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싶다면 - 이언의 철학 여행

이언과 함께하는 영혼의 근력 키우기
글 입력 2021.01.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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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군가는 지루하고 머리 아픈 학문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경우, 후자에 가깝다. 가깝다라고 표현한 것은 철학은 나에게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며 철학적인 질문에 자주 빠졌었다. ‘어릴 적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객관적인 무언가가 과연 존재할까?’, ‘영원한 것이 있을까?’ 이런 고민들 말이다. 여전히 답이 없는 질문들이 많지만 나름의 경험에 기반해 혼자 답을 내리다 보면 뿌옇던 머릿속이 조금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좀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학에서 철학 수업을 들을 때는 조금 달랐다. 형이상학적인 언어로 적힌 학자들의 의견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길을 잃었다. 답이 없는 무수한 질문들 사이에 놓여 혼란스러운 와중에 시험은 준비해야 했고 이해되지 못하고 단순히 암기해버린 내용들은 쉽게 사라졌다.

 

그런 내가 책 <이언의 철학 여행>을 읽고 싶어진 이유가 있었다.

 

“소설로 읽는 철학”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니. 소설의 서사와 그 안에 담겨있는 갈등, 희로애락, 감정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문구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라면 철학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5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펼쳤다.

 

*

 

책은 열네 살 소년 이언이 꿈속에서 한 노인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꿈에선 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듯이, 그 꿈의 내용은 좀 이상했다. 꿈을 꿀 때마다 등장하는 노인은 이언에게 계속해서 철학적 난제들을 질문하며 이언을 혼란에 빠뜨린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라고 믿을 수 있는지, 생각으로 고통을 지울 수 있을지,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노인이 던지는 난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이언이 된 것마냥 혼란스러워졌다.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고 해서 정말 소설처럼 술술 읽히기를 기대했던 건 오산이었다.

 

‘소설’이라고 표현하긴 했으나 이 책은 철학 책이다. 책의 초반에 실린 글에서 이 책을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정신 운동mental gymnastic’에 가깝다고 표현했듯이 페이지를 넘기기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힘든 것을 참아내고 계속하는 운동처럼, 더디게 읽혀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유한다면 지적 지구력과 사고의 정교함을 기르기 더없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구조다. 기존의 철학 책들이 주로 통시적인 흐름에서 내용을 서술하고 독자는 그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그치는 구조라면, 이 책은 논쟁적 구조를 취한다. 지식, 자아, 이성, 정신, 과학, 참과 거짓, 신, 악 등 총 13가지 목차에 따라 그와 관련된 철학적 담론을 던지는 식이었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명확한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이 책의 구조는 철학을 더 적절한 방법으로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이언의 꿈과 철학자들의 이론을 짧게 정리한 토막글이다. 그래서 저자 잭 보언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마치 두 권의 책처럼 느껴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책에서 다루는 지식의 양이 방대하며 책을 읽는 방식도 각자의 취향대로 즐길 수 있다. 이 책을 즐기며 읽고 싶다면 이언의 이야기를 먼저 읽고, 철학 이론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이언의 이야기와 철학자들의 이론을 넘나들며 읽으면 된다. 꼭 순서대로가 아니어도 관심 있는 논제에 대한 이야기를 입맛대로 골라 읽어도 좋다.

 

페이지에 있는 활자를 다 읽어야 하는 내 성격 상 이언의 이야기와 학자들의 이론을 오가며 책을 읽느라 이언의 모험에 완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학자들의 이론이 이언과 노인, 이언과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로 전달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철학적인 고민들에 대해 내가 내렸던 결론과는 다른 학자들의 의견을 접하면서 혼자 답을 내리던 때와 달리 세계가 더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언의 모험이 끝나고 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 마지막 챕터인 "더 깊은 질문들"이다. 일종의 '찾아보기'처럼 본문에서 다뤘던 주제들에 해당하는 질문들이 목록화되어 정리된 챕터다. 이 챕터는 읽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길었던 여정을 정리하는 동시에 주요한 철학적 논제들을 다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다 대답하고 싶어지는 논제를 발견하면 자유롭게 답을 적어봐도 좋다. 13개의 목차 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2장의 논제 중 한 가지를 아래에 남겨본다.

 

 

과거의 경험을 기억할 수 없다면 당신의 존재는 달라지는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면? 과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주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은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바라는가? 이것이 당신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더 깊은 질문들, p 545-546

 

 

‘소설’을 기대하며 읽었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간 들었던 철학 수업이나 철학 기본서에 비하면 이해하기 훨씬 수월했다. 이언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실의 이면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지지만 이언과 노인이 논증과 반박을 반복하는 사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유로 빠져든다.

 

단 한 번 읽었다고 이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을 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으라고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곁에 두고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들춰볼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자, 좋은 토론자같은 책이다. 그렇게 천천히 철학을 탐구하다보면 어느새 사고의 폭이 확장되고 깊은 사유가 가능해질 것이다. 꾸준히 반복하면 길러지는 몸의 근력처럼 말이다.

 

철학적 난제들은 기원전부터 논의되어온 문제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유례없는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로 당연하던 것은 모두 당연하지 않아졌다. 모든 게 새롭고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노인이 던지는 질문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잃지 말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서 변화에 휩쓸리는 대신, 미래에도 흔들리지 않고 본질을 꿰뚫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의 근력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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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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