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영화]

현실보다 잔혹한
글 입력 2021.10.2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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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모두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경우 사람들은 어릴 적 동화를 읽으면서 (혹은 부모에게 들으며) 자란다. 그리고 신화와 설화, 요정과 판타지, 그 외 모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단지 책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적 열망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머리가 커가며 책 속 내용들과 자신이 했던 모든 상상들이 전부 허구였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상상 속에 빠져있도록 허락하지는 않는다.

 

산타가 그렇다. 산타의 존재를 믿던 아이들도 언젠가는 부모 혹은 어른들의 말(가령 '산타는 사실 부모님이란다'같은)에 의해 상상적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지니고 있던 허구적 존재는 무참히 살해당하고 결핍에 의한 상실감이 빈자리를 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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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과정을 겪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하나는 산타, 즉 허구의 존재를 모르고 자란 아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경우이다. 허구적 존재를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신비로운 상상으로 가득 찬 현실감각을 경험해보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허구적 존재 의미의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을 피해 갈 수는 있다. 다른 하나는 오직 아이일 때만 이해받을 수 있는 현실 부정 단계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오는, 때론 지독한 그들의 상상적 존재와의 일체감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그리고 어떠 경우, 그들은 일체감과 분리를 거부한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상상을 떠나 현실 세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순수함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어른들은 얘기한다. 현실은 잔인하다고, 그리곤 아이들이 허구의 세계(동화 속)에 잠시 동안 머물 것을 허용한다. 하지만 사실 동화라는 것이 생각만큼 순수하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보다도 잔인하고 잔혹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은 대개 각색된 내용들이며 그전의 원작이 존재한다. 원작들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잔인하고 성적이며 기괴하여 '잔혹 동화'라고 불린다. 동화는 사실상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감독은 이 점을 교묘하게 영화에 적용한다. 동화적 판타지로 아이들의 순수함을 내비치며 그 속에 녹아있는 어른들의 잔혹함을 거침없이 풀어낸다. 그리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이 감독의 잔혹동화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 영화를 그저 기묘한 판타지 영화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순간 당신은 순수함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무자비함이 얼마나 거대한 공포로 다가오는가를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사랑과 희망, 평화와 행복, 순수함과 희생으로 위장한 잔혹동화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주인공의 열망으로부터 비롯된 영화 <판의 미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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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스페인 내전이 끝난 시점을 배경으로, '오필리아'와 만삭인 그녀의 모친 '카르멘'은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숲 속 기지로 거처를 옮긴다. '비달' 대위는 숲 속에 숨어있는 시민군은 진압하기 위해 해당 기지로 배치되었으며 자비 따위는 없는 잔인한 인물이다. 그는 오필리아와는 정반대 되는 자로 오필리아가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가혹한 현실을 의미한다. 무자비한 어른들과 총격과 죽음이 가득한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 오필리아는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오필리아' 앞에 동화책 속에서만 보았던 존재들(요정, 판)이 나타나 그녀가 사실은 지하 세계 공주라고 얘기한다. 그와 함께 '판'은 보름달이 뜨기 전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곤 혼자 있을 때만 봐야 한다 당부하며 책 한 권을 건넨다.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이것은 분명 신비로운 동화 판타지이다. 모두가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정성스럽게 짜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틀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새아버지(군인)와 만삭에 몸이 나빠지는 어머니, 시민군과 정부군의 전쟁, 그리고 춥고 배고파하는 시민들로 가득한 현실이 보인다. 그 외에도 영화는 동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코가 부서지고 머리가 터지고 시뻘건 피가 난무하는 장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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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동화 판타지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감독은 스페인 내전 직후, 시민군과 정부 진압군 간의 냉소적인 분위기,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긴장감과 불안한 심리상태를 다룬 하나의 서스펜스 영화 안에 '오필리아'라는 어린아이의 판타지 영화를 접목시켰다. 영화는 '오필리아'가 지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필리아'가 나무 밑에 사는 거대한 두꺼비를 물리치고 황금 열쇠를 얻거나 아이들을 잡아먹는 기괴한 생명체로부터 칼을 구해오는 과정에는 분명히 동화적 판타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오필리아'가 매 임무를 마치고 나면 영화는 다시금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그녀를 둘러싼 큰 틀이자 서스펜스 영화로 돌아오는 셈이다.

 

반대로 관객들은 점점 현실과 판타지를 분리하지 않기 시작한다. 감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장면을 푸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오필리아'의 판타지와 현실, 두 공간을 연결/전환한다. 마치 책장을 넘기는 듯한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 관객이 영화 속 판타지 세계, 즉 영화의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비로소 영화는 동화 판타지 형태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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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우리는 과연 동화 판타지가 영화 내에서 실제로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정말 '오필리아'는 지하 세계 공주인지, 그녀가 행한 임무들이 그녀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허구적 존재의 소멸에는 상실감이 따른다. 그리고 그 결핍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_<판의 미로>에 나온 단어를 인용하자면, 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세계_로 진입한다.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오필리아'는 그러한 세계로 진입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직 상실감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니다. 애초에 '오필리아'는 한 번의 거대한 상실을 경험하였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그녀는 현실세계의 가혹함을 알아버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른(현실세계의 인물)으로서 현실에 머무르고 적응하기 위해 새아버지와 재혼하였지만 '오필리아'는 그 순간 현실세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순수한 동화 속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들었다. 비로소 영화의 틀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상실의 고통이 있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아버지의 세계로의 진입을 거부하며 '오필리아'는 그녀의 세상을 탄생시킨다. 따라서 지하세계 공주라는 설정은 '오필리아'가 상실의 아픔을 잊고 아버지와 함께이고 싶은 욕망이 동화에 표출된 결과이며 영화 시작 장면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내레이션 주인공은 '오필리아' 아버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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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여러 차례 우리에게 '오필리아'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알려준다. '오필리아'가 처음으로 발견한 요정의 모습은 요정이 아닌 날개 달린 초록색 거대한 벌레였다. 그녀가 요정이라고 부르는 그 벌레는 '오필리아'가 책 속 요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요정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다. 그 외에도 일종의 클리셰처럼 그녀가 수행하는 임무들은 모두 '오필리아'의 눈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어른들은 알지 못한다. 또한 그녀가 '카르멘'에게 하는 대사 중 이런 말이 있다. "여기서 살기 싫어요. 우리 떠나요" 그녀가 말하는 이곳은 숲 속 기지를 의미할 뿐 아니라 그녀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차가운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어 하는 도피 욕망이 은유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결정적인 대사는 '카르멘'의 대사이다. "아빠 말씀을 들어야 해. 현실은 잔인하고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현실을 받아들인 어른을 이용해 감독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영화의 결말을 아이들의 관점으로 본다면 오필리아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여 무사히 지하세계로 돌아간 해피엔딩이다. 그녀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는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으로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이미 물든 어른들의 시선으로 볼 때, '오필리아'는 죽음과 함께 그녀의 상상(환상)도 종결되었고 그녀의 죽은 육체는 결국 그녀가 현실에 존재하던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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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영화로 개봉을 하면서 당시 꽤 많은 어린이들에게 경악과 혐오스러움을 전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는 결코 어린이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동화가 아니라 잔혹동화이다. 성인들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잔인하고 기괴한 장면이 많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정은 잔혹했을지라도 결말만큼은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면서 어른들에게도 망각하고 있던 아이들의 순수함을 일깨워준다. 행복한 동화의 결말에 아이들은 기뻐하고 어른들은 내심 '오필리아'의 동화가 사실이기를 바랄 것이다. 영화는 당신의 맘 속에 숨어있던 동심을 건드린다. 더 이상 동화를 믿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세계로 들어온 당신에게 경고한다. 동심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이다.

 

영화가 결국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시작된 한 아이의 상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허무한가. 화가 나는가. 슬픈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오필리아'의 순수함을 잊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당신도 한 때 한 명의 '오필리아'였을테니.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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