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를 이해하는 과정에 들어서다

나를 위해 쓰는 회고록
글 입력 2020.10.0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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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작업 풍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스물셋이다. 나는 이제야 스물셋이 됐는데 사람들은 내게 점점 기대하는 게 많아진다. 취업이나 어학 성적이나 스펙에 관한 것들. 나도 교복을 입었을 땐 내 나이를 동경했지만 실로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직도 어리다는 걸 실감했다. 그냥 머리만 조금 자랐을 뿐이다.

 

지난 3년 동안 대학교를 쉴 틈 없이 다니고 온전히 쉬기 위해 휴학을 결정했지만 한가한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 나는 지금도 매일 매일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공부를 하다가 저녁엔 나가서 산책 겸 운동을 하고 잠이 든다. 쳇바퀴 굴러가듯 매일 비스름한 삶이지만 이 리듬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휴학하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내게, 주변에서 종종 왜 휴학을 했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럼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쉬고 싶어서 그랬다고.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내가 자꾸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몸도 마음도 계속해서 고장 나는 기분이 들어서 바로 휴학을 선언했다. 그리고 휴학 10개월 차에 접어드는 지금은 아주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사 빠진 채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던 내가 새롭게 조립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글은, 이제 다시 막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내가 쓰는 나에 대한 글이다. 지루할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잘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보겠다.

 

 

 

나와 예술의 관계성에 대해


 

내 이야기를 써보라고 할 때면 항상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예술이다. 나는 현재 예술경영을 전공으로 삼고 있다. 종종 어쩌다 그 전공을 선택했냐는 말을 듣는데,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게 됐는데, 그것이 음악과 나를 연결해 준 유일한 접점이 되었다. 그저 악기 하나 다루는 게 살면서 어떤 메리트로 작용하지 않을까 해서 등록했던 피아노 학원에서 나는 굵직한 꿈을 꾸게 됐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이유는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바로바로 연주하면서 사유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나는 10년이나 피아노를 붙들고 울고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피아노에 집착했는지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가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음악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수단으로 피아노를 선택할 수밖에 없던 환경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음악을 한다고 하면 따라붙는 동경의 시선들이 좋았고,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친구들이 좋았고, 연주가 끝나면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그 짧은 순간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그러나 어느 예체능 계열이 그렇듯 재능의 차이가 모든 걸 결정했기 때문에 그저 평범했던 나는 자꾸만 뒤로 밀리게 되는 수밖에 없었다. 피아노와 나만 달랑 남겨진 방에서 손목이 퉁퉁 부을 정도로 연습을 했었고, 레슨이 벅차면 울면서도 쳤었다. 그런데도 평범한 내가 가진 재능의 한계는 자꾸만 벽에 부딪혔고, 그 결과로 나는 내 학창 시절에 늘 함께였던 피아노를 하루 아침에 그만두게 되었다. 아직도 그 결정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심화 레슨을 받느냐, 아니면 그만두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었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내면서까지 피아노를 붙잡기엔 자신이 없었고, 여기서 뭘 더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나는 어렵사리 내 10년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었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는 한창 꿈에 가까워지고 있을 시기에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쉽게 다른 일에 대한 꿈을 꾸지 못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새 학기가 되고 나는 피아노에 대한 미련이 가득 남아있는 채로 실용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는데, 동아리를 담당하셨던 음악 선생님과 가까워지면서 선생님을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던 평범한 어느 날, 교내 축제로 인해 학교가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교내 작은 음악 행사였는데, 거기서 메가폰을 쥐고 분주하게 일하시는 쌤의 모습이 막연히 멋있게 느껴졌다. 나도 저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그럼 콘서트 기획에 관련된 일을 하면 나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단순한 생각으로 예술 경영을 선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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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전시로 기획했던 Blue society 展의 전시장 일부.

 

 

솔직히 전공 적성이 잘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럿이서 함께하는 일이기에 원체 혼자 하는 일이 익숙한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대규모의 조별 과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꽤 받기도 했다. 실제로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람도 몇 있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획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공상으로 남겨두기엔 아까웠던 많은 잡념을 실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생각했고, 내가 가진 생각을 남에게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사실 그 뿌듯함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기획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어렸을 때의 나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나름대로 그동안 꿈꾸었던 현실과 이상의 중간 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겁도 많고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라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하면 불안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나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하나 해냈다!' 하는 그 성취감을 대체할 것이 마땅치 않아서 붙잡고 있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불어 이 일을 하면 내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그때마다 꼭 와서 꽃다발을 안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표정과 진지한 향유의 의견들을 주고받을 때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따스함 때문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겨나는 것 같다.

 

 

 

나의 오래된 꿈


 

초등학교에 다닐 땐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국어 시간에 항상 글을 썼다. 예쁜 글을 쓰고 싶었고, 예쁜 글을 읽는 걸 좋아했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는 늘 동상을 받았는데, 은상부터 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서 상을 받으면 내심 아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운 좋게 은상을 한 번 탔다가 학교 대표로 시 글짓기 대회 예선에 한 번 나간 적도 있다. 좋은 결과가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대표'라는 타이틀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글 쓰는 것도, 글 읽는 것도 잊었기에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을 꼽자면 채 스무 권도 안 될 것이다. 한창 피아노에 미쳐있을 때이기도 해서 책에 재미를 못 느끼기도 했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스무 살 이후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1Q84>를 읽으면서 현대 문학을 다시 접하게 됐고, 마침 그 시기에 들었던 문학 교양 수업이 나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에 발표되었던 여러 단편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때 읽었던 소설들은 아직도 두고두고 생각날 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임현 작가의 <고두>, 강화길 작가의 <호수>,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 존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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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시인 허연의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그 이후로 현대 문학을 다시 접하게 됐다. 그냥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책이면 일단 사고 봤다. 책을 다 읽고는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쉬워서 블로그에다가 착실히 리뷰도 써 내려갔다. 책 뿐만 아니라 전시, 공연, 영화 등 예술이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감상평을 남기게 됐는데,  여러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예술 경영을 전공할 뿐이지 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는 않기에 배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학창 시절에 책을 잘 읽지 않아서 남들보다 고전에 더욱 취약한 것이 나름대로 콤플렉스기도 했고. 그걸 계기로 연극학과 한국어문학을 연계해서 제 2전공으로 취득할 수 있는 코스를 밟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쓸 준비를 하게 됐다. 다양한 작품을 접하며 제 나름의 심미적 취향도 자리 잡게 됐다.

 

음악 말고도 좋아하는 게 생겼다는 것은 내게 또 다른 자신감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하루를 마감할 때 무엇을 할지 몰라 휴대폰 스크롤만 죽죽 내리고 있던 내가 잔잔한 음악을 틀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되뇌면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 그 사고를 토대로 더 좋은 예술을 기획할 수 있다는 믿음.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재가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게 된 이유도 마냥 글만 쓰는 일이라면 내가 계속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환경에 놓여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알기에.

 

 

 

나다운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나이


 

안정적인 나이다. 스물셋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 나이라고 생각한다. 휴학하면서 나는 대충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언젠가부터 인스타그램에 내가 쓴 글을 올리는 게 부끄럽지 않아졌고, 마이너한 음악 취향에 자부심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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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구매한 사운드룩 턴테이블.

 

 

공연 기획, 그중에서도 콘서트 기획을 원해서 전공을 선택한 것처럼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세부적으로 장르를 따지자면 그중에서도 록을 좋아한다. 스무살부터 록 페스티벌과 콘서트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봤었고, 올해는 작년에 모은 돈을 가지고 해외로 떠나 음악 페스티벌을 즐길 방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무산되면서 올 초에 선입금했던 티켓 금액들이 다시 환급되고 있다. 그 돈으로 올여름에 턴테이블을 하나 장만했다.

 

옷이나 화장품을 사 봤자 밖에 잘 나갈 일도 없고, 콘서트도 가지 않으니 주야장천 LP만 사면서 턴테이블 구매한지 한 달만에 벌써 7장 정도 모으게 됐다. 지금까지 숱하게 받았던 택배 상자와는 다른 차원의 행복이다. 해외에서 직구한 LP가 집 앞에 놓일 때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표정이 큰 사람인 줄도 몰랐다. 단단하게 포장된 상자를 뜯어내 턴테이블에 LP를 올리고, 턴테이블의 가느다란 바늘이 음을 하나씩 읽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이런 게 바로 소소한 행복이구나 느끼곤 한다.

 

가장 나다운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것들이다. 어렸을 땐 심하게 내성적이었기에 무엇을 잘한다, 뭐에 자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낯부끄러웠지만 스무 살이 지나고 철저히 타인이 바라보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던 내가 나 자신에 초점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년이면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내년이 되면 현재 누리고 있는 이 안정감에 바람이 불겠지만, 내년의 나는 올해의 나를 바탕으로 더 확장된 시각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리라 믿고 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가면서 더욱더 많은 것들을 좋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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