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왜 무(無) 라벨 생수병이죠?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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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을 하나 뽑자면 물이 있다. 물은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 우리 집은 때때로 보리차 티백을 넣어 끓인 물을 마시거나, 대개는 시중에 판매되는 생수를 사서 마신다. 외출 시에는 텀블러에 물을 꼭 챙겨 마시지만, 불가피한 상황의 경우 가까운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마시기도 한다.
편의점에는 제주삼다수, 백산수, 아이시스 등 여러 브랜드의 생수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물도 입맛 따라 취향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생수병을 고를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원래 마시던 익숙하고 친숙한 브랜드 또는 가장 저렴한 단가의 제품을 선택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수병을 고르는 기준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무(無) 라벨 생수병이다.
말 그대로 라벨이 없는 생수병을 말한다. 처음 우연히 라벨이 없는 생수병을 보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제품이 완성되다 만 듯한 날 것의 느낌이 들어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무라벨 사용 목적을 이해하고 보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은 무라벨 생수병이 대세라고 하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라벨 생수병, 시작은?
무라벨 생수병 행보의 시작은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 8.0'이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011년 8월 선보인 ‘아이시스 8.0’의 브랜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자 소비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여 지난해 1월부터 국내 생수 브랜드 최초로 무라벨 생수 출시 즉, 페트병 몸체에 라벨을 과감히 없앤 것이다.
대신, 페트병 몸체에 브랜드 로고를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그리고 기존 라벨에 명시되어 있던 상품명과 의무표시사항 등은 뚜껑 및 묶음 포장 외면에 표기했다. 그렇게 처음 무라벨의 형태로 탄생한 제품이 ‘아이시스 8.0 ECO 1.5l’이다.
이후 6월에는 용량 다양화 및 패키지 리뉴얼을 진행하여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대중적인 생수 용량인 500ml, 2L 제품이 추가로 출시되기도 했다. 덧붙여, 올해 2월에는 페트병 마개에 부착된 라벨도 없앤 '완전 무라벨 제품'을 선보이면서 비닐 폐기물이 전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대신, 소비자가 아이시스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도록 주 컬러인 분홍색과 파란색을 뚜껑색으로 활용하고 로고도 크게 노출시켰다.
회사 측은 “아이시스 ECO는 제품을 다 마신 후 라벨을 떼어내는 번거로움과 라벨 사용량은 줄이고, 페트병 재활용 효율은 높인 친환경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지난 한 해 해당 제품군은 약 1010만개가 판매됐다고 한다.
이는 라벨 포장재 또한 1010만 개 절감됐다는 이야기다. 무게로 따지만 6.8톤, 가로로 이어붙이면 서울과 부산을 왕복으로 4번 이상 이동할 수 있는 길이가 나온다. 구체적인 수치와 비유를 들어 확인해보니, 제품 하나 바뀐 것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냈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아이시스 8.0 ECO 라인은 국내 최초 무라벨 생수로서 '2020년 자원순환 착한 포장 공모전 환경부장관상 최우수상' '2020년 우수 디자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제14회 대한민국 패키징 대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상' 등 다양한 수상 성과를 도출해 내며 포장재 재질구조 평가에서는 최고 등급인 최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왜 하필 무라벨 생수병인데?
'생수병에 라벨이 사라졌다.' 이는 비단 생수에서만 벌어지는 변화가 아니다. 그 외에도 탄산수, 사이다, 커피 등 다양한 음용 제품에서도 '무라벨'의 행보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제주개발공사가 무라벨 삼다수를 출시한다고 밝힌 데 이어 농심도 올 상반기 내에 라벨 없는 백산수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3대 생수가 모두 무라벨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편의점 업계 GS리테일은 곧 있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친환경 무라벨 PB 생수 상품을 확대한다고 하니 '친환경 상품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브랜드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라벨을 버리기로 한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정말 과감한 시도이자 노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하필 무라벨이었을까를 파헤쳐 본다면, 바로 환경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무라벨을 도입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소비자의 측면에서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MZ 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커머스 마케팅 기업 크리테오의 조사에 따르면 MZ 세대의 52%는 친환경 및 비건 등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미닝아웃(Meaning out)'소비를 한다고 답했다. 미닝아웃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신념을 알린다. 사람들 사이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다소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는 것이다.두 번째, 기업의 측면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이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각 영어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ESG는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 구조 개선을 중시해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일종의 기업 경영 철학을 말한다. 특히 환경과 사회적 가치 공정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면서 ESG 경영은 일부의 전략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경영 받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 번째, 무라벨 생수 출시 통해 간편한 분리배출 및 수거를 돕는 것은 물론, 현재 국내에서 수거되는 폐페트병의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전국 공동주택에서 시행되고 있는 환경부의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 중 '투명 페트병 별 분리배출 의무화 시행'과도 연관이 깊다. 투명 페트병 배출을 위해서는 페트병을 감싸고 있는 라벨을 제거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한데, 라벨이 없으면 음용 후 페트병만 간편하게 분리배출하면 되기 때문에 편의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세 가지 이유를 한 데 묶어 모두 공통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식음료 및 유통업계에서는 무라벨 생수 등 친환경 제품을 늘리고, 소비자는 그런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한 방침에 더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모두 각자의 측면에서 친환경 소비 생태계 구축에 힘을 쓰고 있는 셈이다.
무라벨 생수병이 던지는 메시지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환경부와 라벨 없는 투명 페트병 사용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 출시를 약속하는 것으로 보아 환경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유통업계가 친환경 소비 생태계 구축에 탄력을 가하기 위해 무라벨 제품 만들기와 같은 실천을 이어 나가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긍정적인 행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지금 시대이기 때문에 통할 수 있는 제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 말이다. 소비자의 가치소비와 편의성에 손을 들어주었을 뿐인데 마침 환경을 위한 좋은 행동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물론, 지금의 무라벨 행보를 넘어서 어떻게 본질적인 측면에서 환경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테지만 말이다.
결국 이 모든 변화가 환경을 생각하는 분위기와 움직임 때문에 생겨난 것도 있지만 '분리배출 시 소비자의 편의성'을 생각한 부분도 함께 내포되어 있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무라벨의 특징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함은 감출 수 없었다. 누구나 환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 아래에는 사람들이 제대로 페트병 분리배출을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변화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변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들여다 보고 페트병도 라벨도 그것들의 본질적인 쓰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수병의 형태는 무라벨로 바뀌었고, 이는 단순히 제품의 변화를 넘어서 세상을 향해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발 분리수거 좀 잘 해달라고. 제대로 환경을 좀 생각해 달라고 말이다.
정말 환경을 위한다면 애초에 페트병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페트병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사용한 페트병이 온전한 모습으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방식으로 분리배출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잘 쓰고 잘 버릴 의무가 있다.
[신송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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