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N명이 봐야 할, ‘화이트베어’ [TV/드라마]

방관자들을 향한 직설적 경고
글 입력 2020.04.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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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만 개의 쓰레기가 발각됐다. 쓰레기의 냄새는 알게 모르게 항상 풍겨왔다. 이따금 악취의 근원이 추적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반응은 보통 이러했다.

 

‘이 정도가 무슨 쓰레기야, 예민하네.’

‘그렇게 심한 쓰레기는 별로 없어.’

이런 식으로 지금껏 수많은 쓰레기가 용인되고 묵과되었다. 역으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 희롱 거리가 됐다. 쓰레기의 담합은 그만큼 공고하다.

 

근원이 발견되어도 소각은 없었다. 그렇게 쓰레기는 계속 존재했다. 기술을 만나며 더 지독해졌다. 소라넷, 다크웹, 웹하드, 버닝썬, 스너프 필름, 화장실 몰카 등등 수많은 소굴을 거쳤다. 발각과 관용은 반복됐다. 흐르던 역사의 일부는 텔레그램 N번방으로 건너갔다. 그 일부는 ‘예민’한 사람들에게 추적되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소리쳤다. 결과적으로 어색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이 사례는 국민적인 주목을 받는 중이다.

 

참 이상하다. 안도감이 들면서도 마음 한켠이 찜찜하다. 갑자기 ‘예민’한 사람들의 편으로 기운 여론의 무의식이 찜찜하다. 큰 주목을 받으면서도 이전 사건들과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까 봐 불안하다. 호기심, 인권 보호 등의 명목으로 가해 행동의 범위가 축소될까 봐 불안하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 2의 <화이트베어>를 보자. 이 미묘한 마음이 대변된다. 문제의식을 정갈히도 차려준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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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베어>는 40분가량의 스릴러다. 모든 블랙미러 시리즈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허구의 세상을 담는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한 여성(레노라 크릭클로우)이다.


여성은 괴상한 인간 사냥꾼들로부터 쫓김을 당한다. 이 추격전은 구경꾼들의 등장으로 더욱 기괴해진다. 수십 명의 구경꾼들은 여성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카메라로 촬영하며 따라다닐 뿐이다. 이들은 여성이 도망 다니는 모습, 공격당하는 모습,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유희 거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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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공포감은 무시무시한 악당이나 잔인한 광경에서 오지 않는다. 악당은 외형만 기괴할 뿐, 실체는 허술하다. 몇 없는 액션신은 무겁고 느리다. 주유소에서의 액션신을 보자. 주인공을 포함한 도망자들은 유리창이 있는 편의점 안에 숨는다.


복면을 쓴 사냥꾼은 총을 들고도 유리창을 쏘지 않는다. 창을 몇 번 두드리다가 깨고 들어온다. 들어온 이후에도 사냥꾼은 무겁게 움직인다. 대놓고 소리를 지르는 남성 도망자(데미안)를 먼저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사냥꾼은 데미안과 몸싸움을 하지만, 싸움보단 뒹굴기에 가깝다. 통상적으로 공포의 요소가 되는 것들이 이 작품에선 이렇게나 허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공포감을 자아낸다. 구경꾼들 때문이다.

 

“저들은 안 도와줘. 구경만 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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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에게 주인공은 같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가 아닌 물체로 존재한다. 주인공의 공포는 구경꾼들의 즐거움이다. 주인공의 비명은 구경꾼들의 소음이다. 시청자에게 작품 속 세계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다. 주인공에게 받아들여지는 만큼의 정보만이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구경꾼들에 대한 배신감과 무력감은 더 고스란히 느껴진다.

 

‘놀이’를 즐기는 구경꾼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폐쇄된 소라넷의 100만명, 텔레그램의 26만명, 불법촬영물을 돌려보는 단톡방 구성원들 등등.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청원을 생각해보자. 그만하라는 외침, 살려달라는 절규를 비웃는 구경꾼들의 존재는 과장된 허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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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후반, 추격전의 실체가 밝혀진다. 추격전은 주인공을 속이고 괴롭히는 쇼다. 주인공의 이름은 빅토리아 스킬레인. 그는 흉악한 아동 살인사건의 공범이었다. 남자친구가 살인을 저지르는 동안 그 모습을 촬영한 빅토리아. 아동 살해를 방관하고 구경한 죄로 그는 구경거리가 되는 벌을 받는다. 사람들은 표를 사고 구경꾼이 될 기회를 얻는다. 죄를 벌하는 것에 가담하고, 즐거워한다. 반면 빅토리아는 종일 지옥을 경험하고, 하루의 끝엔 기억이 지워진다. 내일의 지옥을 위해.

 

형벌은 비현실적이지만 시원하다. 하지만 그 시원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 이후의 신들 때문이다. 여기선 빅토리아의 형벌이 이루어지는 ‘화이트베어 파크’의 운영 모습이 나타난다. 공원은 영업소처럼 운영된다. 구경꾼 티켓을 판매하고, 주의 사항이 설명된다.


이러한 ‘형벌 공급’의 구조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형벌의 사업화가 윤리적으로 허용되냐는 것. 이는 위험하다. 형벌의 본질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피해자의 응보 해소, 공익 보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것이 꼭 금전적 이익의 추구가 아니더라도 형벌이 특정 목적의 달성을 위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강경한 객관성이 매번 유지되어야 한다.

 

형벌과 같이 가해 사실도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방관은 가해로의 가담이다. 이 사실이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이 사실이 부정될 때가 있다. 체험을, 상상을 해야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화이트베어>는 정갈하게 숟가락을 놓아준다. 개념을 떠먹여 준다. 모든 쇼트는 확실하고 직관적이다. 모든 대사는 구체적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없다. 다양한 해석을 유발하는 분석의 여지가 적다.

 

누군가에겐 분노 해소의 단물이 되고, 누군가에겐 죄책감을 깨닫는 핏물이 될 만큼, 방관에 대한 경고가 이보다 확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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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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