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캐 유니버스'의 절정, 코미디언 유튜브

김대희의 밥묵자, 강유미의 Roleplay, 피식대학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21.03.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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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부캐(’副캐릭터‘의 준말)’의 세상이다. 2018년 래퍼 ‘마미손’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번진 ‘부캐’ 유행은 ‘놀면 뭐하니?’에서의 트로트 가수 유산슬, 요리사 유라섹, 드러머 유고스타 등 한 인물로부터 비롯되는 수많은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여러 연예인의 ‘부캐’를 모아 결성한 그룹인 ‘싹쓰리’와 ‘환불원정대’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수 아이유와 배우 김혜수는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에서의 캐릭터가 직접 운영하는 듯한 SNS 계정을 만들어 활동했고 드라마 바깥에서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하여 시청자의 몰입을 높였다.

 

다양한 콘텐츠와 그만큼 쉽게 떠내려가는 트렌드 속에서 한 개인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생존 방식이다. 누구나 손쉽게 자아를 만들어내어 다방면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멀티 페르소나’ 시대의 시작이다.

 

같은 시기, 어떤 시대는 끝났다. 하나씩 없어지던 지상파 공개 코미디는 작년 6월 ‘개그콘서트’의 폐지로 완전한 종언을 알렸다. 갑자기 찾아온 마지막이 아니었다. 관객의 웃음으로 완성되는 코미디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했으나 침체된 TV 시장과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반영하지 못했고, 코미디언들은 낡은 개그를 선보였다. 더 이상 웃지 않는 관객들은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 나섰고, 코미디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관객들이 옮겨 간 자리로 가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코미디언 유튜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혹자는 커플 일상 VLOG로, 혹자는 깜짝 카메라 콘텐츠로 새로운 웃음을 준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공개 코미디의 본질인 희극을 영상화한 콩트 콘텐츠다. 코미디언이 특정 캐릭터로 분하여 가상의 상황을 연기하고, 다른 코미디언과 연기를 주고받으며 극을 이끌어간다. 이는 사실상 연극의 속성을 띠는 ‘부캐’의 유행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공개 코미디의 쇠락이 코미디를 위협하는 거대 플랫폼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들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 시절 우리에게 주었던 웃음을 똑같이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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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존 코미디와 닮은 방식을 취하는 콘텐츠는 코미디언 김대희의 ‘밥묵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대화가 필요해’의 형식을 주인공 김대희와 함께 그대로 옮겨 놓은 스핀오프* 격의 콩트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아버지가 ‘밥 묵자’고 하기 전까진 누구도 숟가락을 들 수 없는 무겁고 딱딱한 식사 자리에서 상대 연기자가 ‘코미디언 김대희’를 험담하고, 분리된 자아인 ‘아버지 김대희’가 당황하며 어쩔 수 없이 그 내용을 수긍할 때 발생하는 재미는 ‘부캐’의 유행에서 발견하는 그것과 비슷하다. 모두가 본캐와 부캐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뚜렷하게 알고 있지만 합의된 모른 척을 하며 일종의 웃음 코드를 형성한다. ‘둘째이모 김다비’가 ‘조카 김신영’을 자랑할 때처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연극적 상황에 모두가 동참할 때 발생하는 재미를 영상으로 만든 경우다.

 

*스핀오프 :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

 

원작인 ‘대화가 필요해’의 연기자 구성이 고정적인 것과 달리 ‘밥묵자’는 플랫폼 특성에 힘입어 여러 방송국의 공채 코미디언과 연기자들이 자유롭게 출연한다. 상대 연기자들의 캐릭터 역시 연예인으로서의 ‘본캐’와 혼란스럽게 섞여 마찬가지의 재미를 주는 구조는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빛을 발한다.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성역 없는 플랫폼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거듭난 촘촘한 ‘부캐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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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빙의한 듯이 ‘본캐’의 흔적을 지우고 영상마다 다른 직업의 캐릭터로 분하는 코미디언도 있다. 코미디언 강유미는 ASMR 형식의 ‘Roleplay’라는 콘텐츠를 통해 일상 속 평범한 직업의 인물을 연기한다. 성형외과 의사, 아이돌, 무당, 타투이스트 등 다양한 직업 종사자뿐 아니라 친언니, 일진, 꼰대 등 생활에서 발견할 만한 인물들의 특징을 포착하여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상황을 재현한다. 영상마다 발성까지 바뀌는 그의 가상 세계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일상에서 그저 지나쳤던 사실을 수면 위로 꺼내놓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최근 영상통화 팬 사인회를 하는 아이돌과 그의 팬으로 분하여 1인 2역의 역할극 ASMR을 선보인 콘텐츠는 플랫폼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경우다. 영상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아이돌과 팬으로서의 ‘부캐’를 각각 연기하여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영상통화로 대체된 팬 사인회를 연출한 것이다. 화룡점정은 댓글이었다. 불친절한 아이돌 ‘강민’을 향해 팬인 것처럼 불만을 터트리는 댓글들은 실제로 아이돌 팬들에 의해 빈번하게 발화되는 표현이었고, 영상은 네티즌들이 놀이처럼 단 댓글로 인해 그 사실성이 극대화되었다. 수용자까지 또 하나의 ‘부캐’를 가지고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완성된 세계관이다. 완벽하게 축조된 가상 속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게 대화하고 파편화된 현실이 거침없이 폭로되어 경험을 집약한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플랫폼이 만들어낸 신유형의 블랙 코미디다.

 

유튜브 코미디는 이처럼 정해진 시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이들만이 즐길 수 있는 기존 연극의 한계를 타파하여 더욱 다양한 일상의 경험을 불러 모으고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자’라는 제언이 코미디의 쇠락을 막아내지 못한 이유는 비판을 거부할 만큼의 한정적인 공감대에서는 한정적인 웃음만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선 그러한 코미디에서 소외된 이들이 직접 원하는 웃음 코드를 찾아서 공감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댓글 등을 통해 연극적 요소를 더하며 코미디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관객으로 인해 더욱 폭넓은 현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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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공채 코미디언이 주축이 되어 개설한 채널인 ‘피식대학’은 다양한 콩트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한 인물에 여러 캐릭터를 중첩함으로써 그야말로 완성형 ‘부캐 유니버스’를 보여준다. 다섯 명의 남자와 일대일 영상 통화로 데이트를 한다는 설정의 ‘B대면 데이트’, 산악회를 결성한 중년 남자들의 등산 과정을 보여주는 ‘한사랑산악회’, 과거의 유행에 젖어 사는 이들을 그려내는 ‘05학번 Is Back’의 상황과 캐릭터는 모두 다르지만 대부분 같은 이들이 연기한다. 그러나 코미디언들의 출중한 연기와 세밀한 포착은 각 캐릭터들에 굉장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본캐’가 누군지도 잊게 하며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하게 한다.

 

이들은 보다 본격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한다. 각 시리즈는 완전히 분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상황을 공유하는데, 이를테면 ‘05학번 Is Back’의 일부 캐릭터는 ‘한사랑산악회’ 회원의 자녀들인 식이다. 인물을 둘러싼 관계까지 구체화함으로써 인물의 현실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정기 시리즈 속 캐릭터를 개인별로 조명한 스핀오프 콘텐츠를 통해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가령 ‘B대면 데이트’의 데이트 상대인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는 실제 래퍼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스타라이브’를 통해 소통하고 직접 랩을 한 믹스 테이프를 발표한다. 재벌 ‘이호창’이 ‘갑질’하는 영상이 등지에서 퍼지고 ‘한사랑산악회’ 회원인 물리 교사 ‘정광용’의 1시간짜리 수업 영상이 올라오며, ‘05학번 Is Back’의 ‘길은지’는 그 시절 유행했던 춤을 가르치는 ‘UCC’를 올린다. 물론 이러한 연극적 상황은 직접 데이트 상대로 이입하거나 주변의 중년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고, 2000년대의 추억을 공유하며 구체적인 경험을 더하는 구독자들의 동참으로 인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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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영상을 제작하고 채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유튜브는 주로 개개인의 일상과 리얼리티를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목받았다. 그래서인지 VLOG나 깜짝 카메라 콘텐츠는 여전히 중심 콘텐츠로서 인기를 끌고 있고, ‘뒷광고’처럼 리얼리티를 배반한다고 여겨지는 행위는 그 어떤 논란보다도 강한 분노의 여론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캐’만으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가상적 상황인 코미디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모순적인 결과가 아니다. 시청자를 수동적인 관찰자로 위치시키는 ‘꾸며진 진짜’보다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의도된 가짜’에 시청자의 ‘진짜’ 경험이 더욱 투명하게 비춰지고 있음을 모두가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부캐’들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가상 세계관은 관객들의 익살스러운 모른 척으로 인해 단단히 구축되고 그 위에 자유로운 놀이터를 조성한다. 코미디언 유튜브가 이끌어낸 ‘부캐 유니버스’의 절정이다. 어쩌면 코미디언이 아닌 관객에게서 재미있는 ‘부캐’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코미디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관객이 가만히 앉아 웃기만 해야 하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그리고 구독자라는 이름을 한 새 시대의 관객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개척될 새로운 코미디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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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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