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인드 미 - 내가 남겨둔, 내가 남겨진 곳과 시간들. [도서]

글 입력 2020.01.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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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은 단순하면서 복잡한 모순을 타고난 생물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여러 관계 속에서 미묘하게 다르고 미세하게 변하는 감정에 파묻혀 살아가지만 그 흐름에 휩쓸려 실려가는 것은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다.


헤드를 조금만 다르게 돌려도 소리가 달라지는 기타처럼. 손으로 튕기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기타처럼.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해변의 모래처럼. 어디로 떠내려가는지 알 수 없는 모래처럼.


문제이면서도 재밌는 점은 내가 나의 헤드를 어디에 맞췄는지, 무엇으로 줄을 튕길 것인지, 내가 어떤 파도에 실려 떠내려갔는지, 어디로 떠내려왔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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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을 다뤘다.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부르며 서로를 서로에게서 찾고 그렇게 하나가 되는 은밀하고도 섬세하면서 솔직한 사랑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사랑 속에서 나는 성별 따위는 잊어버렸고 여러 조건을 따져가면서 머리가 아파지는 계산적인 사랑이 아닌 매 순간에 나에게서 오는 감정과 상대에게서 오는 감정에 솔직한 직관적 사랑을 배웠다.


<파인드 미>는 나에게 정 반대의 사랑을 알려줬다. 잔잔하게 스며들고 나의 감정의 파도로 휩쓸어가는 사랑이 아닌 모래사장의 끝에서 발끝을 시원하고도 조심스레 적시는 그러한 사랑을 배웠다. 그리고 그 파도가 언제 어디서 나를 적셔 올지도 알 수 없음을 배웠다.

 

살면서 보통의 사람들은 차를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기차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앉을 수도, 모르는 사람이 앉을 수도 있다. 사뮤엘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미란다처럼. 미란다가 사뮤엘에게 다가온 파도였던 것처럼.


단순히 앞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서로를 향한 격렬한 사랑이 태어나고 그 사랑이 낳은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휘둘리는 사뮤엘과 미란다의 시간 속에 나는 인간의 역설의 한 모습을 보았다.



“벽이 뭐라고 말할까요?” 미란다가 엘리오와 벽에 완전히 심취해서 물었다.

“뭐라고 하느냐고요? 간단해요. ‘나를 찾아. 나를 찾아 줘.’”

“엘리오는 뭐라고 말하죠?”

“나도 같은 말을 해요. ‘나를 찾아요. 나를 찾아 줘요.’ 그럼 우린 둘 다 행복해하죠. 여기까지예요.”


- 138p


 

언제나 걷던 거리도 사랑하는 이와 한 번이라도 같이 걷게 되는 순간에는 그 이후로 그 거리를 지나는 모든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던 그 사람이 묻어버린다. 이제는 더 이상 언제나 지나던 거리가 아닌 언제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리가 돼버린다.


엘리오에게는 올리버와 키스를 나누며 서로를 공유했던 그 골목의 벽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저 수없이 많고 많은 골목길의 벽들 중 하나일 뿐인 그 벽이 가슴에 진한 울림을 가져오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한 번의 키스로 평생에 남는 진한 체취가 묻어버리는 인간은 이토록 역설적이다.

 

*

 

사실 두 작품을 모두 읽으면서 진정으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전작에서는 그토록 관능적이고 솔직하게 나에게 파고드는 문체로 다가왔으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이토록 잔잔하고 은은하게 내 속으로 스며든 탓이다. 진한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바디와 투명한 드립 커피에서 느껴지는 은은하고도 복잡 미묘한 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 작가는 사랑을 다루는데 도가 튼 바리스타가 아닐까 싶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읽었던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거나 하는 유형은 아니다. 여태껏 그랬던 적도 없었다. 하지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파인드 미>는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리 하도록 만든다.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인생의 변화가 없어 무료한 사람, 삶에 자극이 필요한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올 때면 나는 이 두 작품을 추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따지지도 않고 솔직하게 괴로워하고, 솔직하게 행복해하고, 솔직하게 서로를 탐하는 그런 사랑과 나의 향기로 끌어당기고, 그 사람의 향기에 끌리고, 직진보다는 한 바퀴 돌아서 나를 추스르고 상대를 지켜보면서 부드럽고도 섬세하게 다가가는 사랑을 모두 지나치고 난 이후에는 내 가슴속에 사랑에 대한 깊은 여운과 욕망이 자리 잡아 버리고 나는 이 녀석을 쉽게 지울 수 없는 탓이다.

 

나를 찾아주기를 바라듯이 나의 사랑을 찾고 싶었기에 이 책에 이토록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표지3.jpg

 

 

 

도서 정보

제목: 파인드 미 (원제: FIND ME)

 

부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편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정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12월 16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300쪽

 

정가: 13,800원

 

ISBN: 979-11-90234-02-3 03840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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