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택적 동정의 뒤편에 선 사람들: 빈곤의 연대기 [도서]

'어떤' 빈곤은 관심받지 못한다
글 입력 2020.07.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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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빈곤은 관심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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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익숙하다. 성별 간, 인종 간 불평등 이슈는 2020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혹은 무기력하게 만들곤 한다. 이는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반과 대중의 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한편, 불평등 중에서도 유독 ‘고질적인’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주 예전부터, 텔레비전을 틀면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 달라는 광고가 나오곤 하며 그들을 도우려는 움직임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그들이 “왜” 빈곤해 졌는지, 즉 우리가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책 “빈곤의 연대기”는 제목 그대로, 오늘날 빈곤한 이들의 역사를 비춰 주는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그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불평등의 국제 질서를 마주하게 된다.

 

당장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의 불평등을 인식하고 노력하는 것 역시 필요하지만, 그 공동체 밖에도 '선택'받지 못한 빈곤의 굴레에 갇혀 있는 이들이 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왜 '아직도' 빈곤한가?


 

현대 불평등의 근원은 과거 식민지배와 냉전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빈곤의 이유는 민족성이 게으르다거나, 국가 위치가 지리적으로 열악하다는 사실 따위가 아닌 서구 열강의 착취로부터 시작된 불평등의 역사에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면서도 종종 감춰지곤 한다.

 

다만 이는 국제 질서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있는 현대인이라면 이미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을 내용이다.  오늘날 선진국의 발전은, 빈곤국으로부터 무차별하게 착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식민지배는 국제사회에 잔재를 남겨, “신 식민지주의”라는 형태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종속관계를 고착시켰다. 책에 의하면 오늘날 남반구의 빈곤국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에 종속되어 있으며, 책은 나아가 공정무역의 탈을 쓴 다국적기업의 본질과 횡포를 가감없이 밝힌다.

 

오늘날 남반구의 빈곤국들은 거의 선진국 다국적기업들의 생산 기지나 다름없이 이용당하고 있다. 이는 빈곤국들을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에 대한 의존 심화의 악순환에 빠지게 만들었다. 즉 앞서 말한 종속 관계의 형성이다. 대다수의 다국적기업들은 기본적인 안전이나 임금 수준조차 보장되지 않은 작업환경에 빈곤국 노동자들을 내몬다.

 

또한 식민지배의 여파로 재정 상태가 나쁜 빈곤국들에 대해 IMF는 시장경제 질서를 받아들임과 함께 많은 영역에서의 민영화를 권고했고, 국가의 역할이었던 복지는 곧 개인의 책임이 되어 빈곤국 내 계급 간 불평등에 크게 기여했다. 빈곤국들은 나라 안팎으로 불평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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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부분인 14~15장에서 저자들은 이같은 구조적 빈곤의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책은 먼저 국제 원조의 경우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선진국 의존적인 원조 시스템으로서 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공정무역의 경우에도 실제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성이 크지 않으며 오히려 “선진국이 주도하는 생태식민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자들이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이익은 아주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먼저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빈곤국의 생산자들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닌데, 이는 공정무역 인증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데 있다. 즉, 빈곤국의 농부들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정무역 커피 산지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다.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과 비교하면 10배나 부유한 나라들이다. 따라서 혹자는 비싼 공정무역 제품 대신 차라리 더 저렴한 상품을 사고 그렇게 절약한 돈을 비용효율성이 높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잘' 도와야만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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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0년이다.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강제 ‘집콕’ 중이지만, 터치 몇 번이면 어떤 음식이든, 제품이든 집 안에서 누릴 수 있다. 기술의 발달로 어떤 사람들은 집 안에서 세상을 움직인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전히 몇 푼을 위해 집을 나서 쓰레기장을 뒤지고, 작열하는 태양과 숨을 막히게 하는 제초제 속에서 노동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거대한 불평등을 인식하고 있고,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도 상황은 거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이같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비롯된 빈곤은 대체 어떻게 해야 근절될 수 있을까?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빈곤국들은 스스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불평등의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비록 지금은 너무나 거대하고 고착화된 것 같이 보이지만, 앞서 몇몇의 빈곤국들이 남겼던 좋은 선례처럼, 많은 빈곤국들이 스스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세계시민으로서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또 하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아무데나 생각없이 후원하는 것 역시 그들을 전혀 돕지 못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쏟아진 기부금은 사망자 1인당 33만달러였다. 그러나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 한 명당 원조 및 기부금은 평균 1만 5천 달러에 불과하다. 매일 1만 8천여명의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착한 일을 할 때도 성과를 따질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국제사회의 불평등은 너무나 거대해서 자신의 작은 후원 몇 푼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 같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리고 “잘”하는 것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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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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