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년간 불어를 배웠다. 전체적으로 보면 열심히 한 시기보다, 그저 수업만 들었던 나날들이 많지만 항상 프랑스어는 내 정체성, 특징 중 하나였다. 다른 모든 학문에서 그렇듯 프랑스어도 열정, 재미가 아닌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일과였지만 나름대로의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 나는 프랑스어와의 인연에 기약 없는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프랑스어와 사랑에 빠지지 못한 것, 그것이 아마 이 길에서 하차하는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여러가지 애착의 종류 중 프랑스어 대한 나의 감정은 애증이다. 좋아하지만, 싫기도 하다. 처음 프랑스어를 배울 때는, 좋은 감정만 있었다. 모든 게 다 새로웠다. 우아하면서도 통통 튀는 발음이 좋았고, 언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문화도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프랑스어 실력이 늘어 가는 것이 신기했다. 하루하루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길게 한 학기 단위로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났다.
하지만 문법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프랑스어는 소설, 사회과학 책에서 논문으로 점점 탈바꿈했다. 영어에서도 문법에 약했던 나는, 그 복잡함과 정교함에 질려 버렸다. 처음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은 시제였다. 반과거, 복합과거, 단순과거, 단순미래, 근접 미래 등의 시제들의 어간, 어미가 헷갈려 사용할 때마다 난항을 겪었다.
개념을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과정 자체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표현의 뉘앙스에 따라 사용되는 조건법과 접속법도 참 싫었다. 이 문법들은 사실 하나의 틀이라 많이 보고, 연습해 보면 점점 익숙해진다. 마지막,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건 처음에는 전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전치사이다. 전치사는 동사, 형용사와 함께 특정 구문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다 외워야 한다. 번거롭고 헷갈린다.
영어가 참 간단하고 쉬운 언어였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러시아어가, 프랑스어가, 독일어가 세계 공용어였다면 국내에서 세계로 진입하는 장벽이 더 높았을 것이다.
프랑스어가 어려운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한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개념들과 문법적 틀이 존재한다. 처음에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굳이 왜? 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하지만 언어는 20%이 이해, 80%의 무조건적인 수용, 암기를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언어체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무조건적인 수용을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익숙해 지고 나면 그 전보다 외우는 것이 쉬워진다. 둘째, 기본적인 틀 안에 많은 세부적인 틀, 예외들이 존재한다. 각기 중요도가 존재하지만 틀리기 위해 내는 시험에서, 기본적인 틀과 예외의 중요도는 같다. 문법에 취약했던 나는 함정에 많이 걸려들곤 했다. 그래서 문법이, 프랑스어가 점점 싫어졌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니? 라고 묻는다면 사실, 당당하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내 관심은 항상 다른 과목, 과제에 있었다. 필수적인, 최소한의 시간만을 프랑스어 공부에 사용했다. 나의 변명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왜 프랑스어에 많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붓지 않았을까? 시간이 없어서? 게을러서? 그 동안 완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긴 여정을 끝내는 지금, 원인은 명료하다. 프랑스어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프랑스어를 배우는 다른 친구들은 어려운 부분을 배울 때는 나처럼 머리를 꽁꽁 싸매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된 영화나 뮤지컬, 활동을 할 때는 즐거워했다. 웃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힘들게 배우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즐겼다. 직접 프랑스 소설, 기사를 스스로 찾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배움을 즐겼다. 그 점이 나에게 부족했다. 공부를 공부처럼 대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
기준, 이상이 높기도 했다. 하지만 명백히 과정만 보면 실패담에 가까운 배움이다. 그래도 마무리는 깔끔하게 미련없이 하고 싶다.
하루의 3, 4 시간을 프랑스어에 쏟고 있다. 1월의 학원 수업이 시작되면 시간, 비중을 더 늘릴 것이다. B2 시험에 합격하면 그래도 마무리는 성공으로 매듭짓는 것이니, 회상할 때 좋은 추억 하나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뭔가를 이루고 더 성장하기 위해 쏟는 단계적인 노력은 일상적이고 늘 해오던 것이라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좋은 마무리를 위한 지금의 노력은 끝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애틋하다.
2021년, 나는 실리적, 합리적인, 학문에 새로 입문한다. 새로운 학문의 과정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흥미를 갖고 배우다 점점 권태를 느끼고, 한계를 느끼고, 한계를 뛰어넘거나 혹은 머물러 있으면서 굴곡지게 성장할 것이다. 이 여정은 어떻게 끝날 것인지 걱정되는 한편, 정진할 큰 목표, 이정표를 찾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프랑스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드문, 어쩌면 힘든 길을 선택하신 당신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튀는 장점과 강점이 될 수 있는 언어예요.
프랑스어를 정말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프랑코포니 국가 혹은 문화와 분위기 특정 분야에 빠지면 성장통을 수월하게 극복해 내실 수 있을 거예요.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는 예술과 문화의 나라예요. 독특한 사상들과 각기 다른 개성의 표현이 넘실대죠. 미술, 건축, 공연, 음악 등 다양한 차원의 감동, 영감을 경험할 수 있어요.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파고 들어 가면 그 과정 자체가 연구이자 취미가 될 거예요. 개인적으로 Romeo et Juliette 뮤지컬을 추천 드립니다.
대학입학시험이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서술하는 철학 시험, 바칼로레아 인 것처럼 자신의 의사 표명이 중요합니다. 토론을 즐기고, 자신의 생각에 근거가 있어야 하죠. 사고를 체계적, 논리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변하게 됩니다. 프랑스어 자격시험인 delf 에서도 의견을 서술, 표명하는 ecrit, oral 분야가 있으니 분명하게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당신이 프랑스어를 배우는 길에 좋은 시작, 과정, 끝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Bon courage!
Quoi que vous pensiez ou croyez pouvoir faire, faites-le. L’action porte en elle la magie, grace et le pouv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