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찬란함 속 가장 낮은 세상의 작은 거인 : 툴루즈 로트렉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글 입력 2020.01.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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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展

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Preview]

찬란함 속 가장 낮은 세상의 작은 거인 


 


 

 

<전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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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가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9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의 첫 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돈 미술관(Herakleidon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작품 모두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나 19세기말의 시대를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Moulin Rouge, La Goulue.jpg

Moulon Rouge, La Goulue


 

국내 툴루즈 로트렉 전시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이 두근거렸다. 이 문장을 쓰며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니 새삼 왜 그랬었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라서? 아니면 못 볼 거라 생각하던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저 배웠던 유명한 화가라서? 갑작스레 무작정 떠오르는 질문들은 특별한 의미를 주는 것 같지 않으니 잠시 흘려보내고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화가에 대한 생각을 조금 깊이 당겨본다.


이번에는 그를 소개하는 문장에 시선을 돌려본다.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처음엔 막연하게만 이 문장이 툴루즈 로트렉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유전병과 어린 시절의 사고로 작은 키에 머물며 평생을 살아가야 했으니 그는 과연 “작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거인이다. 거인? 잠깐 생각이 머문다. 그는 작은 사람이지만 거인이었다. 물론 겉모습으로만 작다는 수식어를 해석하고 거인이라는 단어를 구태여 그 옆에 두어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소 어울리지 않았던 두 단어의 맞물림이 만들어낸 묘한 틈 사이가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더 넓은 방식의 생각을 더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전시회에 가서 찾기 위해 잠시 비워두기로 한다. 대신 이번에는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나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나의 툴루즈 로트렉과 관련된 경험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게 아니라, 학교에서 서양근대미술사를 배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공부했던 것뿐이었다. 그 수업에서 배운 로트렉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생각하다 보니 그중 가장 처음 보았던 그의 작품에 반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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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1887

 


내가 반했던 그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였다. 처음 본 그 작품 앞에서 순식간에 멍해진 기억이 난다. 왜 그랬는지는 잘 설명할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그림이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던 빈센트 반 고흐의 옆모습 초상화였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 중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의 영혼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거칠게 엉킨 선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그림의 면 하나하나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포근하게 느껴진다. 묘하게 드러난 거친 결의 모습에서 고흐가 세상을 담기 위해 거침없이 그려냈던 손길과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해준 그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겹쳐지는 색들 사이로 가만히 빛을 받고 있는 고흐의 얼굴에서 그의 눈으로 시선이 향한다. 고흐는 그저 우연히 눈에 걸린 풍경을 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굴곡진 눈 뼈의 그림자와 제빛을 내는 선들 사이에 안겨 그의 눈과 눈동자는 선명히 보이지 않지만, 계속 바라보면 볼수록 작품에 그려진 고흐의 시선의 무게가 가볍지 않게 전해진다. 아마 고흐는 로트렉의 그림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는 화가였을 것이고, 또 로트렉은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At the Moulin Rouge.jpg

At the Moulin Rouge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툴루즈 로트렉은 사람을 보고 관찰하며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의 결까지 함께 그려낸 화가였다. 그리고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그는 물랭 루즈의 풍경을 많은 작품으로 남겼다. 로트렉이 그린 물랭 루즈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의 꾸밈 없는 태도가 느껴진다. 어떤 것을 보기 위해,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들을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화면에서 벗어나면 정말 그대로 잘린 모습으로 그린 것과 조명에 반사된 빛으로 덮여 푸른빛의 피부로 그려진 사람이나 그림자나 불빛에 파묻힌 듯 눈 코 입의 윤곽이 흐릿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툴루즈 로트렉은 물랭 루즈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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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명소였던 물랭 루즈에서 로트렉이 주목한 사람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그는 물랭 루즈 안과 밖을 넘나드는 여성들부터 홀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 그리고 매춘부들의 삶을 여러 작품으로 그려냈다.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를 보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는 댄서가 보인다. 찬란하게 빛나는 조명 불빛이 벽에 반사되며 빛의 일렁임으로 가득 찬 물랭 루즈를 배회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댄서의 모습은 가장 앞에 서 있는 여인보다 먼저 우리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댄서는 다리를 힘껏 올리며 그 어떤 이들보다도 자유로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국 다른 이들의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화려한 물랭 루즈를 배회하는 활기차고 경쾌한 움직임 속에서 그런 쓸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작품에 그려진 것이 겉모습의 댄서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으로서의 순간도 함께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사회에선 댄서와 매춘부들과 같은 여인들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대우를 받았던 사람들이었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온 곳에서 많은 것을 강요당하고 억눌리는 삶을 살았던 그들은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져야 살아갈 수 있는 그림자 같은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은 이처럼 외로움과 상처라는 그림자 속에서 살아갔던 여성들의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작품 중심에 둔 화가였다. 그는 그렇게 찬란한 곳에서 가장 낮은 삶을 살고 있던 이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시선을 보냈다. 작품이라는 명목이나 자신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바라본 모습 그대로 담아내는 것으로.

 

*

 

나의 기억 속 툴루즈 로트렉을 글로 그려보았다. 내용의 대부분이 화가로서의 그의 삶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삶의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삶은 온전히 알 수 없기에 끝내 명확한 답을 구할 수 없을 질문을 낳는다. 툴루즈 로트렉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들은 사람을 향한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진 화가이자 함께하는 관찰자로서의 태도를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결국 생애의 끝을 앞당긴 로트렉의 무분별한 삶의 궤적을 보면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는 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 답을 완전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 의문이라는 것은 가만히 두어보기로 한다. 대신 전시회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만나면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새롭게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기대를 함께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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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eveu Blanche

 


이번 전시회에 가서 알고 싶은 것은 직접 만난 그의 작품 세계와 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툴루즈 로트렉 전시에 직접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과 대면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의 대화이고 이 대화는 수많은 것을 보고 있는 나의 부족한 시선을 조금 더 넓힐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소개를 보니 익숙하던 미술사적 맥락이 아닌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포스터와 드로잉처럼 대중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인 것 같아서, 프리뷰 글처럼 내겐 미술 작품으로 익숙한 툴루즈 로트렉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함께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작품 세계에서 더 나아가 잘 모르던 그의 또 다른 작품들 앞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다시 질문하게 될지 기대를 품으며 글을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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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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