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엔딩 크레딧을 읽는 사람 [영화]

글 입력 2021.05.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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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영상이 있는 마블영화를 제외하고, 영화가 끝나 새까만 스크린 위로 흰색의 글자들이 뜨기 시작하면 나는 곧장 재빠르게 짐을 챙긴다.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화장실을 선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성격이 급해서라고 말할 수도 없다. 평소에 여유롭고 게으른 편이니까. 아니면 극장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사람에겐 형벌을 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 퀘스트 따위 없어도 얕고 넓적한 모양의 계단들을 밟고 내려오는 발걸음은 늘 황급하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러 갔다가 불이 켜지자마자 남은 음료수를 들고 일어서는 나를 친구가 도로 앉혔다. 뭐가 그리 급하냐고 묻는 말에 할 말이 없어 의자에 주저앉아 빨대 끝을 물었다. 영화 다 끝났고 볼 게 없으니까 그렇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니었다. 나조차도 진짜 이유를 몰랐지만, 괜한 머쓱함에 떠오르는 변명을 아무렇게나 이어 붙였다. 엔딩 크레딧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영화관을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이곤 거의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스크린을 쳐다보는 친구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크레딧을 읽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해. 툭 하고 물으니 여운을 즐기는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귓가로 울려 퍼지는 메인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발목을 까딱거렸다. 나는 네가 저기 나오는 이름들 읽고 있는 줄 알았어. 다 읽는 사람이 있긴 할까. 친구는 외투를 챙기며 살짝 건성으로 대꾸했다. 화면 속 이름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진지한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좌석에 몸을 한껏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그러게. 없지 않을까?

 


[크기변환]end credits.png

 

 

그럼 그것들은 누가 읽어주나. 짧지 않은 시간의 노고에 대해 작게 경의를 표하는 일은 결국 크레딧 목록 속 당사자들의 몫인가? 극장에 갈 수 없는 요즈음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답지 않게 여유를 부리며 침대 헤드에 기대 <줄리 & 줄리아>를 감상한 날이었다. 마지막 씬이 페이드 아웃된 후에도 창을 끄지 않았다. 짤막한 문장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소개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줄리는 2021년에도 남편과 퀸즈에 살고 있나? 외워버린 문장을 올해에 맞게 고쳐 중얼거리며 잘 준비를 했다. 이불을 당겨 덮는 사이 크레딧이 나오기 시작했다. 낯선 영어 대문자들이 정갈한 모양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요, 저는요, 저는 말이죠···. 그마저도 화면 밑에 커다랗게 뜨는 추천 콘텐츠 창에 삼 분의 일 이상이 가려졌다. 갑자기 넷플릭스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다 본 적도 없지만, 이렇게 설정을 해 놓으면 누가 크레딧을 끝까지 읽나 싶었다. 화면도 다 가려 놓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매번 스킵 버튼이나 누르는 주제에 그랬다.

 

그래서 어떤 반항심리처럼 가만히 앉아 줄줄이 뜨는 캐스팅 및 스태프 목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크레딧은 섬세했다. 화면에 십 초도 채 등장하지 않은 듯한 캐릭터들까지 낱낱이 등장했다. 결혼식 장면에서 뮤지션들이 다섯 명이나 등장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고, ‘콥샐러드 웨이터’ 같이 핵심만 담은 간략한 캐릭터 명에 웃음이 터졌다. 요리 영화니 당연히 요리 컨설턴트도 섭외했겠지. 메릴 스트립은 의상이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따로 있네. 주차 코디네이터도 있다고? 혼잣말은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튀었다.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나는 오초에 한 번꼴로 스페이스 바를 누르며 크레딧을 끝까지 읽었다. 영화 제작사의 큼지막한 로고가 화면을 뒤덮고 이내 완전히 영상이 끝났다. 아무도 누락하지 않은 디테일함이 퍽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지켜보는 일 또한. 이것은 아주 세밀한 기록이자 쉽게 놓치기 일쑤인 것들을 향해 표하는 경의다. 마지막을 장식할 만한 다정함이다. 나는 잠깐동안 지금껏 놓친 엔딩 크레딧의 개수를 가늠해보려는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했다. 조금 슬펐다.

 

 

[크기변환]scary-movie.jpg

 

 

냄비를 휘적거리는 인영 옆에 서서 엔딩 크레딧은 사실 콩글리시고, 엔드 크레딧 혹은 클로징 크레딧이 올바른 명칭이라고 대뜸 연설을 시작했다. 그래도 여긴 한국이니까 엔딩 크레딧이라고 부르는 게 아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 대꾸가 실종되었지만 개의치 않고 또 말을 걸었다. 엄마는 영화 끝나고 크레딧 읽어? 응 읽지.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놀라기보다는 의심이 앞섰다. 우리 영화 볼 때 엄마가 크레딧 읽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나 항상 읽는데? 곧장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군. 나만 마지막 5분의 시간에 소홀한 채 다소 짧은 러닝타임을 즐겼던 거군.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다고 덧붙이는 말에도 마음 어딘가에서 쌉싸름한 맛이 났다.

 

이유 모를 일말의 가책을 느꼈다. 냄비에서 훈김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걸 가만히 지켜보며 다른 종류의 열기를 떠올렸다. 복작거리는 현장의 아지랑이 같은 소음과 땀 냄새를 상상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다 덮어 두고 좋은 것만 골라서 본 느낌이었다. 크레딧을 되도록 끝까지 봐주는 것이 제작자에 대한 예의라고 하더라.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킹스맨도 그랬는데. 그동안 지나치게 가벼웠던 내 엉덩이가 못내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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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하나를 생산해내는 일에도 수많은 손길이 관여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을 감싼 옷과 깔고 앉은 방석부터 벽지와 장롱과 방과 아파트까지. 모든 것들이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누적된 손과 땀의 무게가 몸 위에 얹히는 듯해 숨이 잠깐 막힌다. 그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자들. 빛을 등진 채 자신의 공로를 소리치지 않고 품고 있는 사람들. 조그만 성취에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아지처럼 서성거리는 사람은, 그 조용한 겸허함 앞에서 갑자기 말을 잃는다.

 

남모르는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무장해제되기 쉽다. 그저 알아주기만 해도 내장이 기분 좋게 비비 꼬인다. 별것도 아닌 말들이 진짜 별이 되는 순간과 잠깐 올라왔다 금방 사라지는 엄지손가락의 사랑스러움, 소박한 박수 소리에도 급류에 휩쓸리는 듯한 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건조하고 메마른 공기에 더 익숙하다. 그런 섬세함을 겸비한 이들은 찾기 어려우므로. 그래서 구석까지도 꼼꼼하게 체크할 수 있는 사람을 동경한다. 흠뻑 젖기를 바라면서도 늘 버석한 눈길로 세상을 보는, 성글고 무감한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괴롭다. 이상과 실제는 다르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크레딧의 무게를 알았다면 최선을 다해 앉아있었을 거라며 벌건 귓바퀴를 느리게 매만진다.

 

수천 시간의 노력들이 5분 동안이나마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73년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청춘낙서(American Graffiti)>를 기점으로 한다. 제작비가 부족했던 탓에 감사의 의미로 전 배우 및 스태프들의 이름을 넣은 것이 관례가 되었다. 5분. 그 짧은 크레딧 속엔 축약된 가치들이 너무나 많다. 잠시 앉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크레딧의 끝을, 마지막의 진짜 마지막을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다니. 때론 지켜보는 일이 알아주는 것이 되고, 알아주는 것은 헌정하는 행위가 된다. 헌정은 인정과 감사와 애정이 된다. 그 따뜻함을 전하는 시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퍽 낭만적으로 여겨진다.

 

마냥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테다. 모든 것은 언젠가 엔딩 크레딧을 내려보내기 마련이니까. 이제는 오분 동안 고스란히 크레딧을 살피기로 약속한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써 내려갈 내 삶의 크레딧을 함께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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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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