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가 아닌 나를 위한 용서 -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글 입력 2021.06.1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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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엄마와 나눈 대화가 아련히 떠오른다. “엄마, 나는 이렇게 누워서 엄마랑 대화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 “엄마도 그래. 제일 소중해” “근데 엄마 있잖아 나 엄마 없이 어떻게 살지?” “그때가 되면 다 살아져. 그러니까 그전에 네가 더 단단해져야지. 힘을 길러야지”

 

힘을 길러야지라는 말은 곁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한들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나를 따듯하게 감싸고 있던 작은 세상이 깨져버려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 예상도 없이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그 누군가를 잃는다면, 회복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아픔을 박아준 세상이 원망스러워 서서히 일상을 포기하고야 만다. 여기 그런 상황에 직면한 라허라는 소녀가 있다.

 

3년 전, 라허의 엄마가 죽었다. 그 이후 아빠와 단둘이 살며 회색빛과도 같은 일상을 꾸역꾸역 버텨내고야 만다. 수학 성적은 낙제를 찍고 친구들에게 대놓고 심한 왕따를 당한다. 어린 나이에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 버거웠던 라허는 온몸에 생기를 잃는다. 영화 속에서 엄마가 존재했을 때 느껴지는 행복과 없어지고 나서 불안과 상실에 대한 대비를 통해 그녀의 온 기운이 푸석하고 건조하다는 것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점차 친구들과 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닫는다. 엄마를 잃고 살아가면서 아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은 증폭됐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시고 진정성 있게 딸에게 보내는 관심이 없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데 반찬으로 계란을 만들어 주고, 그저 부모라는 역할로써 챙겨야 하는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서만 소통할 뿐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아무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으로 지내던 어느 날 자신의 엄마를 죽인 소년 유레이를 보게 된다. 출소하기까지 더 많은 기간이 남았는데 벌써 사회에 나온 소년을 미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슬픔의 벼랑 끝까지 파묻혀 있는 자신과 달리 유레이는 친구들과 해맑게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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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허가 유레이를 옆에서 계속 따라다닌 목적은 크게 하나였을 것이다. 나의 엄마를 죽인 까닭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따져보기라도 해보는 심정. 그러나 그와 대화를 해보니 부드러운 어투와 더불어 정이 많아 자신을 계속 챙겨주는 그 앞에서 말을 꺼내긴 쉽지 않았을 터이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살인 충동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격분한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크게 애썼을 것이다.

 

그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유레이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넉넉한 용돈을 받는 것을 보며 가정환경 또한 따뜻하고 안락한 집안의 배경이 있을 것이라 유추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재혼한 엄마의 남편이 자신을 싫어한 탓에 크게 눈칫밥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살지도 않고 심히 누추한 원룸에서 혼자 살며 버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동정심을 보낼 처지는 아닌듯하다.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이미 질렀고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에 아직 많이 어린 라허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유를 한다. 짊어지고 가기 너무 힘든 피해를 받았지만, 이성을 잡고 일어나서 꿋꿋이 살아나가야 한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려운 세상에서 자신 또한 그와 같은 범죄자가 될 순 없었다. 이에 대해 자허와 유레이의 대화에서 프랑스 영화를 빗대어 인생에서 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대한 선택에 대한 묘사를 한다.

 

 

한 청년이 기차를 타게 되는데 세 가지 경우를 보여줘.

 

첫째, 청년이 기차를 탔고 한 당원을 만나서 정부에 취직한다.

둘째, 청년이 기차를 놓쳤고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감옥에 들어간다.

셋째, 청년이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동창과 재회하게 됐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이 주사위 굴리기 같아.

 

  

3년 전 유레이는 잘못된 판단으로 선택한 인생에 대해 후회를 한다. 라허의 엄마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길 끝으로 도망쳤다면 지금보단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며 자책한다. 그러나 반성하고 자책한다고 해서 절대로 달라지는 건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른 당사자며 가해자로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살인자라는 프레임을 달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 또 다른 선택은 라허에게 주어진다. 유레이를 죽일지 용서할지는 그녀의 몫이다. 급한 일이라며 강가로 유레이를 불러낸다. 라허는 유레이가 도착하기 전 강가로 걸어 들어간다. 라허를 목격한 유레이는 그녀를 살리고자 강 안으로 들어가고 라허는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려고 한다. 살인의 코앞까지 온 선택의 기로에서 라허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몇 분의 격렬한 고군분투 끝에 그녀는 유레이를 살리고자 그를 놓아준다.

 

엄마의 복수를 왜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또 다른 네가 되기 싫어.”라고 답한다. 결과적으로 라허는 유레이를 용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용서는 자신을 위해 용서한 현명한 선택이다. 짧은 생각으로 자칫 그녀도 살인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용서를 통해 과거의 어두운 이면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정리하고, 내면에 묵혀있던 쓰라린 아픔을 치유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온다.

 

지난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라허는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모든 감정들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이는 상대방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한 용서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라허가 혼자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아픔으로 물들어 있던 여린 소녀가 비로소 혼자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강인함을 나타낸다. 엄마가 죽기 전, 함께 왔던 놀이공원에서 소녀는 무서워서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했다. 피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떨지 않고 의젓하게 탈 수 있다. 라허는 대단히 담담해졌고 강인해졌으며 홀로 인생의 긴 롤러코스터를 탈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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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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