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콜바넴과 엮어 본 책 - 아웃 오브 이집트 [도서]

글 입력 2021.10.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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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하다가 잠깐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시시콜콜한 잡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정도 깊어지다가, 우리 둘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 시간 때우기나 심심풀이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영화를 쫓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 평론가가 꿈인 친구와 함께 dvd 방에서 정말 많은 영화를 빌려봤었다고.

 

그래서 물었을 거다. 어떤 영화를 가장 좋게 봤냐고. 의식의 흐름처럼 이어지던 대답의 끝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었다. 여름의 이탈리아가 너무 좋다고 했다. 그 청량한 푸름과 분위기, 색상이.


나는 대화할 때 사람의 눈을 자주 쳐다본다. 졸림과 피곤이 뒤섞인 눈이 일순 반짝이면, 신호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왜 좋아하는지 알려주는 신호. 물건이든 사람이든 개인의 기호가 그득 담긴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 눈이 그렇다. 그 열정적인 눈을 마주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도 좋을까. 나에게도 좋을까.

 

아쉽게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두 번이나 봤지만, 감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분위기가 무엇인지 예감하기도 어려웠다.


대신 궁금증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으니 집필한 작가가 있을 테고, 그의 삶 또한 책과 영화에 담겼겠지. 그래서 그가 지은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를 골랐다. ‘아웃 오브 이집트’. 이집트 밖을 일컫는 제목이었지만, 역으로 이집트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작가가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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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중 식사 장면

 

 

책의 첫인상은 이집트였다. 책이 품고 있는 종이의 냄새가 이상하게도 모래를 닮았다. 백사장의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라 알갱이가 조금 크고 까끌까끌한 모래.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주로 풀어낼지 사전에 조사한 것도 없는데 느낌이 그랬다. 400페이지를 웃도는 이야기를 다 읽고 보니 몇 부분이 영화와 겹쳤다. 특히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삼대를 다루는 게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가족 비중이 많은 건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풍경 묘사도 비슷하다. 영화의 분위기와 배경에 감동한 이들이 많다. 책에서는 그 시각적 표현들이 글자로 꾸려졌다. 커피 가루, 바다, 수영복, 베란다 문, 그리고 햇살까지. 이집트 배경인데도 이탈리아 여름이 떠올랐다.


책이 어렵긴 하다. 사람들의 대화가 주를 이루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탓이다. 시대적 배경도 그러하고, 무엇보다 문화권의 차이다.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이 원어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 심심찮게 많고, 유대인 등 다소 먼 나라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 사람과 그 주변인의 생애 전체를 말하는 회고록이니 당연한 모습이긴 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여도 괜찮다고 느꼈다.

 

 

목차

 

1장 군인, 세일즈맨, 사기꾼, 스파이|9

2장 멤피스거리|61

3장 100세 파티|127

4장 불 꺼!|201

5장 연꽃 먹는 사람들|285

6장 마지막 유월절|391

 

 

책을 보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장면과 겹치는 대목이 더러 있었다.

 

 

옥상은 매우 고요했다. 저 아래에서 윙윙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손 닿는 것마다 델 듯이 뜨거웠다. 텅 빈 옥상을 돌아다니며 다른 건물들의 옥상을 바라보노라면 무한한 지평선을 따라 늘어진 거대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파란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나 나를 손짓해 부르는 바다였다.

 

143~144p

 

 

차를 타고 처음 등장한 올리버를 창문가에서 지켜보던 카메라의 시선이 떠올랐다. 이집트만큼은 아니겠지만, 이탈리아의 여름도 상당히 더울 터다. 옆 나라인 스페인의 세비야는 한낮에 40도에 육박하니까 말이다. 주변 경관과 인물이 어우러진 건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엔 자기 자신이 담기기 마련이다.

 

 

집 안에 커피 가루 향기가 퍼졌다. 록사네는 아침 일찍부터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은 주전자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이었다. 조이는 아직 잔다고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인들도 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베란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성글게 짠 커튼을 들어 올리면 기적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주차된 차들의 후드만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 너머로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일요일의 고요함에 잠긴 저택들, 반짝거리는 옅은 파란색 바다가 펼쳐졌다.

 

375p

 

 

이 부분만 딱 잘라 본다면, 영화의 주인공인 올리오의 시점에서 풀이한 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수영복, 커피, 하인, 베란다, 아침 햇살. 올리오의 집이 겹쳤다. 영화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만큼 자주 나왔던 수영복. 호수뿐만 아니라 연못처럼 작은 물가에서도 주인공은 헤엄쳤다. 다만 그곳의 물은 푸른색보단 초록에 가깝다. 물 주변의 녹색이 우거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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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정말 많이, 자주 수영한다.

 

 

수영복 차림으로 집안을 뛰어다니던 올리오와 마르치아, 하인을 이야기할 땐 가사노동 담당한 마팔도가, 햇살과 달빛이 내리던 방 베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손쉽게 이 장면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엄마네 가족, 아빠네 가족과 자기 자신까지 합쳐 삼대를 아우르는 회고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또 닮은 구석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고, 저녁엔 친인척과 함께 가족 모임을 시작하던 그 모습 말이다. 영화는 사랑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지만,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배경엔 작가 개인의 삶이 곳곳에 묻어난 느낌이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 낯선 언어와 가치관, 무엇보다 단일 민족인 우리에게 낯선 민족성의 개념이 회고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점이 책을 읽어나갈 때 장벽으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영화로든 책으로든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이야기와 콘텐츠 속 주인공의 모습을 견주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집트’ 하면 떠오르던 그 매캐한 공기와 텁텁함이 생동감으로 뒤바뀐 책이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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