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명동 한복판에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은 글

글 입력 2021.02.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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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글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가? 잘 읽히는 글, 주장이 명확하고 적절한 근거가 제시된 글, 짧고 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글, 문장 구성이 적확한 글 등이 좋은 글이라고 여겨지는 일반적인 유형이다. 우리는 긴 시간 그렇게 쓰인 글을 교과서처럼 읽었고 그렇게 쓰도록 노력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이 좋은 에디터일까?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

 

에디터(Editor)는 정확히 말해서 편집자라는 뜻이다. 즉, 단순히 글을 짓는 것뿐 아니라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주제와 소재를 취사선택하고 적절한 방법을 택하여 글로 풀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주관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좋은 에디터가 되기 위해선 좋은 글을 씀과 동시에 글이 점하는 위치와 읽히는 맥락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잘 쓴 글이더라도 그것이 아무런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 맥락에서 발화된다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잔잔한 일렁임에서부터 해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목표한 곳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맞닥뜨리는 과제를 에디터는 글을 통해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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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좋고 나쁨을 따지는 일이 모두 그러하듯 주관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물음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하는 글의 종류를 떠올려보았다.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이 많은 세상,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글이 제 가치와 효용을 다하는 세상이라는 이상향을 충족할 만한 글을 좋은 글로, 그렇지 않은 글을 나쁜 글로 성글게 구분해본다.

 

좋은 글은 어디에나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발매되면 가수가 직접 적은 앨범 소개말을 읽는 것이 쏠쏠한 재미인데, 앨범에 담긴 내러티브를 이해한 후 더욱 풍부한 감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노래에 담긴 후일담을 설명서처럼 정성스럽게 첨부하는 아이유의 앨범과 트랙과 트랙을 잇는 웅대한 서사를 수필 형식에 담아 소개하는 심규선의 앨범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흥미가 있는 대중문화 비평에 관해서도 좋은 글을 많이 마주한다. 특히 페미니즘과 결부하여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는 글은 언제나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숫자 너머에 있는 사실을 통찰하는 시사 기사나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담아내는 문학 작품, 하물며 동기의 과제에서도 좋은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곤 한다.

 

이 글들이 좋은 글로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두에서 제시했던 좋은 글의 요소를 충족해서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잘 읽히지 않고, 구성과 근거가 촘촘하지 않으며, 짧고 간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글쓴이의 의사가 전달되고 감동을 선사하는 글을 마주한 적 역시 많기 때문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온통 틀린 친구의 SNS 일기를 보며 삶을 성찰했고, 장문을 고수하는 소설가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문장을 긴 호흡으로 흥미롭게 읽어 내렸다. 어려운 어휘로 빼곡하여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논문을 반복해 읽으며 새로운 지식에 눈을 떴고, 내용이 줄마다 바뀌며 엉뚱한 문장이 가득한 편지를 읽으며 눈물지었다. 좋은 글이라고 가르쳐지지 않는 글에서도 우리는 감동하고 즐거움을 경험한다.

 

반면, 좋은 글의 요소를 충족하면서도 좋은 글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글도 파다하다. 아티스트나 향유자를 내려다보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비평가의 평론, 미술관에서 그림과 함께 제시되는 불친절한 캡션, 수능 국어 영역에서 출제되는 3점짜리 어려운 비문학 지문은 앞에서 제시한 글에 비해 잘 읽히고 구성이 체계적이며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는 전문적인 글이지만 읽는 내내 불쾌감을 떨칠 수 없다. 평가와 선발을 목표하는 이러한 글들은 모두 ‘권위적’이라는 공통점으로 수렴한다.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비판을 불허하고 피드백의 창구가 없는 곳에 던져진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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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고, 읽고 나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의 가치다. 필자와 독자가 구분되는 경계와 둘의 생각이 맞부딪치는 지점에서 감상이 태어난다. 그래서 필자는 글이 자신의 시야에 국한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독자의 해석과 지평을 최대한 존중하며 대화하고자 해야 한다. 과제, 친구의 SNS, 편지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좋은 글을 자주 마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권위적이지 않다. 쓰는 자와 읽는 자가 서로 명확하게 글의 위치와 방향을 인식하고 있으며 해석과 대화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고 있을 뿐이다.

 

모든 창작물은 혼자서는 채우지 못하는 여백이 있어서 숨을 쉬고 생장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에디터는 이 사실을 수긍하고 대신 자신이 채울 수 있는 영역을 최선을 다해서 충족시키며 글에서 비롯되는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다. 글이 위치한 맥락을 다각도로 헤아리고 글이 일으킬 담론의 확장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고립을 줄이고 최대한의 해석과 감상을 이끌어냄으로써 글을 계속 살아있게 한다. 즉, 필자가 침범할 수 없는 독자의 영역을 온전히 보전하고 동등한 대화를 요청하는 글이 곧 좋은 글이며, 그러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적재적소의 맥락과 위치에서 발화하고자 하는 에디터가 좋은 에디터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지는 에디터


 

글은 쓰인 순간 제 걸음으로 퍼져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에디터는 글의 시작점과 방향을 설정할 수는 있어도 걸음에 자의적인 변곡점을 더할 수는 없다. 이후로는 독자의 지평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을 돌려 세우거나 멈추게 하기보다, 글과 동행하는 법을 훈련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글을 쓴 순간부터 글을 책임져야 할 에디터의 의무를 최선으로 수행하고자 한다.

 

‘명동 한복판에 떨어져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라.’ 모범 답안보다 개성 있는 글을, 합격자보다 평생 글 쓰는 사람을 만들기를 원했던 논술 학원 선생님의 말씀이다. 주변에서는 입시에는 맞지 않는 학습 방법이라며 학원을 옮기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그 원칙이 좋았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필자가 최선의 책임을 다 하고 세간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글이라면 옳은 글이라는 원칙은 사방이 가로막힌 자습실에서도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글을 쓴다. 하나의 글과 하나의 책임을 더하면서도 자유를 느낀다. 마침표를 찍는 순간 새롭게 내딛어질 글의 걸음을 기대하며, 부족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글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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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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