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종합심리검사 후기, 덫을 빠져나오는 시작

글 입력 2021.07.0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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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겸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불안함을 잠재우고 싶었다.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쉽게 무너져버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불안함을 수치와 전문성에 맡겨서 해소하고 싶다니.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검사가 많았기 때문에 일부는 미리 메일로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는 건 두 차례. 하루는 온전히 테스트를 하느라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하루가 검사 결과와 상담이 있는 시간이다.

 

테스트를 받으면서 확실히 많은 게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메일로 했던 검사는 그냥 내가 나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들을 매기는 것이라 어렵지 않았다면, 만나서 했던 검사들을 머리를 최대한으로 써야 했다. 오랜만에 머리를 쥐어짜서 열심히 쓴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알다 못해 훤했던 지식은 저 멀리 사라져 있었고, 기름칠이 덜 되어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완연했다. 감정에 남아있는 기억은 그렇게 선명한데, 열심히 반복적으로 집어넣었던 기억들은 그렇게 빨리 사라져 버린다니. 허무하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내 머리엔 뭐가 담겨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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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나와 현저하게 다르진 않았다.

 

김 빠질 수도 있지만 내가 나를 그렇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이 결과에도 반영이 된다는 게 신기했다. 숨기고 싶었던 내용도 은연중에 드러난 것 같아서 놀라기도 했고. 어떤 성격이든, 어떤 특성이든 그게 내 모습이고, 장단점이 각각 있기 때문에 어떤 게 더 좋다고 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특별하지 않은데도 위로가 됐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알고 있었지만, 지내면서 '좋은' 성격과 '좋지 않은' 성격이 구분되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더 사랑받거나, 더 미움받거나. 내게도 늘 단점이라고 여기고 고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큼지막하게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성격의 유형에는 정말 단점이 없는 성격도, 장점이 없는 성격도 없었다. 누구나 완전히 흰 도화지 같을 순 없다. 종이의 색깔과 재질이 이미 다르고, 그 종이를 어떻게 쓰는지도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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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를 받고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청개구리처럼 왠지 나는 그렇게 울고 싶지 않았다. 묵은 감정을 속 시원히 풀어두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처음 만나는 상담사 선생님 앞에서 울었을 때의 머쓱한 부끄러움, 그리고 그보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직업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늘 대체로 슬프고 화나고, 우울한 감정과 눈물을 목도해야 한다는 건 괴롭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직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봤다면, 혹은 내가 누군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면 느껴보았을 그 감정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갖고 있던 생각의 알맹이에 선생님은 성큼성큼 다가와 있었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다가도 순간순간 울컥하는 때도 생겼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는데, 파고들 만큼 파고들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숨겨진 것들이 있었다.

 

일관되지도 못한 모순 덩어리만 그득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그것도 헤쳐보면 가림막이었다. 그저 솔직하지 못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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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중에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사람들과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다를 때마다 기대를 버리는 게 익숙해졌다. 서운할 거 없어. 어차피 다 내 마음 같을 순 없는 일이니까. 누군가를 기다리고, 아낌없이 주는 게 호구로 치부되면서 그렇게 하는 것도, 그렇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내 마음이 당연해져서 무신경한 것도 싫었지만 반면에 남다르게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똑같이 해도 누군가에겐 반응이나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는 게 이상해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마음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작은 것에 상처 받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 게 싫었다. 차라리 상처를 준 사람들이 두 말할 것 없이 나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내게 한 말이나 그 행동이 문제였을 뿐, 그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처럼 그들에게 복수하거나 불행한 걸 보게 된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을 건 명백한데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헛헛했다. 당신이 그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과 그렇다고 불행을 바라는 건 아닌 마음이 공존한다.

 

이래서 권선징악과 복수물이 흥하는 건가? 스테디셀러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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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서 먼지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좀 더 우울하게 풀어보자면, 누구 하나 잘못한 적 없는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누구나 살아있으면서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가 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주는 게 필연적이라면 그게 지옥 같기도 하지만 이미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보다 절대적인 존재로 상정된 신마저도 누군가는 믿지 않고, 누군가는 저주하고, 누군가는 숭배하며, 누군가는 필요할 때만 찾는 걸 보면 위안이 될 수 있으려나.


무서웠던 건 나 역시 누군가에겐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채 나는 아프다 혹은 나도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건 괜찮은 것일까. 많은 것들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만큼은 쉽게 그럴 수 있다고 하기 힘들었다.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정말 상처를 주는 걸 막을 순 없다. 내가 아팠던 만큼이나 그 이상 누군가 나로 인해 아프다면 그것도 죄책감이 들만한 일이니까. 그게 싫어서 거리를 두게 된다. 너무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이 찾아온다. 알람이 켜진다. 이상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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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믿는 일은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문을 열었다가, 믿음이 무너지면 멀리 떨어져, 벽을 세운다.

 

한참 문을 열지 않다가, 다시 또 이번엔 다르겠지 하면서 문을 열어보는 일. 같은 일이 쌓여갈 때마다 그게 내 잘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실수를 반복할수록 커져서 평생을 이러겠지 싶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적도 많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나본 것도 아니고, 내가 달라져 있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혼자 돌아보는 시간이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런 걱정들은 이전의 상처 때문이란 걸 알게 됐다.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고, 여전히 겁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바보처럼 내려놓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을 거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를 믿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믿음은 생기는 건 어렵고 무너지는 건 쉽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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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불공평하거나 불행하다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아서. 불행과 행복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을 것 같지만 누군가는 이상하리만치 불행이 따르거나 일이 술술 풀린다.

 

누구나 반드시 노력한 만큼 성공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스스로도 뿌듯하고 다른 사람들도 알아차리게 되는 과정이 꼭 지켜지진 않는다. 문제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면 정답이 나올 수 있지만, 인생에는 출제자가 있긴 한 걸까?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는 싫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다. 인생이 원래부터 그렇다거나 사람이 원래부터 그런 건 없다. 그런 성향과 확률이 있었다고 해도 선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내 성향과 성격은 어떤 쪽으로 기울어있지만, 내가 그걸 완전히 따라야만 하는 건 아니다.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고 특성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어떤 것을 채워 넣을지는 계속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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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검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마음만 먹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시작해보았다.

 

새로운 걸 배워보기로 했고, 하다가 놓아버린 것을 다시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마음먹고 청소를 했다. 낡은 책장과 책상을 옮기고, 옷과 책을 큼지막한 봉투마다 담았다. 많은 걸 덜고 나니 이 방이 이렇게 넓은 곳이었나 싶다. 이사와 비슷하게 청소를 한 건 까마득하게 오래전 일이다.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결국 마음에 달렸다. 쓸모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쓸모가 없어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 시간이 지나 그걸 버리게 되면, 마치 물건에도 감정이 있는 양 버려진다는 걸 속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물론 생각보단 내겐 설득력이 있었다.


이상하게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중요했고 아직까지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것들이었는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잔뜩 버리고 비우고 싶었다. 버리고 나니 왜 진작 버리지 못했을까 싶었다. 하기 전엔 왜 그렇게 고민했을까 싶을까 싶은 일 역시 떠올랐다. 앞으로도 늘 고민이 많겠지만, 진작할 걸 그랬다 싶은 이 느낌을 기억하면 고민이 좀 더 짧아질 수 있기를.


한 번쯤 받아보길 잘했다 싶었던 심리 검사를 마치고 한차례의 상담이 시작이라며 추천받은 책은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라는 책. 사람들마다 벗어나기 힘든 덫이 있고, 나 역시 여기서 다루고 있는 덫을 몇 개 갖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태까지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나와 날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 여정이 두렵지만은 않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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