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편집자란 직업을 넘어, 편집자란 사람을 보다 - 편집자의 세계

찬란한 미국 문화의 개화기를 이끈 15명의 명편집자
글 입력 2021.08.1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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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편집編輯의 정의를 살펴보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일’이라는 대목이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주어진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책, 신문, 영화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일을 ‘편집’이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선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콕 집어 말하려니 여전히 막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편집자’란 명칭을 숱하게 들으면서도 정말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쓴 글이 한 권의 책, 그러니까 세상과 만날 준비가 된 작품이 되기까지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 걸까?


도서 『편집자의 세계』를 선택한 이유는 이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극히 단순한 마음이지만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편집자는 좋은 원고를 찾아 열심히 살펴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쳐 이런저런 일을 수반하며 책을 완성하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두서 없이 짐작하기만 하던 인상이 조금은 선명해질 거란 작은 기대를 걸며 책을 만났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관심의 초점은 편집을 하는 직업이 아닌, 편집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미묘한 변화 같지만 일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것을 함께 생각하는 방향은 사뭇 다른 깊이의 독서로 나를 이끌었다. 한편으론 편집자야말로 그 심성과 태도가 온전히 드러나는 위치이자, 그것으로 모든 일을 이끌어 나가는 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큼 한 권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편집자의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인간상이 맞물린, 하나의 세계를 조명하는 책이었다.


 

이 책, [편집자의 세계]는 미국을 대표하는 편집자를 두루 소개한 책이다. 잡지와 단행본을 경험한 고정기 선생의 이력답게 두 업계를 대표하는 편집자가 등장한다. 이 책의 미덕은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출판/잡지계에 입문했는지, 그리고 무명의 작가를 어떤 계기로 발견해 스타로 키워냈는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한 편집자상은 무엇인지 등을 흥미롭게 소개했다.

 

 

『편집자의 세계』는 한국 출판 1세대 편집자인 고정기 선생이 국내 출판계의 산업적 기반이 약한 당시 오래 머물며 일을 하거나 배울 곳이 드물었던 편집자들을 위해 저술한 책이다. 미국 출판계를 대표하는 편집자들을 선정하여 한 명씩 소개하는 책의 초점은 올바른 편집자상이 무엇인지, 편집자로서 해나가는 일과 그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는 데에 있었다.

 

 

편집자는 바로 이러한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며 연출자이다. 저자와 독자의 중간에 서서 저자의 사상이나 문화가 올바르게 활자화되어 독자가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흡수하도록 연출하기도 하고,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촉매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 머리말

 

 

편집자가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풀어가며 편집자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길어 올리는  『편집자의 세계』에는 편집자의 역할을 ‘중매자’라 여기는 저자의 관점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 글을 읽게 될 시대와 사람들까지. 수많은 이해관계를 헤아리며 모든 과정에 함께하는 편집자의 이야기를 보노라면 저자의 관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도서는 몇 장의 원고가 어엿한 책이 되어가는 눈에 보이는 과정을 넘어서, 이 과정 동안 편집자가 숱하게 마주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소통과 고민, 결정의 순간들을 조명한다. 그러면서 가장 많은 것을 이끌어가면서도, 무대 위가 아닌 그 뒤를 묵묵히 지켜야 하는 편집자가 지녀야 할 편집자상을 발견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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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캔필드(하퍼 앤 브라더스 편집자)

 

 

타이밍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좋은 책을 만드는 불가결의 요소이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것은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편집자가 그들이 쓰는 시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반대로 그 시대의 흐름에 너무 앞서가는 것 또한 치명적이다. 출판은 어디까지나 기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123쪽

 

 

책이 소개한 편집자들은 확신이 생겼을 때 바로 밀어붙이는 집념을 발휘하다가도, 작가의 재능과 작품을 다룰 땐 너그럽고 다정한 지도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자의 예로 하퍼 앤 브라더스 편집자 캔스 캔필드와 존 건서의 일화가 떠오른다. 10년 전부터 기획한 도서 『유럽의 내막』의 적임자로 기자 존 건서를 주목한 캔필드는 시행착오 끝에 그를 찾아간다. 그러나 존 건서는 책을 위해 특파원 자리를 내려놓을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캔필드는 실망했지만 이 기획을 포기할 수 없어서 수년 후 뉴욕 호텔에 머물고 있는 존 건서를 다시 찾아가 출판 계획서와 함께 그를 설득한다.

 

결국 계약서에는 존 건서의 사인이 새겨지고, 1년 내에 출간된 『유럽의 내막』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자신의 기획과 그에 어울리는 저자, 그리고 시대의 타이밍을 탁월하게 맞춰 책을 완성하려는 캔필드의 편집자로서의 안목과 집념, 그리고 그에 수반된 남다른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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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코비치(바이킹 프레스의 존 스타인벡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는 나에게 있어서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나의 편집자였다. 명편집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이라는 사실은 오직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 동안 코비치는 나의 합작자였고, 나의 양심이었다. 그는 나에게 실력 이상의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나를 만들었다.

 

- 273쪽

 

 

한편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와 작가 존 스타인벡의 일화는 책을 만드는 일 이상으로 서로를 향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간 집필한 세 편의 소설 모두 그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아예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던 존 스타인벡의 네 번째 작품을 파스칼 코비치가 우연히 발견해 출판한 것을 계기로 두 인물의 인연은 시작된다.

 

스타인벡 작품을 깊이 신뢰한 코비치는 그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출판하기 위해 편집일뿐만 아니라 잘 팔릴 수 있도록 세일즈맨이 되어 직접 동분서주한다. 한편으론 스타인벡이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집필할 수 있도록 편지로 진심 어린 신뢰와 응원을 보냈다. 코비치는 스타인벡에게 당신은 반드시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말했고, 스타인벡은 코비치에게 “세계 제일의 출판인”이 자신에게 붙어있다고 말했다는 부분을 보면 서로를 향한 신뢰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후에 존 스타인벡은 정말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그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그의 편집자이자 동료 파스칼 코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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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세르프는 뛰어난 편집자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편집자가 되려면 흥미의 범위가 상당히 넓지 않으면 안 되고, 영어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박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저자가 쓰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협력도 할 수 있다. 편집자가 뛰어난 작품을 인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책을 널리 읽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대중이 어떤 책을 사줄 것인가 하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일지라도 수요가 없으면 출판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 84~85쪽

 

 

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인 베넷 세르프의 생각을 엿보면 편집자가 갖추고 헤아려야 하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편집자는 저마다 독특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넓은 범위의 흥미와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수한 글들 사이에서 뛰어난 글을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며, 결국 책을 읽을 대중의 취향과 관심을 파악해야 한다. 때에 따라선 책이 출간될 시기, 시대까지 파악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편집자에겐 참으로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저 능력이라 부르기엔, 하나하나 그 사람의 인간성, 태도와 깊이 결부되어 있는 것들이다. 앞서 살펴본 캔스 캔필드와 파스칼 코비치의 일화처럼 말이다. 단지 작품을 알아보는 능력만 있어선 책을 출간할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집념이 있어야 한다. 그런 한편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때론 그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명한 신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의 중심에 존재하면서도 그 주인공인 작품, 책이 빛을 받을 수 있도록 물러나 있는 이가 편집자였다.


이런 관점으로 편집자를 이해하니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있었을 보이지 않는 과정들이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해 볼 수 있었다. 이걸 단지 일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었다. 거의 삶을 거쳐 갖춘 그만의 안목과 인간성이 매 순간 투영되는 여정이었다. 편집은 과연 ‘작품’을 만드는 일이란 걸 이러한 생각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본다.


그 여정들을 살펴보고 이렇게 리뷰로 정리하자니, 지금 내가 읽고 감상을 남기고 있는 책의 무게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야 책 한 권에 깃든 무게를 실감한 기분이랄까. 고개를 돌려 꽉 채워진 책꽂이를 바라본다. 저 한 권 한 권이 완성되기 위해 거쳤을 과정과 담고 있을 삶과 시간을 모두 그러 모으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한눈에 담기지 않을 거대한 세계, 그 무엇인가가 펼쳐지지 않을까.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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