만, 무명 배우인 해리가 자신의 언더로 왔다는 사실에 직접적으로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일단 언더 리허설을 위해 온 무대감독 록산드와 해리와 함께 리허설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언더를 맡은 해리가 자신의 연기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하자 엄청나게 화를 내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신을 그대로 복제하라고 말한다. 이에 맞서 해리는 자신은 ‘재창조’하는 사람이며, 그와 동일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둘의 대립은 정점으로 향하고 록산느는 제이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를 달래며 해리에게 무조건 그의 말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언더스터디_기사사진3.jpg

 

 

해리는 못마땅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말대로 하기로 한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해리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연기를 내뿜는 순간, 제이크는 그의 연기에 매료된다. 이에 그에게 “다시 한번만 보여줘요”라고 요청한다. 해리는 순간 멈칫하다 다시 연기를 한다. 이 순간 제이크는 자신의 언더인 해리를 처음으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배우’로서 인정한다. 그 후 계속해서 해리의 연기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의 재해석을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그의 스타일대로 자신의 연기를 바꿀 거라고까지 말한다.

 

해리는 한 장면에서 수차례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의미하게 단순히 기존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를 그대로 답습하면 되는 존재인데, 계속에서 유의미하게 변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행동 하나하나마다 “왜”라고 묻는 그에게 록산느는 결국 폭발한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넌 아무 권리도 없어! 넌 그냥 배우야! 

아니, 넌 배우도 아니야. 넌 그냥 언더일뿐이야!”

 

 

언더스터디_기사사진2.jpg

 

 

언더 리허설은 처음에는 해리와 제이크 간의 갈등 때문에 삐걱거리다가, 후에는 록산느와 해리 사이의 과거(약혼) 관계로 인해 중단되기도 한다. 그 중간중간 사이에 무대 장치 콘솔에 있는 바비의 계속되는 실수로 인해서 리허설이 중단되기도 하고, 연습 장면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바비의 기이한 행동의 이유는 그가 마약쟁이라는 록산느의 발언으로 설명되게 된다. 이런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조금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연출을 넣었을까? 무대 전체를 감독하는 록산느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배경을 전환시키거나 음악을 트는 등의 행위를 하는 바비의 독자적인 행동은 마치 그들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공연계의 모습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모순된 현실을 말이다.

 

이런 상황은 제이크가 자신이 언더를 맡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이자, 이 공연에서 가장 표를 잘 파는 톱스타 브루스의 연기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하면서 고조된다. 그의 연기는 소위 말하는 ‘발연기’로 치부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제이크보다 수십 배의 돈을 벌고, 먼 지역에서까지 그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버스를 대절해서라도 온다. 반면, 언더스터디인 배우는 아무리 연기에 대해 고찰하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신경 써도 아무도 관심 없고 그를 보러 공연장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생계를 위협당한다.

 

극이 전개되면 될수록 어떻게 끝맺음을 할까 궁금해졌다. 극의 결말의 시작을 알린 건 록산느의 핸드폰 전화벨 소리였다. 언더 리허설을 통해 점점 무의미한 것들이 의미를 찾아가고 있던 찰나 록산느에게 걸려온 전화는 이 행위 모두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바로 제이크가 하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던 영화를 브루스가 하게 되면서 연극에서 조기 하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제이크는 해리와 함께 합을 맞추며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해리는 무의미한 언더스터디에서 의미 있는 배역을 맡은 배우로서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다음 록산느가 전한 말은 언더스터디가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조기 폐막’이었다. 이에 제이크와 해리는 분노하며 언더스터디를 뽑아 놓고 왜 조기 폐막을 하냐고 물어본다. 록산느는 덤덤하지만 분노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한다. 브루스가 하차하면 티켓이 팔리지 않을게 자명하기 때문에 브루스한테 거대한 위약금을 받아내고 극을 내리는 게 제작사들한테는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자본이 최우선시 되는 시장에서 제이크, 해리, 록산느는 이러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대화를 통해 다시금 ‘무의미한 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되고, 의미 있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 이 세계의 하나의 규칙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 바로 무대 위에서 노래에 맞춰서 신나게 춤추기 시작한다. 무의미한 것과 의미 있는 것의 의미가 뒤바뀐 현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 앞에 당장 주어진 것을 각자 최선의 방법으로 최대한 신나게 즐기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언더스터디_기사사진5.jpg

 

 

록산느를 시작으로 그들은 말한다.

 

 

“침묵은 존나 최악의 패배야”

 

 

침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는 상태이다. 무의미한 것이든 의미 있는 것이든 모두 ‘언어(말)’로부터 생겨난다. 언어로 규정되지 않거나 규정할 수 없는 것은 무(無)이다. 무의미한 것과 ‘없음(無)’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최악의 패배인 것이다. 무의미한 언더스터디는 자신의 생각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은 제이크, 해리, 록산느는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제이크는 개봉 첫 주에 9천만 달러의 수익을 거둔 액션 영화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톱스타인 브루스가 맡은 역할의 언더스터디를 맡고 있는 배우라는 점에서, 해리는 제이크의 언더스터디라는 점에서, 록산느는 무대감독이지만 무대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배우의 꿈을 접고 무대감독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무의미한’ 존재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질문함으로써 의미를 찾아나간다. 즉, 자신들이 지금 이곳 무대에서 언더 리허설을 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나간다.


이 연극은 말한다. 이 세계에서는 무의미가 의미 있고, 의미 있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다고. 이 세계는 비단 공연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 이 세계를 또한 지칭한다. 작품의 배경은 브로드웨이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디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도 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의미’는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은 세계 내 존재(Sein-in-Welt)이다. 그렇다는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의미와 무의미는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개인이 브랜드화되며, ‘누가’하는지가 점점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마냥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짓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배우 김주헌(해리 役)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존재요. 배우였던 록산느는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었고, 해리는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믿지만 언더로 작품에 참여해요. 제이크는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졌는데도 할리우드 스타의 언더를 하고 싶어하고요. 모두 자신을 부각시키고 드러내고 싶어서 끝까지 이어나갈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연출님이 “우리 모두는 언더스터이다”라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부족함을 느끼고 계속 존재를 갈구해요. 이런 의미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나의 존재, 인간의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 시어터플러스 배우 김주헌 인터뷰 中

 

 

이처럼 이 극은 무의미함과 의미와 존재의 관계성에 대해 묻는 극이다. 하지만 극은 무겁지도, 지루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오히려 흥미롭고 웃기고 즐겁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에 대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등 말이다. 우리는 가끔씩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에 잠식되어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를 무의미한 것으로 쉽게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극은 ‘언더스터디’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반드시 의미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무의미한 것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오히려 무의미한 것이 의미 있는 것 보다 더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이다.

 

 

 

컬쳐리스트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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