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끼를 '떼우는' 것이 아닌, '선물받는' 것

글 입력 2021.08.24 15: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기에 밥을 굉장히 중요시 생각한다. 단순히 '든든하고 많이'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정성 들였는지, 얼마나 정갈한지가 중요하다.

 

아쉽게도 나는 독립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끼니는 집 밖에서 해결했다. 덕분에 친척댁 근처 단골 식당들이 몇 개 생길 정도였다. 그곳의 음식들은 물론 맛있었지만, 대부분 저가 외식이 그렇듯 맛이 강렬하고 무거웠다. 국밥, 중화요리, 분식 등등. 기름지지 않거나 무겁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작년 11월 친척댁으로부터 나와 독립하자마자 나는 요리에 몰두하게 되었다. 기름진 음식에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식탁에 앉아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몇 년간의 꿈이었다. 덕분에 내 식탁 위는 건강식이 가득 채웠다. 아침과 점심은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대용량의 채소들을 산 뒤 간단한 토스트와 함께 먹었다.




ㅇㅅ1.JPG

 


토스트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 그릇에 계란 두 개를 풀어주고 우유와 살짝 섞는다. 약불의 프라이팬이 살짝 따뜻해지면 그 위에 풀어놓은 계란을 프라이팬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부어준다. 소금과 후추를 조금 뿌려주고, 밑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

 

고소한 계란 냄새와 함께 밑면은 살짝 익으면 아직 덜 익은 계란 윗면에 호밀 식빵을 얹는다. 그리고 식빵이 올려진 계란 윗면도 함께 익을 때쯤, 계란과 같이 식빵을 뒤집어준다. 어느새 프라이팬 쪽으로 간 식빵을 구워주며, 식빵 위에 넓게 얹어진 계란을 식빵 안으로 접어 넣어준다. 식빵 아랫면이 노릇하게 익을 때쯤 식빵을 반으로 접어주고, 뒤집개로 한 번 꾹 눌러 닫아준 뒤 반으로 자른다.


접시 위에 올린 뒤, 구운 햄과 샐러드를 잔뜩 얹어주고 컵에 우유를 따라주면 건강하고 간단하고 맛있는 브런치가 만들어진다. 기호에 따라 두부 튀김이나 아보카도, 요거트나 과일 등등을 함께 먹어도 잘 어우러진다.

 

 

ㅇㅅ2.JPG

 


저녁은 주로 일반적인 가정식을 해 먹었다. 당근, 감자, 양파, 사과, 버섯을 잔뜩 넣어 끓인 카레와 에어프라이어로 구워낸 닭 다리, 아보카도와 날계란을 얹은 연어장 덮밥, 맑은 된장국과 에어프라이어에서 구운 돼지 목살 등등.


요리를 할 때이면 각종 향긋한 요리 냄새가 작은 원룸 안을 가득 채웠고, 그렇게 나의 보금자리에서 정성을 담은 요리를 한 입 먹을 때마다 행복이 가득 찼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킨 뒤 핸드폰을 만지며 먹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요리를 시작한 뒤로는 멍하니 미디어 매체를 보는 대신 음식을 음미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을 넣으면 더 맛있을지, 이번에 시도한 요리에서 아쉬운 점은 어떤 것인지, 다음에는 어떤 음식을 시도해볼지 한 입씩 먹을 때마다 애정을 담고 골똘히 고민하게 되었다.

 

요리는 큰 힘을 갖고 있다. 만드는 시간 동안의 고민과 애정, 향긋한 음식 냄새들은 나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하다. 한 끼를 '떼우는' 것이 아닌, '선물받는' 느낌은 그날 하루를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런 요리 생활은 두 개의 장애물을 만나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와 여름이었다.


너무 건강하고 잘 챙겨 먹은 탓에 몸무게가 갑자기 불어났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요리는 간소화되었다. 밀가루를 아예 끊으면서 좋아하던 토스트도 못 만들게 되었다. 그래도 요리의 즐거움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야채 구이, 삶은 고기를 주로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요거트랑 고구마를 섞어 먹어보는 등 새로운 요리들을 계속 시도했다.

 

 

ㅇㅅ3.JPG




그러나 이런 다이어트라는 장애물을 넘어도 결국에는 가장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여름이었다.


여름에는 요리가 어렵다는 말을 언뜻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여름을 직면하니 요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음식물 쓰레기에는 금방 벌레가 꼬였고, 요리는 금방 쉬었다. 설거지를 몇 시간만 미루면 바로 악취가 났다.

 

설상가상으로 냉장고도 고장 나 크기가 작은 것으로 바꾸고 나니 요리는 이제 더는 쉽게 접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운 여름 불 앞에 서서 요리한다는 것, 그렇게 만들어도 한나절이면 바로 쉬어버린다는 것은 대용량으로 만들어놓고 자주 나눠 먹는 나에겐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결국 이번 여름은 요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닭고기도 삶아 먹기 보다는 이미 요리된 것을 샀고, 브런치도 대부분 요거트와 그래놀라를 섞어 먹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음식을 먹을 때에는 핸드폰을 들게 되었다. 밥을 먹는 시간이 더이상 기다려지지 않았고, 그렇게 내 하루를 근사하게 만들어줬던 설렘은 더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얼른 겨울이 오는 것이 기다려진다. 다시 요리가 하고 싶다. 이것저것 재료들을 섞어 만든 나의 요리를 맛보고 싶다. 공들여 정성껏 차린 한 끼를 음미하고 싶다.



 

[김혜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8957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2.01.27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