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는 무엇을 입고 있는가, 총보다 강한 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져 한순간에 버려지는 것
글 입력 2020.03.2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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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의 재질을 한 번이라도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나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레깅스를 브랜드별로 구매하면서 처음으로 옷의 재질과 편리성을 아주 꼼꼼하게 따져봤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브랜드, 누구나 옷장에 하나쯤은 있을법한 스포츠 브랜드들을 입어보고, 나름 인터넷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브랜드를 도전해보면서 같은 재질의 레깅스라도 다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비록 코로나 때문에 시작조차 못 했지만 올해 수영을 도전하고자 수영복을 구매했는데, 수영인들 사이에서는 소위 해녀복이라고 불리는 5부 검정으로 된 수영복만 알고 있었지 그렇게 다양한 수영복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또 처음 알았다. 아마 수영카페를 검색해서 들어가면 그 다양한 수영복의 세계에 놀랄 것이다.
 
레깅스와 수영복 등 운동복에 대해서는 디자인만 보고도 정확한 이름까지 맞출 줄 알 정도지만, 일상적으로 입는 옷에 관해서는 관심이 정말 없다. 운동복은 예뻐서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반면, 일상복은 정말 필요에 의해서만 구매하는 편이기 때문에 정말 갖고 싶어서 옷을 산 적이 언제였나 떠올려보면 대략적인 시점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는 5년 동안 입은 학교 돕바가 너덜거려서 새 롱패딩을 구매한 게 작년 겨울이니, 어떤 목적이든 옷을 구매한 것이 적어도 3~4개월은 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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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총보다 강한 실>이라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접하게 되었고, 실, 즉 의복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기에 총보다 강하다고 하는 건가 궁금해 <총보다 강한 실>을 읽게 되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에 앞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처럼 옷에 관해 거의 문외한이라고 해도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도 되지 않는 매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어서 잠이 깰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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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인간의 의식주 3대 요소에 속할 만큼 없어서는 안 되는 영역임에도 이때까지 중요한 분야가 아니며 경시되었던 것은, 옷이 지극히 약한 권력에 속하기 때문이다. 선사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로 구분하여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등등으로 나뉘었던 이유도 역사를 쓴 세력이 당연히 그 작업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며, 어디에도 옷에 대한 기록은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교육으로 배우지도 않는다.
 
<총보다 강한 실>은 고대 옷의 재료 섬유부터 시작해서, 이집트 시대의 린넨, 실크로드를 만들었던 중국의 비단, 모직, 양모(울), 사치스러움의 상징이기도 했던 레이스, 면, 남극정복에서 알아보는 추위를 대비하는 옷, 레이온과 합성섬유의 시작, 우주복, 스포츠용 직물, 거미줄을 이용한 망토로 이어진다. 과거부터 시작해서 최신 옷의 소재로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서, 인간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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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레이온 파트였는데, 합성섬유를 만드는 공장노동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날마다 입고 사용하는 직물을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공장 노동자 중에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거나 기사로 기고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주로 큰 재난이 던져졌을 때만 짧은 인용문 형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합성섬유 공장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에 많이 노출되어 실명의 위기에 처하거나, 화합물 부작용으로 자살 충동과 불안, 강박증을 경험했다. 합성물이 신체 부위에 튀어 살색이 회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작업장에는 환기장치는커녕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장비도 없었다. 민간인 노동자에게만 안전 장비와 장갑을 제공하여, 강제 노역자들은 직물로 만든 바지와 셔츠로 버텼다.
 


“작업복은 닳아 헤지고 산성용액 때문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다.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눈도 매우 아픈 것 같았다. 혼자 힘으로는 일을 해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동료 노동자가 그들의 팔을 부축해주고, 앉혀주고,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곤 했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듯했다. 대체 어떤 노동이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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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시간이 장기화할수록, 남성 노동자들은 성욕을 잃거나 발기 부전 등의 증상을 경험했다. 노동자들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는 일도 흔했으며, 간질발작을 일으키고, 30분 뒤 다시 일을 하러 왔다가 다시 병적인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학력이 낮아서 무조건 일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건강을 희생시키더라도 일을 계속하려고 애를 썼다. 의사 해밀턴과 대화를 나눈 야윈 남자는 6주 동안 완전한 휴식을 취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해밀턴은 그가 자기의 장애를 과장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장에 복귀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일이다. 레이온 파트의 끝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생산하는 직물 대부분이 생산된 지 몇 주 또는 몇 달 만에 소비되고 버려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합성섬유 직물은 고작 몇 달러에 판매되기 때문에 그 가치 또한 누덕누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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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빵집에 선거 후보자와 선거 유세자 4명이 찾아왔다. 손님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길래 죄송하다며 안된다고 보냈는데, 1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아까 온 곳인 것을 잊고 다시 온 줄 알고 내보내려고 했더니 빵을 먹으러 왔다며, 나에게 ‘아주 엄격한 직원’이라고 말했다. 음료 4잔과 빵 두개를 주문하셨는데, 나중에 보니 빵도 몇 입 먹고 다 버리고, 음료도 전부 3/4 이상이 남아있어서 무척 속상했다.
 
(빵집 사장님의 어떤 정치적인 지지나 반대에 대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손님들이 빵 고르는데 선거 유세를 하는 것은 손님들을 불편하게 할 거로 생각한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행동이었음을 밝힌다. 법적으로도 일반 영업장에서 선거 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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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돈으로 주고 산 옷을 버리는 것과, 자기 돈을 지급한 빵과 음료를 그냥 조금 맛만 보고 버리는 것은 당연히 자기 선택이며, 절대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물건에 대한 동등한 가격을 지급하기만 하면, 그 물건의 가치를 완벽히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음식의 유통기한이 지나고, 라면이나 짜파게티 같은 건 최대 4년 정도 지난 것을 먹는 게 일상적이었고, 곰팡이가 펴도 절대 버리지 못하고 남은 반찬을 먹던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음식을 버리는 건 정말 나에겐 용납하지 못할 행동이다. 20~30년 전 산 옷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옷장 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 집 특성이라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제조업계에서 일하거나, 제빵사로 일한다면 내가 물건을 만듦으로써 월급을 받았다면, 그 물건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더는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가. 평생 사용할 물건을 만들던 의미에서 한순간 즐겁게 사용하면 그만일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제조업 자체의 의미가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 사용할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뉘고, 현대로 오면서 후자의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선거후보를 뽑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기가 선거후보자이면서, 선거유세자들이 나에게 명함 돌리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거나 주문을 하는 태도는 둘째 치더라도, 한입 먹고 버려진 빵에서 나를 보았다. 그 사람에게 나는 그렇게 한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빵과 같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찾아오고 뽑힌 뒤에는 다신 찾지 않을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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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안 일주일간 학교 기숙사에서 퇴실 호실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308관과 309관 두 개의 동이 있고, 아주머니가 기숙사마다 10명씩 배치되어 있다. 청소 아르바이트는 아줌마 한 명과 학생 한 명이 짝을 지어서, 아줌마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학생은 같이 다니면서 침대, 책상, 옷장, 창가 청소를 하는 방식이었다. 내 짝지 아줌마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그중에 공장 기술직으로 일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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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2시간도 더 일하며, 잠이 오면 진짜 이쑤시개 같은 걸 눈에 꽂고 일을 했다고 한다. 하루의 물량을 다 맞춰야 해서 일을 끝내기 전까진 잠을 자면 안 되는 거였고, 옆에 사람이 자고 있으면 관리자한테 걸리기 전에 빨리 깨웠다고. 기숙 시설이 같이 있는 곳이어서 가끔은 일을 안 나가고 숨어있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자신의 삶은 아예 없는 거다. 나라 경제를 살려야 했던 사회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에서 벗어났음에도 아줌마는 지금도 학교 청소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이 얼마나 대우가 하찮은지, 아줌마들은 쉴 공간이 없어서 각 층의 냄새나는 쓰레기 분리시설장 안에서 간이 의자를 놓고 전기 포트로 내린 믹스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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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도 제공하지 않는다. 원래는 아줌마 10명이서 학교 식당을 1시간 동안 청소해주고 3000원짜리 학식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1시간 최저 시급이 8,590원이 된 마당에, 아줌마들은 자기 일이 아닌 것을 해야만 시급의 1/3 정도 되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내 짝지 아줌마의 항의로 학교 식당 청소를 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다닌다고 한다.
 
아줌마의 딸이 학교에서 청소하는 분을 보며, 학교에 항의를 해야겠다고 말했다는데, 내 짝지 아줌마는 그럴수록 그 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거라며 말렸다고 하신다. 학교에서 고용하는 청소부가 아니라, 용역업체에서 조달해주는 방식이라 근로자의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퇴실 호실을 청소할 때는 업체를 불러서 따로 해야 하는데 학교 측에서는 원래 일하던 아줌마들을 추가적인 수당 없이 부려 먹는다는 것이었다. 원래 아줌마들의 업무(각층 청소 및 분리수거 등등)도 하고, 추가로 퇴실한 호실 청소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줌마들은 새벽 5시 30분이나 6시에 미리 출근하셔서,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청소로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퇴근 후 물리치료와 병원은 거의 필수 코스인 것 같았고, 화장실 청소 때 사용하는 락스와 소독액 등으로 눈에도 이상이 오는 것 같았다. 일주일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 내 눈에서도 눈물이 미친 듯이 많이 나왔고 몸 상태도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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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쯤 되어야 우리의 삶을 가장 편리하고, 가장 쾌적하게 해주는 분들의 삶을 제대로 보장해줄까. 국회의원들의 소득 신고 소식을 듣고, 현실을 바라보자니 정작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가장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도 않으면서,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소득은 나날이 증가하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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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이온 파트에서 공장 노동자에 대한 서사에 너무 감정이입해서 읽었는데, 책의 다른 부분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한 린넨의 흔적이라던가, 스포츠용 직물 파트에서 스포츠 선수의 노출을 막기 위해 헐렁했던 의복에서부터 가장 높은 실적을 내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 등 흥미로운 부분이 무척 많았다. 역사와 세계사에 흥미를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음으로서 시대의 흐름을 의복과 실로 재정의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환경에 영향이 덜 가고,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 재료가 유행하기를 바라면서, <총보다 강한 실>의 리뷰를 마친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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