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 - 시라노 드 베르쥬락

자유로운 로맨티시스트 시라노
글 입력 2021.06.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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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에서 골목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일반 주택가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나온다. 검은 외관과 대비되는 빨간 내부의 안똔체홉극장은 설렘을 가득 주며 관객을 맞이한다.

 

원색의 주황색으로 뒤덮인 공간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티켓 검수원과 함께 아늑한 극장의 로비가 나타난다. 진한 커피향이 가득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관객들의 여유로운 수다 소리는 여느 카페와 같은 느낌이었다.

 



관객석이 곧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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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체온을 측정하고 로비에서 티켓을 나눠줬던 티켓 검수원은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들의 표를 걷으며 티켓 검수원 그대로 등장했다.

 

연극을 보러 온 다른 등장인물은 관객석의 깊숙이까지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려 관객과 같이 대기했다. 관객석의 안쪽까지 앉아 무대 위의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씬에서는 관객석과 무대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지고 공연 속에서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지며 함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극장 못지않은 감동


 

대학로 연극을 수년 동안 봐오면서 소극장, 대극장, 흥행작, 최신작 할 것 없이 많은 연극을 봐왔다. 소극장의 연극들은 대체로 소극장만의 현장감 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대극장 공연같이 화려한 무대장치나 큰 스케일에서 받을 수 있는 감동은 많이 받지 못했고 그런 기대를 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소극장 공연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화려한 무대장치 없이도 대극장 공연을 본 것 같이 큰 설렘을 받은 연극이었다.

 

소극장에서 인터미션을 갖는 연극은 처음 관람해보았다. 원작 희곡에 따라 총 5막을 모두 공연하며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공연하는 호흡이 긴 공연이었다. 1~3막을 100분 동안 공연하고 15분간의 인터미션을 가진 후 4~5막을 60분을 공연시간으로 가진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앉아서 관람했음에도 몰입이 깨지질 않았다. 지루할 틈이 없는 훌륭한 작품성, 그리고 영화관 좌석을 배치하여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고 바리스타의 커피를 준비해놓는 등 관객을 배려한 것들 덕이었다.

 

고전의 힘이 느껴졌다. 프랑스 고전 희극이 왜 지금까지 명성이 이어져오는지 알 것 같았다. 흥미로운 서사는 다음에 등장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어떤 놀라운 내용이 나올지 기대감을 갖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또한 코미디 희극답게 유머러스한 대본을 비롯해 작은 리액션까지 코미디를 곳곳에 첨가하여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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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의 이유청 배우, 록산의 천현진 배우, 라그노의 김원경 등 코믹과 감동을 넘나들었다.

 

특히 시라노 역을 맡은 조환 배우의 연기력은 감탄을 자아내었다. 조환 배우가 연기한 시라노는 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매우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넘쳤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코믹하면서 평생 짝사랑을 했던 용감한 시인이라는 독창적인 캐릭터였다.

 

시라노는 큰 코를 가져 코스크를 쓸 정도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데 어떤 이가 시라노의 코가 크다고 놀린다. 하지만 시라노는 주눅 들기는커녕 자신의 코를 놀리는데 단순한 단어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면서 말로 상대를 핍박한다.

 

그는 우아하게, 시적으로, 공격적으로 등등 다양한 표현으로 자신의 코를 설명하는 10가지의 모습을 말한다. 10가지의 각양각색의 연기와 어느새 시작된 칼싸움과 함께 엄청난 대사량이 몰아쳤다. 재치 있는 대사와 생생하고 코믹한 연기는 희열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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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로맨티시스트 시라노


 

시라노는 록시를 몰래 사랑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록시는 크리스티앙에게 첫눈에 반했고, 시라노는 둘을 이어주기 위해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편지를 쓴다.

 

시라노는 부귀영화와 명예를 좇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귀족인 '드 기슈'는 시라노를  굽히게 하려 회유와 협박을 일삼지만 시라노는 드뷔시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귀족의 부패한 면과 모순적인 면을 꼬집어 세상에 알리고 비판을 더 거세게 한다. 원치 않는 권력의 압박에 저항하며 발길 닿는 대로 거닐며 예술 하며 사는 삶, 진정으로 자유롭게 사는 삶을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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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의 남편이 된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시라노는 전쟁터에서까지 목숨 걸며 편지를 쓴다. 그리고 결국 록시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한다. 록시가 인간 크리스티앙보다 시라노가 쓴 연서를 더 사랑하게 된 것이다.

 

외모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믿어버리던 세속적인 그녀가 '외모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영혼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라노는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대필 편지에 대한 진실은 시라노가 죽기 직전에서야 밝혀진다. 죽기 전에 사실이 밝혀지고 마음을 전달했을 때, 그녀의 품에서 잠들었다.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극 전체를 관통하여 제시하는 가치가 있다. "재치와 유머"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웃음은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시라노는 웃음과 농담으로 상황을 헤쳐나간다.

 

시라노가 임종을 맞을 때 원작에서는 내가 죽을 때 가져가야 할 것은 '깃털 장식'이라고 했다. 극의 마무리조차 웃음을 잃지 않고 가져간다. 이 연극에서는 몸을 못 가누던 시라노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빙그레 웃으며 "자존심!" 이란 말을 던지고 풀썩 쓰러진다. 시라노는 죽음 앞에서도 농담을 할 수 있는 우아한 영웅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을 뛰게 하는 작품을 만났다. 기존에 봐오던 대학로 연극과는 다른 결의 연극이라 무척 신선했다. 고전의 아름다움, 코미디, 언어적 매력,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시라노 드 베르쥬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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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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