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도서]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는 보다 행복한 사회일까?
글 입력 2020.11.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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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내 기억이 맞다면 놀랍게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이전에 SF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는 추리소설을 읽기에 바빴고 고등학교 때는 (…) 그냥 바빴다고 치자. 그렇게 가진 게 시간밖에 없는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한동안 놓았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추리소설은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멋있는 뇌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교양도서만 한창 읽고 있을 때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주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집으로 동명의 단편을 포함해 일곱 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작가는 지금 당장 현실에 있을 법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미래 세계를 그린다. 기술의 무한한 발달로 행성 간을 오가는 것, 배아를 디자인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등 크게 달라진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미래에도 여전히 차별받고 소외당한다. 작가는 사회가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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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화자 데이지의 사소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매년 순례자들을 위해 준비한 꽃이 이렇게나 남을까. 왜 모두가 시초지의 이야기를 숨기는 걸까? 이 이야기는 유전자 디자인 기술의 발달로 돈만 있다면 내 아이를 원하는 대로 제작할 수 있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예를 들어 태어날 아이가 운동을 잘하길 바란다면 운동 능력을 유전자에 새겨넣고, 나와 같이 매력적인 아이가 되길 바란다면 내 매력을 배아의 유전자에 새겨넣는 식이다. 천재 과학자이자 흉측한 얼룩이 있는 얼굴을 가진 릴리 다우드나는 이 기술을 이용해 세상을 완벽한 인간들만 존재하는 유토피아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아마 본인처럼 결점이 있는 사람이 아예 사라져버리면 사회에 만연히 자리 잡은 혐오적 시선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완벽한 개조인의 등장으로 그렇지 못한 비개조인들은 사회에서 밀려나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지구의 바깥에 위치한 데이지의 마을은 비개조인들끼리 모여 사는 세상이다. 마을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즉 순례를 떠나기 전까지는 위와 같은 시초지(지구)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채로 살아간다. 개조인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무수한 결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데이지의 마을에는 혐오와 배제, 심지어는 사랑조차 없다. 그렇다면 순례자들은 이리 살기 좋은 곳을 두고 왜 혐오로 잠식된 지구를 택하는 걸까. 지구에 남은 자들은 아마 유토피아를 완벽한 사람들끼리 모인 곳도, 불완전한 사람들끼리 모인 곳도 아닌 행복한 공존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지구에 남아 현실을 바꾸고자 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은 토론 주제로도 자주 봤던 이야기라 그런지 책을 통해 꽤 가까운 미래를 보고 온 기분이기도 했다. 정말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사회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개인적으로 나는 유전병을 미리 예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유전자 조작의 장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굳이 조작하지 않아도 다들 유행에 따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고, 사회적으로 획일화된 미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미리 배아의 얼굴, 키, 성격, 능력 등을 정할 수 있다면? 모두가 갖고자 하는 능력은 아마 거기서 거기일 테니 지나가는 저 사람이 나인지 내가 나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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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은 ‘희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가 과거 외계 생명체와 함께했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따뜻해졌던 작품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무것도 없이 외계 행성에 조난당한 희진은 다행히도 그곳에서 루이를 만나 함께 동굴에 살게된다. 인간과 같이 사고를 하고 이족보행을 하며 언어로 소통하는 외계 생명체 ‘루이’는 3~5년 정도를 살고 세상을 떠나지만, 그가 가진 기억은 영원히 이어진다.

 

첫 번째 루이가 죽고 나면 두 번째 루이가 와 첫 번째 루이가 종일 기록했던 색채 언어를 읽고는 첫 번째 루이와 같은 사람인 듯 행동한다. 희진을 다정히 챙겨주고, 또 종일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두 번째 루이가 죽고 나면 다시 세 번째 루이, 네 번째 루이, 다섯 번째 루이 … n번째 루이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 이야기를 읽고 문득 불교의 윤회설이 떠올랐다. 태어날 때 아기들이 우는 이유는 ‘아 거지 같은 세상에 또 태어났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말이다. 루이처럼 몸은 계속 바뀌지만 그들이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건 모두 같은 사람인가? 루이의 죽음은 단지 낡은 몸을 새로이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인 걸까? 또 무슨 연유로 후의 루이들은 뗏목을 타고 들어와 첫 번째 루이의 그림에 적힌 말을 그대로 따를까. 그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존재로 살면 루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윤회설: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들은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재탄생한다는 불교의 교리.

 

참고로 스펙트럼은 ‘벌새’ 김보라 감독의 연출을 필두로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공생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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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가설」은 쓸데없는 공상을 많이 하는 나에게 있어 가장 현실적인 내용인 것 같아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이는 신생아의 뇌에 있는 형체 없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성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류드밀라의 행성’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화가다. 실제로 없는 행성임에도 불구하고 류드밀라는 본인이 그린 행성이 실재하는 공간이라 믿었고, 그 그림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한편 뇌의 해석 연구소는 한창 신생아의 울음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그때 연구팀은 아이들의 울음 뒤에 “어떻게 하면 윤리성을 더 부여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여기야” 등 신생아의 생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철학적 물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신생아들이니 기껏해야 ‘배고파’, ‘불편해’ 정도의 생각을 할 줄 알았던 연구팀은 당연히 노이즈 때문에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노이즈가 아닌 류드밀라 행성에서 온 외계 생명체였다. 그 생명체는 일곱 살 이전의 모든 인간의 뇌에 존재하며 사랑, 배려, 윤리 등을 인간에게 가르치고 홀연히 떠난다. 그 아이들이 일곱 살까지 가지고 있었던 기억과 함께 말이다.


실제로도 인간은 마치 공생 가설 속의 사람들이 일곱 살 이후에는 류드밀라 행성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픽션에 이러한 사실이 보태지면 나 같은 사람들은 홀딱 넘어간다. 이거 좀 그럴듯하다고.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고 ‘뭐야, 나도 그래서 어릴 때가 잘 기억 안 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진지하게 정말 믿는 건 아니다. 진짜다. 아울러 이 이야기를 읽고 인간 고유의 특징인 인간성이 '나 자신이 아닌 내 머릿속의 외계 생명체에 의해 나타나는 거라면 나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만약 그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그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생긴 동물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겉으로는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SF 소설이나, 그 속에 담긴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김초엽 작가는 주인공들을 모두 여성으로 그리며 그들을 성별로 인해 과소평가 당하는 인물, 결점이 있는 인물, 성소수자, 미혼모 등으로 제시해 현실의 사회 문제를 꼬집는다. 책을 읽고 난 뒤 '왜 기술과 사람들의 의식은 비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삶이 편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범유행 상황에 처한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학교의 수업, 회의뿐만 아니라 면접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거기에 우리는 침대에 누워 콘서트를 즐기고 종이가 아닌 딱딱한 고가의 물체 위에 필기한다.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디지털 성범죄, 악플, 사이버 불링, 정보 격차 등의 새로운 사회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단지 좀 편해졌다는 이유로 지금을, 앞으로의 미래를 과거보다 더욱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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