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레이블링 게임으로 찾는 '나'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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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소개팅에서 서로의 MBTI를 묻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취미나 취향에 초점이 맞춰진 대화 소재는 자기진단 테스트로 옮겨갔고, 더 나아가 학생들의 진로 파악이나 기업의 채용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MBTI는 인간의 성격 및 성향을 16가지로 구분하는 지표로 테스트를 완료하면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레이블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의 테스트(놀이)를 통해 특정 레이블(딱지)를 부여받는 것을 ‘레이블링 게임’이라고 부른다.
레이블링 게임은 자기 정체성을 특정화된 유형으로 딱지를 붙인 뒤, 해당 유형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조·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게임화된 노력을 말한다. 테스트라 불리는 게임을 통해 자신에게 특정 유형을 지정하고, 그 유형에 맞는 삶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삶을 맞춰 사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유형화한 뒤 특정 타입에 맞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역의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의 등장
레이블링 게임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부캐(부 캐릭터)의 부흥이다. 작년 멀티 페르소나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많은 연예인이 예능에서 부캐를 만들었다. 부캐가 성공적으로 흥행하면서 자신의 부캐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가치관의 다양화이다. 더는 옛날처럼 공부만으로 진로와 롤 모델을 정하는 시대가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살려 진로를 형성하는 가치관이 도래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정답을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깊은 고민인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간편한 자기진단 테스트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코로나 19의 영향이다.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하든 간에 어느 정도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기 정체성 역시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접촉이 줄어들면서 타인의 시선이 부재한 상황이 발생했고, 스스로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레이블링 게임의 산업화
레이블링 게임은 인간의 자기 정체성 확보에서 그치지 않고 산업에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나이, 성별, 지역 등 인구학적으로 분류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성격유형을 동원해 고객을 여러 기준으로 세분화시켜 각 영역에 해당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안을 제시한다.
뉴미디어 종합 콘텐츠 기업 ‘더에스엠씨그룹’의 자회사인 참여형 콘텐츠 플랫폼 ‘방구석 연구소’는 작년 말 레이블링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첫인상 테스트’를 통해 브랜디드 콘텐츠를 시도하였다. 첫인상 테스트는 글로벌 명품향수 공식몰 '밀리언뷰티'와 콜라보로 기획된 콘텐츠로 10가지 문항에 답변하면 나타나는 16가지 유형에 따라 첫인상과 성격, 어울리는 향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향수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해당 테스트는 77만 명 이상의 참여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전체 1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서 관련 키워드 7건이 연달아 노출되는 성과를 보였다. 구매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이 있는 고관여 제품인 향수에 즉각적인 성과를 지표로 나타내게 한 건 단연 레이블링 마케팅의 힘이었다.
‘방구석 연구소’와 ‘우리은행’이 콜라보한 ‘#기억하_길’ 캠페인 역시 레이블링 마케팅을 활용한 기법이다. 해당 캠페인은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과거의 역사를 각색한 시뮬레이션 형식의 테스트를 통해 참여자 스스로가 그날의 역사를 체험하도록 했다. 테스트는 현재에서 과거로 간 참여자에게 다양한 상황을 각색해 보여주고 12개의 문항에 답을 하면 MBTI 기반 알고리즘을 반영하여 16개의 독립운동가 유형 중 하나가 결과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결과 이미지를 개인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 1000원씩 기부되는 형태로 총 3000만 원의 모금액이 저소득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해당 캠페인은 72시간 만에 누적 참여자 73만 명을 돌파했다.
MZ세대를 사로잡은 레이블링 게임
레이블링 게임을 활용한 마케팅은 ‘자발적인 확산’이라는 큰 장점이 있다. 기존 광고 마케팅은 잦은 노출을 위해 큰 비용을 들였지만, 레이블링 마케팅은 마지막의 공유하기 버튼을 통해 자발적 공유로 이어질 수 있다. 팬데믹에도 시공간 제약 없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음에 따라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제한된 활동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SNS와 친숙한 MZ세대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현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자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유형에 맞춰 소비를 지향하는 모습은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는 새로운 소비 세대라는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바이다.
나 역시 불과 이틀 전 친구들과 단체 채팅방에서 호그와트 기숙사 테스트를 했고, 결과지를 보며 정확도를 열렬히 논했다. 몇 개월 전에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모든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테스트 결과지를 공유했고, MBTI는 첫 만남에서 대화를 이어나갈 하나의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모두가 하는 놀이에 동참하여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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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생물이다. 내면의 나를 알기 위해 수련하고, 공부하며,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길 희망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현대 사회의 불안 속에서 정체성을 알기 위한 범위의 폭이 줄어든 지금, 인간의 본능을 건드린 레이블링 게임이 나타났다.
초반에는 다들 반짝하고 지나갈 하나의 트렌드에 그칠 거라 했지만, 산업에까지 가지를 뻗은 레이블링 게임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더불어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하는 현시대에서 레이블링 게임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깊어진 현대인의 정체성 고민에 따라 고도화된 기술을 갖출 미래의 레이블링 게임이 어떤 방향으로 올바르게 나아가는지가 중요한 관건 일 듯하다.
[지은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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