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만난 샤갈 - 샤갈 특별전 [전시]

글 입력 2021.12.3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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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마 스물한 살이었을 거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옆 팀 언니가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직업 특성상 서로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내가 시간을 낼 수 없었는데, 그 언니는 끝까지 기다려줬다. 전시 기간이 끝나갈 때쯤 겨우 보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할 겨를도 없이 전시를 관람했다.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봤다. 이것이 도움이 됐던 것일까. 그 이후로 가끔(많지 않지만) 전시회를 보러 갔다.


먹기 어려울 것 같은 음식을 맛집에서 처음 접하면, 그 음식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는 것처럼 샤갈의 그림이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뜻밖의 제안으로 전시를 보게 되고, 어려움 없이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과 교감한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샤갈의 전시를 다시 보게 됐다. 마이아트뮤지엄에 도착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관람 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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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샤갈의 회고전으로 21.11.25부터 22.04.10까지 개최한다. 샤갈을 처음 만났을 때는 다채로운 색감과 사랑의 메시지가 돋보였는데, 이번 전시는 ‘성서’가 주제였다. ‘성서’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예술창조의 원천이자 그동안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다.


전시는 총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샤갈의 모티브’, 두 번째는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세 번째는 ‘성서적 메시지’, 네 번째는 ‘또 다른 빛을 향해’였다.


샤갈은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물네 살에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야수파와 입체파에 이르는 모더니즘 회화를 습득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었는데, 파리에 정착하면서 프랑스식 이름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했다.

 

 

 

샤갈의 모티브


 

전시에 소개된 샤갈의 모티브는 에펠탑, 천사, 꽃다발, 십계명, 염소, 연인, 수탉, 바이올린, 물고기, 촛대 메노라였다. 작품마다 등장하는 모티브를 보고 있으면 샤갈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삶과 그 당시의 감정 등을 엿볼 수 있었다. 다양한 모티브는 샤갈 사람 자체를 그대로 담은 것이라고 본다.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과 성서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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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다윗 왕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에서는 샤갈이 성서를 접하게 된 계기, 그의 시선에서 본 성서, 성서가 샤갈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샤갈은 성서에 유대인의 고통을 투영했다. 말년을 스테인드글라스, 태피스트리, 발레 무대 세트와 의상 그리고 석판화 작업에 매진하며 보낸 것을 보면 샤갈에게 ‘성서’는 예술창조의 원천이자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샤갈은 성서를 신이 아닌 인간창조로 해석하여 그림으로 풀어냈다. 종교인이 해석하는 성서와 좀 달랐지만, 인류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고, 사랑하는 것은 같았다.


천주교 신자로서 샤갈이 풀어낸 ‘성서’는 색다르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된 성서를 접하고, 다른 시선에서 해석한 성서를 공유한 순간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다윗과 밧 세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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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밧 세바

 


그림에서 다윗과 밧 세바의 반쪽 얼굴은 하나의 얼굴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머리에는 천사와 만삭의 여성으로 보이는 형상이 있다. 자세히 보면 누군가가 다윗의 볼을 감싸고 있고, 손의 색과 모양이 다르다. 다윗과 밧 세바의 손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 같다.


다윗과 밧 세바의 눈에서 슬픔과 행복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슬픔과 사랑에서 오는 행복인 것 같았다.


성별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두 얼굴이 합쳐졌는데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샤갈의 실력 덕분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다.


샤갈의 따뜻한 시선이 그림에 담겨서일까. 다윗과 밧 세바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샤갈의 인류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또 다른 빛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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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빛을 향하여

 


마지막 섹션에서는 샤갈의 말년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성서와 함께했으며, 화가로서 책임과 열정을 다했다. 마지막에 소개된 ‘또 다른 빛을 향하여’는 샤갈이 세상을 떠난 하루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도슨트의 설명처럼 흔들리는 선, 하나의 색만 사용한 것을 보면 많이 힘겨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을 보면서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마지막 작품에 남은 열정을 쏟아 붓는 샤갈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샤갈에게 천사가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은 화가로서의 정체성, 예술을 향한 열정, 성서에 대한 애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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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샤갈의 시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그의 생각과 감성을 그림이 아닌 시로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오래전에 봤던 전시와 이번에 본 전시는 주제가 각각 달랐다. 하지만 다채로운 색감,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난 형상은 물론이고 그의 따뜻한 시선과 깊은 감성은 여전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말미암아 그의 그림들이 어두워졌지만, 다시 희망을 찾아 나갔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불행과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 끝에서 시작을 탄생시켰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차가운 현실에서 따뜻함과 사랑을 발견하는 그의 성향은 어떤 그림이든 가치를 더 높여줬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속 인물이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것처럼 샤갈의 성향은 그의 작품들을 아름답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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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성서’라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성서’는 연결고리 정도로 여기고,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관람하면 좋겠다. 샤갈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시선에 중점을 두고 관람한다면 새해의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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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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