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려견에게 인간을 끼얹기 - 윌리엄 웨그만 展

Being Human 비잉 휴먼
글 입력 2021.08.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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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천만 세대에 이른다고 한다. 그만큼 동물을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해 가족들은 적게는 몇만 원부터 크게는 몇백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감당하며, 각양각색의 반려동물용품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까지, 주인들은 반려동물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윌리엄 웨그만'이 사랑해 마지 않는 반려견은 그의 작품 속 뮤즈로 등장한다. 윌리엄 웨그만은 197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번째 반려견 '만 레이'를 모델로 한 작품 활동을 시작으로 대형 폴라로이드로 매체를 확장하여 여러 마리의 반려견을 프레임 속에 담아내고 있다. 반려견은 웨그만이 연작을 이어나가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 된다.


[Being Human 비잉 휴먼] 전은 웨그만이 자신의 반려견을 모델로 삼아 독특한 연출을 시도한 전시회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웨그만의 반려견이 인간으로 변신하였다. 주부, 우주 비행사, 변호사 등 일상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바이마라너 반려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교차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이 여러 방면에서 예술성을 구축해 온 웨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에 더욱 심취하게 만든다.

 

 


SECTION 1: 우리 같은 사람들 (People lik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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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주얼 Casual>

(© William Wegman)


 

'우리 같은 사람들 (People like us)' 섹션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캐주얼 Casual> 속의 바이마라너는 빨간색 옷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었다. 배경마저 빨개서 시선을 강렬하게 압도한다. 빨간색으로 무장한 바이마라너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사진 앞에 섰다. 그의 포즈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 보인다. 그러나 바이마라너는 정면이 아닌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젊은 부자처럼 보이는 멋들어진 옷을 입은 것과 달리, 그는 삶에 권태를 느끼는 것처럼 지루해 보인다.

 

 


SECTION 2: 가면무도회 (Masque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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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Eyewear>

(© William Wegman)

 

 

<안경 Eyewear>의 주제인 가면무도회(Masquerade)는 16세기 베네치아 상류층이 가면을 쓰고 사교춤을 추는 모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인간은 가면으로 본연의 모습을 감추고 '익명'으로 무도회를 즐기지만, 바이마라너에게는 해당하자 않는다. 바이마라너가 안경으로 쓴 인간의 눈은 오히려 내면을 날카롭게 궤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 앞에서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원초적 자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SECTION 3: 입체파 (Cub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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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주의 Constructivism>

(© William Wegman)

 

 

입체파(cubism) 대표 화가를 꼽으라고 하면, 대게 '파블로 피카소'를 떠올린다. 웨그만은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한 인간의 모습을 혼합하여 입체파라는 예술 사조를 개척한 피카소에게서 조형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큐브의 세계에 깊이 심취해있던 웨그만은 피카소의 영향으로 조형물과 바이마라너의 독특한 조화를 꾀할 수 있었다. 피카소는 인간의 입체적인 모습을 한꺼번에 나타냈지만, 웨그만은 네모난 조형물을 바이마라너가 짚고 있는 단순한 조화를 구성했다.

 

 

 

SECTION 4: 환각 (Halluc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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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

(© William Wegman)

 

 

<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 작품의 주제인 '환각(Hallucination)'은 정신적 방황을 일컫는다. 바이마라너를 좌우 반전시킨 <오늘의 심리 Psychology Today>를 보면 마약을 한 듯한 착각이 든다. 웨그만은 이 작품을 통해 환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허상임을 드러내고자 의도했다. 관람객은 이 작품 앞에서 바이마라너가 둘로 나뉘어 보이는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된다. 칠흑 같은 배경이 바이마라너의 회색빛 털을 더 오묘하게 보이게 만들어 마치 혼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SECTION 5: 색채면 (Colour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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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뷰 Ocean View>

(© William Wegman)

 


전시회에서 색의 아름다운 조합이 가장 돋보이는 섹션이 아닐까 싶다. <오선뷰 Ocean View>는 제목답게 바이마라너가 청명한 여름 하늘 아래에서 바다를 감상하는 것 같다. 바다 위의 노란색 의자는 단연 눈에 먼저 띈다. 망망대해에 표류한 바이마라너가 노란색 구명보트를 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닷가에 안전구조요원들이 앉아있는 높다란 의자 같기도 하다.

 

 

 

SECTION 6: 보그 (V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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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와 목걸이를 한 개 Head Wear, Neck Wear>

(© William Wegman)

 

 

나비 목걸이를 걸고 형형색색 핸드백을 뒤집어쓴 바이마라너의 모습은 생소해 보이는 동시에 다소 우스꽝스럽다. 인간이 걸치고 다닐만한 목걸이와 핸드백을 한 개의 모습을 일상에서 목격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윌리엄 웨그만의 전시에서만 이러한 광경을 자연스럽게 맞닥뜨릴 수 있다.

 

웨그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각양각색 인간의 물건과 바이마라너의 무표정이 더욱 대비되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작품이 전시된 섹션의 주제가 '보그 (Vogue)'인 만큼, 시크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바이마라너는 인간 못지 않게 브랜드의 모델이 되기에 완벽하다.

 

 

 

SECTION 7: 누드 (Nu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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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기타 Slow Guitar>

(© William Wegman)

 

 

소파나 침대로 추정되는 폭신한 이불에 누운 바이마라너의 모습은 마치 휴일에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있는 나를 보는 듯 하다. 19세기 중반 사진술이 시작된 이래 '누드'는 예술적 표현의 주요 장르로 남았고, 웨그만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누드가 인간의 태곳적 모습을 여실하게 드러내듯이, <슬로우 기타 Slow Guitar>에서 바이마라너는 현악기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이는 현악기에 대한 바이마라너의 열정을 누드 기법으로 나타내려 했던 웨그만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SECTION 8: 이야기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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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노 왕자와 마술피리 Tamino with Magic Flute>

(© William Wegman)

 

 

<이야기 Tale> 섹션은 하나의 고전 명화를 보는 것 같다. 유럽 왕정 일가의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야기는 인간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이다. 대개는 허구이지만, 때로는 진실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사유하는 힘을 길러왔다.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뜻하는 'Tale'과 인간의 생존에 더이상 필요하지 않아 퇴화한 꼬리를 뜻하는 'Tail'은 발음이 비슷하다. 인간과 달리 꼬리가 아직 달린 바이마라너는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바이마라너는 꼬리가 없는 인간이 만든 명화에서 꼬리를 흔들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SECTION 9: 앉아! 가만 있어! (Si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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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흑백 Left Right Black White>

(© William Wegman)

 

 

섹션의 제목인 '앉아! 가만 있어!'는 인간이 반려견을 훈련할 때 쓰는 기본 명령어이다. 아마 바이마라너도 사진을 찍을 때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어지는 촬영에 지루했을 수도 있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충성심으로, 웨그만은 바이마라너를 모델로 한 사진들을 연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훌륭한 인내와 절제는 사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은 채 의자에 앉아 우아한 몸을 뽐내고 있다.

 

*

 

[Being Human 비잉 휴먼] 전은 개인으로 처음 다녀온 전시회였다. 학교에서, 혹은 대외활동에서 단체로 전시회를 관람하러 간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전시회를 향유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고, 작품 옆의 설명을 통해 웨그만의 작품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반려견이 자신의 뮤즈가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반려동물 가정을 100%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웨그만이 반려견을 예술적 사진으로 남겼다는 것은, 그가 바이마라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웨그만이 단순히 반려견을 카메라 앞에 세워둔 것이 아니다. 바이마라너에게 예술적 장치를 입히기도 하고, 씌워보기도 하며, 때로는 얹어보며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했다. 어찌 보면  두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작품을 관람하면 마치 웨그만이 '예쁜 내 새끼 좀 보세요'라고 외치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혹시 웨그만이 자신의 예쁜 반려견을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귀엽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Being Human 비잉 휴먼] 전은 한가람 예술의 전당에서 9월 2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반려견에 대한 웨그만의 애정을 확인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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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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