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혼이야기(2019) [영화]

글 입력 2021.06.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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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앙세’의 반대말이 뭐죠? 할리우드로 넘어 온 니콜은 드라마 매니저 캐럴에게 이렇게 묻는다.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반대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의 과정을 담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맺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 중 결혼이라는 관계는 다른 관계들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다. 사적인 사랑이 공적인 법과 제도를 통해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다른 관계의 형태들과 달리, 사적인 문제와 같은 책임과 의무 등을 두고 이혼 소송을 걸 수 있으며 개인의 불성실한 행동들은 일종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결혼이 실감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혼을 하는 동안일 수도 있겠다.

 

감정의 무게는 같기 어려워 관계는 한 쪽의 불균형을 통해 균형이 이뤄지기 쉽다. 니콜과 찰리의 관계에서 먼저 균형을 잃게 된 건 니콜이었고 그러한 원인에는 결혼이라는 공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니콜과 찰리가 취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니콜이 변호사 노라를 처음 찾아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털어놓을 때, 우리는 니콜이 결혼 생활 동안 사소한 취향들에서부터 인격적 존재로서 자신을 얼마나 잃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영화 후반부 찰리와 니콜이 다투는 장면에서 찰리는 니콜에게 자신이 결혼 생활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유혹들과 기회를 얼마나 참고 거부했는지 역설한다. 한 명은 잃었고 한 명은 욕심내지 않은 것이다.

 

결혼을 대했던 둘의 방식은 이러한 점에서 달랐고 불공평했다. 니콜은 균형을 되찾기 위해 찰리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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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절차를 밟으며 니콜과 찰리는 각자의 삶에서 상대를 정리해나가는데, 이들 감정의 밀도는 영화의 촬영과 쇼트 구성을 통해 차분히 쌓여간다. 마치 관계를 은유하고 구획짓는 듯한 인물의 쇼트들, 클로즈업 쇼트와 풀 쇼트의 구성 등이 감정적 밀도를 높인다.

 

각자의 주관적 경험들을 토대로 그들의 결혼생활을 되짚어보는 것이 이혼 절차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뱉어내는 그들의 얼굴들이 중요하므로 영화는 공간의 전경보다 인물을 중심으로 따라간다. 인물의 얼굴들로 씬이 전환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찰리와 니콜에게는 카메라 줌을 통해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린다.

 

찰리가 이혼 후 being alive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나 니콜이 노라를 처음만나 토해내듯 결혼생활을 얘기하는 장면 모두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가며 다가가 끊지 않고 담아낸다.

 

반면 이러한 니콜과 찰리의 얼굴 쇼트는 연이어 붙으면서 관계의 균열을 강조하기도 한다. 풀 파티에서 니콜이 찰리와 전화를 하며 싸우는 장면에서 니콜은 오른 쪽을, 찰리는 왼쪽을 바라보는 단독 쇼트들을 연결해 어긋나는 방향성을 강조해내기도 하고 찰리가 니콜의 집 대문을 수리하고 떠날 때 같은 방향으로 대문을 닫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쇼트들에서도 찰리와 니콜 사이 커지는 거리감이 시각적으로 잘 보여지고 있다.

 

마지막, 찰리와 니콜이 이혼 합의 서류에 사인을 하는 장면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찰리와 니콜의 얼굴 쇼트에 뒤이어 가상선을 넘는 찰리의 얼굴 쇼트가 한 번 더 붙음으로써 이제 찰리와 니콜이 마치 평행선의 새로운 위치에 자리함을 은유하는 듯하다.

 

영화 속 니콜과 찰리의 얼굴들은 각자의 진심을 표방하며 서로 격렬히 대립하다 이혼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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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은 결국 공간을 다시 되찾는다. 뉴욕과 대조해 엘에이의 장점으로 영화에서 계속 언급된 공간(space)의 문제는 저변에 깔린 니콜의 문제였을 수 있다. 작아진 니콜이 다시 본래 자신의 크기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했을테니 말이다.

 

니콜은 이제 자신의 크기를 되찾은 듯 보이고 찰리는 자신이 부가적으로 누렸던 것을 포기했으므로 둘의 크기는 비슷해진 듯하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더 나아간다. <결혼이야기>는 유효기간이 끝난 관계가 당사자와 주변인물들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관계는 종결되었을지라도 법적 책임 아래에서 헨리를 중심으로 연대하며 서로는 사랑과 이별을 간직한 추억 그 자체로 곁에 머문다. 헨리를 안은 찰리의 뒤에서 니콜이 포옹을 하는 모습은 이러한 관계가 집약되어 보인다.

 

지극히 일상적이었던 하나의 관계가 끝난 후의 모습은 또 하나의 일상적 삶으로 이어지고 이 지점까지 집요하게 인물들을 따라가는 영화의 태도는 <결혼이야기>가 성취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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