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감각을 교란시켜 보겠습니다 - 마르첼로 바렌기展

글 입력 2021.05.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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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미술 학원에서 드로잉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학원 선생님은 사과 하나를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더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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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plash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똑같이 그려보세요"
 

 

그 순간만큼은 사과가 주인공이었다. 최대한 똑같은 사과의 형태, 색깔, 명암을 종이 위에 담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사과 하나만 뚫어지게 본 것도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관찰이 중요했고, 그 방법만이 종이 위에 사과의 형태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 정말 사과 같은 사과의 모습으로 말이다.

 

여기, 눈앞에 있는 사과를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그려낼 수 있는 예술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바르첼로 바렌기.

 

마르첼로 바렌기는 이탈리아의 극사실주의 화가이자 유명 유튜버이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 이상의 독보적인 그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특히, 이번 <마르첼로 바렌기展- IT'S LIFE>는 국내에서 선보이는 첫 단독 전시회로 전시 작품 모두 전 세계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시는 페인팅, 드로잉, 리 프로덕션, 카툰 등 총 10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림만 있는 게 아니라, 그림 속에 그려진 실제 사물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실물과 그림을 대조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몇 가지 마르첼로 바렌기만의 매력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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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다



전시를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질문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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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한 번도 케첩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다. 어떤 포인트에서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건지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종이 위에 그려진 케첩으로 대신 답한다. 두 눈으로 직접 본 케첩과 너무도 닮았다.

 

 
아무리 재미없는 물체라도
그만의 정점은 있다.
 


마르첼로 바렌기 작품의 주요 특징은 실제로 우리가 주변에서 볼 법한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사물에는 각자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이 있다 믿었다. 여기서 사물의 '아름다움'이란,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의 순수함을 말한다.

 

다만, 그는 우리가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 주목한다. 요컨대, 주름, 지문, 찌그러짐, 눌린 자국, 생활 흠집, 기포, 그림자, 반사된 모습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작품을 실제보다 더 리얼하게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주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모든 작품들이 사물의 가진 아름다움, 그만의 정점을 극대화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특정한 작품이 기억난다기 보다, 각각의 작품 속에서 '사실감'을 구현해 내기 위해 '빛과 그림자'의 정도를 신경 쓴 부분이라든지, 앞서 말한 사소한 포인트들의 잔상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워낙 그런 작은 부분들에 더 가까이,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봤던 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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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목표는 사진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불완전하지만 실제 사물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이게끔 보는 이들의 감각기관을 교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림과 실제 사물을 비교해 보면서 시각적으로 혼란을 겪는다. 때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사진과 바르첼로 바렌기의 그림 사이의 정확도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더 실제 같을까를 비교하기보다 일상 속 사물에서 보지 못했던 사소한 흔적들에 주목하게 됐다. 다른 자극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그림에서 보이는 그 사소한 흔적들을 찾아 실제 사물을 요리조리 집중하게 됐다. 이는 마르첼로 바렌기가 얼마나 사물을 면밀하게 관찰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작품에는 멀리서 보았을 때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의 특징들을 종이 위에 한데 모아 보여준다.

 

어쩌면 바르첼로 바렌기는 치밀한 관찰로 인해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서 더 예민하게 사물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일찍 알게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볼 수 없었던 일상 속 사물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니, 참 멋졌다.

 

전시의 부제가 'IT'S LIFE' 인 것도,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게 이어진다. 일상 속 사물을 아주 잘 들여다보면, 그것들로부터 사소하지만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그의 작업과정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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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르첼로 바렌기 인스타그램

 

 

그는 2013년에 유튜브 채널을 열고 음료수 캔, 과일의 조각 같은 일상적 사물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동영상을 매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통해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별다른 기대나 야심 없이 단지 그의 열정을 자유롭게 일반인들과 공유하면서 아주 쉽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업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개설 1년 만에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했으며, 현재는 252만 명의 구독자에, 비디오는 약 3억 6천뷰를 기록했다.

 

지금의 마르첼로 바렌기를 있게 한 것은 당연히 그의 그림 실력과 열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 그의 작업 과정을 담은 유튜브의 영상도 한몫한다. 마르첼로 바렌기는 작업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거짓도 리터치도 없다. 그저 정확한 톤을 찾기까지 계속 여러 층으로 나누어 칠하며 코팅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전시장에서도 보석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처음 스케치부터 채색 단계를 거쳐 작품 완성까지 배속이지만 아주 찬찬히 그리고 생생하게 실제 작업 과정을 조명한다.

 

분명 쉽지 않아 보였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고된 과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식, 관찰을 통해 느낀 사물의 아름다움을 종이 위에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다시 그 모든 과정을 사람들에게 꾸밈없이 보여주는 방식까지 더해졌을 때 마르첼로 바렌기의 예술 세계의 진가가 보였다. 모두 솔직하고 대범하고 그래서 매력 있었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아티스트, 마르첼로 바렌기



마르첼로 바렌기는 "올바른 예술은 없고 잘못된 예술도 없으며, 아티스트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예술을 향한 본인만의 확실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눈길이 닿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으며, 진득한 노력으로 차곡차곡 그가 느낀 아름다움들을 종이 위에 구현해 냈다. 그가 만들어 낸 독창적인 예술 세계였다.

 

"미술 작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하다"

 

그는 본인의 방식대로 즐겁게, 본인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사물에 대한 정말 깊은 애정이 서려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깊게 관찰하는 눈도, 종이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릴 색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반복적으로 붓이나 펜을 놀리고 있을 그 모든 사소한 움직임까지 응원하고 싶다. 다음에는 어떤 사물의 아름다움을 선보일지, 벌써 그의 다음 작품이, 전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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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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